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의 양심선언] 시인의 의자·39

김관식

시인의 의자·39

-강변으로 오세요

 

시인의 의자에 겨울이 왔습니다. 찬 강바람이 눈보라를 몰고 왔습니다. 세상은 온통 눈보라에 갇혔습니다. 정신없이 휘날리던 눈보라가 멈추었습니다. 겨울의 짧은 해가 시인의 의자에 문안을 왔습니다. 시인의 의자는 눈에 덮여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시인의 의자는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시들이 앉아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시인의 의자가 있는 강변은 눈에 덮여 그야말로 순백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요동을 치며 내리던 눈이 시인의 의자에 쌓였습니다. 하늘에서 떠돌던 분노들이 시인의 의자에 내려앉더니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았습니다. 강변은 그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펼쳐놓은 듯 했습니다. 시인의 의자는 지나온 옛일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시를 쓰는 여러 시인들과 인연을 맺었고, 시를 쓰지도 않고 시인 단체 감투를 쫓아가며, 시인인 척 흉내를 내는 거짓 시인들과도 인연을 조금씩 맺었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진실하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놓고 뉘우침의 눈물을 흘리며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밤을 지새웠던 한용운, 윤동주, 김소월, 김영랑, 이육사, 백석, 박용철 등 시인들의 얼굴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시를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삼았던 꽤 이름이 알려진 시인들도 시인의 의자를 찾아와 앉았다 가곤했습니다. 그런 시인들을 시인의 의자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한 표리부동한 시인들이 앉았을 때 시인의 의자가 삐꺽거리며 그들의 궁둥이에 똥침을 놓고 싶었던 그런 순간을 떠올리니 웃음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최근에는 정말로 시인이 아무나 되는 것으로 알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아무렇게 끄적거린 낙서 같은 시를 쓰고 발표하면서 시인 노릇에 빠져있는 거짓 시인들이 너무 많이 앉았다간 바람에 시인의 의자는 심하게 망가져 버렸습니다. 시인은 정신이 올바른 사람이어야 시인의 품격을 갖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직 자신을 시인처럼 고상한 인물로 널리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인쇄업자가 그저 적당히 끄적거린 시도 아닌 시를 문단 등단이라고 유명한 시인 이름만 빌려와 심사위원으로 꾸며 거짓 시인에게 등단패를 내밀고 당신은 이제부터 시인이니 우리 잡지사에 작품을 실어드린다는 꼬드김에 넘어간 시인들이 수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말도 안 되는 시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발표하고 그것을 시집으로 묶어서 주위 분들에 나누어주며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 시를 읽어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시집을 주니까 받아서 라면을 끓여 먹을 때 뜨거운 냄비를 받치는 받침으로 쓰고, 그냥 쓰레기로 버린다고 합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매주 일정한 날을 정기적으로 재활용 분리수거의 날이라고 정하여 분리수거를 하는데, 아파트 경비원들의 말에 의하면 이런 책들과 이들이 등단했다고 시인 칭호를 만들어주었던 문예잡지들이 수북이 버려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같은 호의 문예잡지가 수십 권씩 버려지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겁니다


아마 그 문예잡지에다 자신의 엉터리 시를 발표하고 문학 관련 잡지에 거짓 시인의 시가 실려있는 잡지를 여러 권 구입해서 주위 분들에 나누어주려다가 어떤 사정이 있었던지 나누어주지 않고 있다가 버린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시집이나 수필집 등이 한꺼번에 버려질 때도 있었는데 이런 분들이 자신이 쓴 글을 책으로 발간하여 미처 나누어주지 못하고 오랫동안 보관하다가 한꺼번에 버린 것들이라고 합니다.

버린 책들을 펼쳐보면 책의 간지에 아무개 선생님 혜존, 202100, 저자 문제시집이라는 친필 사인이 있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아무개와 저자가 꽤 유명한 사람들도 많더라는 것입니다.


