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친구가 출장을 간 사이 그 친구 어머니의 차를 세차하기 위하여 동네 공중세차장에 함께 가기를 청했을 때 일이다. 친구 어머니와 나는 밖에 놓인 벤치에 앉아 얌전하게 내리는 파스텔빛의 아침햇살을 나누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샤워를 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긴 차량이 하나씩 샤워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에 빠지셨고 나는 가방에 넣어온 책 하나를 꺼내 보기 시작했다.
소음이 요란한 주위와 단절하는 나의 좋은 방법은 오래전부터 키워오던 습관이다. 분명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나는 책 읽느라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 얼마큼의 시간 동안 친구 어머니는 나에 대한 시선을 놓지 못하고 지켜보셨던 것 같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얼굴을 돌리셨다.
이제까지 나의 무의식은 얼마만큼 나를 떠나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나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졌다. 그런 나를 눈치를 채신 어머니는 곧바로 "아, 인제야 네가 늘 가방 하나를 어깨에 걸치고 다니는 이유를 알겠구나"라고 하셨다. 뜬금없는 그 말씀에 나는 옆에 어른을 심심하게 만들어 드렸던 나에 대한 섭섭함인 줄 알았다.
꼭 오늘이 아니더라도 미국 생활은 어디를 가나 기다리는 것이 일이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기다림의 경지를 깨닫지 못하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관공서에 가나 은행을 가나 어디를 가나 기다리는 게 일이니 기다림의 인내라는 경지를 거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 제대로 죽이는 방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시간에 의해 내가 갇힌다. 그런 이유로 읽을거리 하나는 꼭 가방에 넣고 다닌다고 편하게 이해시켜 드렸다. 그런 나의 말에도 그 어머니는 단 한마디도 없이 마음을 비우려는 부처의 얼굴처럼 멀리 한 곳만 쳐다보셨다. 그러는 시간에 차가 샤워를 마치고 말리는 다음 칸으로 옮겨져 물기를 말릴 때까지 나도 어머니도 생각을 멈춘 듯 소음 속으로 정적이 묻히고 있었다.
세척을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와 말동무가 되어 드리지 못했던 나의 결례를 세척장에 남겨둔 채 돌아왔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얼마쯤 지난 후 나는 미국 친구와 그의 일가친척들이 보낸 초대장을 받아들고 한참을 망설이게 되었다. 서먹서먹했던 세차장에서의 마음이 정리되기도 전에 또 무슨 초대란 말인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본디 파티 체질이 아닌 나로서는 불편함의 대명사가 파티였다. 직장에서 일 년에 한 번씩 갖게 되는 정해진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 파티와 동료들의 간단한 생일 파티 정도의 작은 모임에는 익숙하지만 이번처럼 초대되는 온 가족과 일가친척들이 모이는 파티는 어색하고 불편함이 먼저 앞을 선다.
꾸미고 나설 옷차림부터 거추장스러울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미국 생활의 전부일 수 있다. 미국 친구 고모의 40주년 결혼 기념 파티에 도착하니 대문 앞에서 시작되는 환영식을 알리는 풍선들만이 나를 반기는 듯했다. 나와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서로 반가워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그 뒤에 어우러진 남자들 정장의 옷차림은 모르겠는데 여자들의 번쩍대는 드레스와 머리에 꽂은 장식은 고전 영화 속 배우처럼 화려했다.
전부 노랑머리에 파란 눈동자의 사람들 속에 하나뿐인 나의 존재가 점점 불편해지면서 나는 군계일학이 아닌 혼자 꽁지 빠진 닭 신세처럼 느껴졌다. 나야말로 구석에 던져진 보릿자루가 따로 없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는 척하다가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 그 자리를 피해 있고 싶었다. 친구의 삼촌이 내빈들 소개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파티 흥을 즐기고 있었다.
어색해져 가는 나의 손놀림은 어디에 둘지 몰라 여기저기 눈길을 둘릴 때마다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는 이상한 모습 같은 것을 느꼈다. 옆에 놓인 제로니움 화분 밑을 뚫고 나온 웃자란 뿌리들이 바닥을 기어다닐 것 같은 모습에 시선을 멈추다가 다시 고개를 드니 무언가 수군대다가 나를 보고 뚝 멈추는 느낌이 또 들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파티에 웬 이상한 동양인 하나가 나타나서 신경 쓰이게 하는가 하고 기이한 눈빛으로 나를 볼 거라는 생각을 하니 불편한 시간은 더욱 무겁게 가고 있었다. 아, 이래서 인종차별 이야기가 있을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 일것 같다고 생각하니 서로 다름에 대하여 조금도 이상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라면 내가 자처해서 차별이라는 다름의 마당에 섣불리 들어선 것이다. 그 다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사방에 눈들이 나의 뒤통수를 찍어 댄다는 의식뿐이었다. 얼마 후 친구의 삼촌이 내게 다가왔다. 손을 내밀면서 함께 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점잖게 할 때 나는 숨통이 다소 트이는 것 같았다. 무언가 말을 더하려고 할 때 삼촌이 먼저 말을 계속했다.
그는 사람들이 한참을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이제까지 내가 가진 육감의 점이 맞아떨어지는 느낌과 사람들의 시선이 딱 맞아떨어진 것에 놀랐다. 자신의 누나인 미국 친구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 친구인 나에 대하여 높은 자랑을 했다고 한다. 당신의 아들에게 나처럼 좋은 친구가 있어 기쁘다고 하면서 세차장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나에 대한 당신의 느낌 하나하나를 가족 친지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고 했다.
잠시 기다리는 시간에도 책과 함께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고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 것이었다. 그 말에 긴장으로 꽁꽁 얼었던 나의 몸이 녹아내리면서 오는 길에서 느꼈던 그 화려했던 파피꽃의 기억들이 그제야 나에게 찾아들었다. 내 마음속에 겹겹이 쌓였던 열등의 때를 그 세차장에서 말끔하게 씻어 낸 것을 깨닫게 되니 세상 모두가 미학의 경지로 내게 다가왔다. 착각조차도 철저한 환상예술이 아닌가 한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