시인의 의자·34
-악취
여름이 다가왔습니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시인의 의자가 버려져 있는 쓰레기매립장의 쓰레기에 세균들이 증식하기에 딱 알맞은 온도였습니다. 여기저기서 쓰레기의 부패가 시작되었습니다. 가끔 비가 내릴 때면 빗물에 시커먼 오물이 줄줄 흘러나오면서 하수로를 따라 강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썩은 냄새가 멀리 퍼져나갔습니다. 가까운 마을에는 악취가 온 마을을 감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코로나바이러스용 마스크가 아니라 악취방지용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리고 더운 여름에 방문을 꼭꼭 닫아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쓰레기장에서 악취가 나지 않도록 제발 도와달라고 당국에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당국에서는 대책 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쓰레기장에 악취방지용 향수를 뿌리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이 기발한 착상은 만장일치로 채택이 되었고 당국에서는 화공학자와 향수 전문가에게 쓰레기장 악취방지용 향수 개발을 맡겼습니다.
향수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제국, 고대 이집트, 로마 제국 등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그 역사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향수는 귀족의 상징물로 위생과 청결을 의미하며 품위 있는 귀족의 필수품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향수를 처음으로 만들었던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타프티라는 메소포타미아의 여성 화학자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기록은 점토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향수는 신에게 제물을 바친 동물을 태울 때 나는 냄새를 줄이기 위해 향내가 나는 나뭇가지를 태우고 향나무의 잎으로 즙을 내어 몸에 발라 악취를 없애고 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용도로 사용하였습니다. 오늘날까지 유교나 불교의 아시아 문화권에서 향을 피우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지요.
고대로부터 향료는 종교의식의 필수품으로 몸과 옷에 뿌려서 몸을 상쾌하게 하고 정신을 경건하게 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요즈음에는 화장품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지요. 향수의 주원료는 알코올입니다. 알코올에다가 향신료를 넣어 여러 가지 향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농도와 지속 시간에 따라서 퍼품, 오 드 퍼품, 오 드 뜨왈렛 등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향수하면 프랑스를 떠올릴 정도로 향수 산업이 발달된 것은 단연 프랑스 파리이지요. 프랑스에서 향수 산업이 발달한 시기는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4세 때부터인데, 남프랑스의 그라스 지방이 피혁제품의 생산지로 유명했는데, 바로 이곳에서 향수 산업이 발달되었지요.
당시 프랑스에서는 피혁제품이 인기리 판매되었는데 무두질 기술이 발달되지 못해서 가죽에서 나는 특유의 악취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료와 향수를 사용했는데, 프랑스 궁정에서 사용하는 향수는 주로 오렌지꽃과 히아신스가 애용됐다고 합니다. 식물의 경우 주로 재스민·장미·오렌지·라일락·백합·카네이션·수선화·제비꽃 등 화려한 냄새를 띠는 꽃잎, 제라늄·오렌지·시트로넬라의 잎사귀, 레몬·라임·오렌지, 계피·그레이프프루트의 줄기 껍질, 당근·셀러리·바닐라 콩 등의 줄기 전체, 이끼류 등이 향신료의 원료가 되었습니다. 또한 향기 식물들을 태우거나 짓이겨서 나오는 즙액을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동물에서 나오는 향수의 경우는 동물의 향기가 나는 부위를 말려서 차고 다녔답니다. 동물이 향기로는 '머스크향'이라고 불리는 사향과 향유고래의 장결석에서 나오는 용연향, 에티오피아의 사향고양이 호르몬에서 추출한 영묘향, 북미 비버의 생식선에서 추출한 해리향, 곤충의 페로몬 등이 향수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곤충의 페로몬은 파리, 모기, 좀 벌레를 퇴치하는 살충제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향수에 얽힌 이야기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70세가 되었을 무렵 폴란드 국왕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았는데, 그 비결은 그녀가 즐겨 사용하였던 최초의 알코올 향수 '헝가리 워터' 였다는 말이 있고, 로마의 시저나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던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나 조선시대 선비들을 유혹해 화제를 모았던 조선시대 황진이가 명기로 소문이 난 것은 허리춤에 숨겨진 사향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향수는 향기를 내는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며, 오묘하고 신비한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 구실을 해 왔다고 합니다.
