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바래길 16코스 중 제14코스에 해당하는 ‘이순신 호국길’은 남해 서면에 있는 중현의 하나로 마트에서 시작하여 남해 노량에 있는 충렬사까지 16km 길이의 길이다. 충무공 이순신을 생각하면서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약 6시간이 소요되는 길이다.
광양에 있는 포스코를 마주 보며 걷는 길이며 남해가 낳은 시인 고두현의 고향마을인 우물마을을 지나게 된다. 우물마을은 가을이면 유자가 노랗게 익은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길이다.
아침 10시쯤 좋은 사람들과 출발하여 우물을 지나고 ‘팔만대장경의 판각지’ 흔적이 남아있는 선원마을을 지나며 지금은 바다를 메워서 논으로 사용되는 관음포만이 보이는 언덕에서 임진왜란 마지막 싸움 노량해전을 상상으로 그려보기도 하면서 걷는 길이다.
어릴 적 외가가 있었던 포상마을을 지나고 정지석탑이 있는 탑동마을에 도착하여 탑동에 유일하게 있는 자장면집에서 점심을 맛나게 먹고 다시 길 위에 서면 노량해전의 격전지 남해 팔 할의 역사가 있는 관음포만을 끼고 돌아 ‘이순신순국공원’으로 향한다.
충무공 이순신을 다르게 접근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서른 여섯에 충무공 이순신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16이란 숫자가 확 가슴에 꽂혔다. 충무공의 순국일 1598년 11월 19일은 그해 양력으로 환산하면 12월 16일이다.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이 한산도에서 압송되어 백의종군하고 있을 때 제2대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7월 16일 칠천량해전에서 궤멸을 당한다. 물론 조선수군으로서는 참으로 참혹한 일이지만 충무공 이순신을 생각하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제3대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충무공은 조선수군을 제 정비하여 1597년 9월 16일은 중과부적의 상황에서도 대승을 거둔 명량해전을 치른 날이고 충무공의 뛰어난 전략을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된 날이다.
만약 원균 장군이 계속 승승장구했다면 충무공 이순신이 다시 설 자리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1597년 7월 16일 칠천량해전은 다소 억지스럽지만 충무공을 살린 전투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조선에서만 기억될 장수로 국한될 수 있었던 충무공을 명나라 수군이 참전하면서 중국에까지 알려지게 하는 명나라 도독 진린과의 만남도 고금도에서 1598년 7월 16일이다.
진린 장군을 만나지 않았다면 충무공 이순신의 평가가 다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통영 충열사에 있는 명, 조 팔사품을 생각하면 진린 장군이 충무공을 격찬한 말이 떠오른다. ‘경천위지지재하고 보천욕일지공( 經 天 緯 地 之 才 補 天 浴 日 之 功) 천지를 주무르고 해를 목욕시킬 사람이란 뜻이다. 이보다 더한 극찬이 있을까 싶다.
또 16이란 숫자가 나온다. 초장지 금성산에서 16년 뒤에 지금의 어라산으로 이장한다. 그런고 ‘이순신호국길’은 남해바래길 16코스 중에 14코스에 해당하지만 길이가 16KM이다. 그래서 나는 16이란 숫자를 좋아한다. 이순신호국길을 안내하게 되었을 때 이런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역사를 그냥 흘려듣지 않고 재밌게 오랫동안 기억한다.
남해‘이순신호국길’은 16키로로 약 6시간을 조선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면서 걷는 길이다. 역사와 그 역사의 인물, 그리고 바다와 산, 들녘이 참으로 오밀조밀 아름다운 길이다.
[서재심]
시인
남해군문화관광해설사
코스미안뉴스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