당국에서는 쓰레기 매립장 근처에 대대적으로 악취를 제거하기 위한 묘안을 짜내어 박하, 허브, 배초향과 같은 향기 나는 식물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코의 감각을 마취시킬 향기 나는 향신료와 알코올을 섞여 만든 쓰레기 악취방지용 향수를 쓰레기장에 마구 뿌려댔습니다. 여름 장맛비가 내리자 쓰레기장에서 나오는 오염수는 강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쓰레기장 주변의 강에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습니다. 아마 오염수에 섞인 미생물들을 잡아먹기 위해서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강물에 살던 물고기들이 많이 몰려들자 이곳은 물고기가 잘 잡히는 낚시터로 변했습니다.
강태공들이 휴일이면 떼를 지어 쓰레기장 주변의 강변을 찾아와 낚시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전문가의 경우 손만 보고 다시 물고기를 강으로 되돌려보냈지만 개중에는 잡은 물고기를 집으로 가져와 요리를 해먹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 요리를 먹고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민물고기를 요리할 때 역겨운 석유 냄새가 심하게 나서 먹지 않고 버렸다는 사람도 있고, 잡은 곳을 숨기고 시장에 몰래 내다 팔았다는 얌체족들도 있었습니다.
이제 쓰레기 매립장 주변이 주민들은 역겨운 악취 대신 향수 냄새를 맡게 되었습니다. 코를 벌름거리며 향수를 맡았습니다. 이 고장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고장에 갔을 때는 향수냄새를 맡고 자기 몸 관리를 잘하는 품위 있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다른 지역의 사람보다 훨씬 낮았고, 병원을 찾는 사람들과 날마다 약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조선시대 기생 중 페미니즘의 원조 어우동은 에로스적인 사랑으로 양반들의 행태를 조롱하였지만 황진이는 양반의 품격에 어울리는 시·서·화의 재능으로 선비들의 시문답 맞상대가 되기에 충분한 시인으로서의 품격을 갖춘 기녀였습니다. 따라서 조선의 선비라고 하면, 누구나 한 번쯤 황진이를 찾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천재적인 풍류시인이자 대문장가인 임제 선생이 평양의 벼슬자리를 얻어서 임지로 가던 중 병에 걸려 황진이가 죽었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황진이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서 그녀의 넋을 달래며 추모하는 글을 올려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오늘날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임제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양반사회 불문율을 깨뜨렸고, 중국의 사대사상에서 깨어나 조선의 자주독립의 의지를 알렸던 선각자로서의 용기는 그의 천재적인 식견이 있기 때문이며, 미래 대한민국이 오늘날과 같이 민주사회가 될 것을 예견한 선각자로서의 그의 통찰력과 역사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우선 조선시대 기생으로서 품격과 예술인으로서의 당당한 기개를 펼쳤던 황진이가 에로스적인 사랑을 뜨겁게 나누고 싶어했던 기녀의 간절한 감정이 담긴 시와 그녀를 만나고 싶었으나 만나보지도 못하고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까지 찾아와 애도한 임제 선생의 시를 감상하도록 합시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밤이거든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전문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가고 백골만 누웠는고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임제의 「청초 우거진 골에」 전문
이 두 작품은 두 시인의 일화를 통해 시인의 의자에 앉을 자격을 갖춘다는 것은 피나는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함을 말해주는 명시입니다.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은 사랑하는 대상을 기다리는 기녀의 간절한 마음을 형상화한 가슴 절절한 시조인데 오늘날 시조의 음수율의 기능을 뛰어넘어 현대시의 형상화 창작 기법을 이미 활용하고 있었으니 놀랄 일입니다. 추상적인 시간의 개념을 구체적인 사물로 형상화하여 낸 탁월한 시적 재능은 식견 있는 선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황진이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라는 추상적인 시간 개념을 “한허리 베어내어/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랑하는 대상이 온 날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라는 경이적인 발상은 사랑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머물면서 밀회를 즐기고 싶다는 기녀의 간절한 소망이 가슴을 울립니다.
임제의 「청초 우거진 골에」는 살아있을 때 그렇게 품격 있는 기녀와 술 한 잔씩 주고받으며 시 문답을 주고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는데,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황진이가 살고 있다는 평안도 지방으로 벼슬자리 임명을 받아 황진이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는데, 임지로 가는 길에 황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무덤을 찾아가서 “술잔을 잡아 권해 줄 사람이 이제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하며 애도의 글을 올리는 임제야 말로 황진이의 시적 재능을 알아보는 고수들의 외로운 행보였을 것입니다.
시인의 의자에는 이런 고수들이 앉았다가는 의자인데 물질에 눈이 어두어 사람이 돈으로 보이고, 시가 장식용이나 오락용으로 보이는 문학 풍토에 시인의 의자는 쓰레기장에서 악취를 맡고 지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