시를 쓰지도 않으면서 시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고 시인이라는 칭호보다는 문학단체 회장, 이사 등 감투명을 더 좋아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졌습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멋스러운 무늬로 과대포장을 한 물건을 사서 집에 와서 뜯어보면 몇 겹으로 포장이 되어있고 그 포장지 속에 들어있는 물건은 정말로 형편없을 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그때 화가 치밀어 오르듯이 독자들을 속이면 언젠가는 독자들이 알게 됩니다. 만약 거짓 시인의 흉내를 내다가 들통이 나게 된다면 양치기 소년의 신세가 되어 부끄러울 텐데, 왜 그렇게 자신을 과대포장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거짓 시인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은 그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지나쳐서 저러는구나 생각하며 측은하게 바라보겠지요. 취미활동으로 시를 감상하고 낭송하는 재미에 빠질 수는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넘보아서는 안 될 영역을 무리하게 넘보시면 안 되지요. 무리하면 자신은 물론 가족들과 이웃들을 피곤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 혼자 몰래하는 취미활동으로 여겨야지 요란스럽게 가짜 노릇을 하면 그 얼마나 자신을 속이는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문학은 자신을 속이는 일과는 정반대로 자신의 내면을 부끄럼 없이 까발려 내보이려는 용기가 필요한데, 그런 용기도 없이 비열하게 자신을 위장하고 과대 포장하려고 하면, 얼마나 불필요한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기껏 해봐야 100년 동안 주어진 시간밖에 살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시간이 금이지요. 그런데 거짓 시인 노릇을 하는 데다가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게 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물론 시 창작을 이왕 시작했으니, 정말로 시를 잘 쓰는 시인이 되어보겠다고 유명한 시인들의 명시를 많이 읽고, 시 쓰는 이론 서적을 정독하거나 시를 잘 쓰는 시인들에게 배워서라도 잘 써 보려고 노력하면 정말로 시를 잘 쓰는 시인이 언젠가는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냥 그저 취미로, 또는 장난삼아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무조건 나를 나 따라오시면 안 됩니다.


멋모르고 시를 쓰겠다고 뛰어들어 가짜 시인 자격증으로 진짜 시인이 된 것처럼 뻐기면서 엉터리 시를 문예잡지에 발표하고 자기만족과 우월감에 빠진 많은 거짓 시인들은 좋은 시를 쓰려는 공부에는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끼리끼리 어울려 시인 노릇으로 남에게 자신을 과대 선전하는 일이 시인이 하는 일로 착각하며 그런 활동으로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게 시인이 되기를 원하는지 시인의 의자는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거짓 시인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이들의 대답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시가 좋아서, 시인이 되고 싶어서, 시인처럼 살고 싶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사춘기 때 한 번쯤이 시인이 안 되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막연한 여인에 대한 환상과 그리움 등 아름다움을 좇아가는 것이 문학이요 시인 줄로 잘못 알고 있는데, 시는 곧 생활이며 경험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고 시가 자신의 주위와 먼 곳에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변화하는 마음과 정서를 어떤 사물에 빗대어 압축해서 적으면 시가 되는 것인데도 시는 자신의 환상 속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자신이 마음속으로 만들어낸 잡다한 관념이나 이념들을 토로하는 것이 시인 줄로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시는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관념의 말장난이 아니라 슬프다, 기쁘다. 허무하다, 고독하다, 무섭다, 그립다. 부끄럽다하는 정서를 자신이 경험했던 상황을 그림을 그리듯이 압축해서 묘사하고 진술하면, 시가 되는 것을 머릿속 환상의 여행 기록을 시로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물을 눈, , , , 손 등 다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인식하듯이 자신의 경험 정서를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 감각인 설계도(형상화)를 그려서 묘사하고 진술하면, 독자도 시인이 표현하고자 그 정서 상황의 상태로 독자들을 소환하는데, 이런 상태에 잘 이르게 하여 공감을 일으키고 명시가 되는 것이지요.


시인의 의자에는 많은 시인들이 앉았다 갔습니다. 요즈음에는 아파트 따뜻한 베란다에서 창밖의 겨울 풍경을 보고, 혼자 환상 여행을 즐기시다가 그것을 기록하고 시라고 하면, 자기 혼자만 알아먹는 주관적인 정서의 기록일 수밖에 없지요. 강변의 시인의 의자로 오세요. 이 호젓한 곳에서 겨울의 진풍경을 감상하고 지난 경험 정서를 떠올려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진술하면, 그야말로 감동적인 시 한 편이 완성되어 하루종이 시 쓰고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희열이 시를 쓰게 하는 것이지요.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강변으로 오셔서 시인의 의자에 앉아 자성하는 시간을 가지고 순수한 마음으로 시상을 전개하시면 틀림없이 감동적인 시를 창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오늘은 칠레의 민중 시인으로 사랑의 시인’, ‘자연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블로 네루다의 를 감상해보세요. 우리나라 정서와는 다르지만 진솔한 내면세계의 진술이 돋보일 겁니다.

 

()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어.

내 영혼 속에서 뭔가 두드렸어,

()이나 잃어버린 날개,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섰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시집에서 감각적인 사랑에 대한 진솔한 고백으로 감정의 격한 물결로 달려오는 이미지를 절제하거나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고 정열적으로 노래하는 함으로써 자연스러운 감정을 스스럼없는 사랑을 노래했는데, 너무나 진솔하여 유치할 정도여서 더 깊은 감동의 파장을 몰고 왔다. 초기에는 순수 서정시를 썼으나 1930년대 중반 이후 독재정권에 대해 저항하는 민중시를 많이 썼습니다. 시집으로는 지상의 거처(1935), 모두의 노래(1950), 황혼의 세계(1971), 언어와 술꾼들의 우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충만한 힘, 질문의 책등이 있습니다.


이런 명시를 쓰려면 겨울 강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시인의 의자에 앉아보세요. 아마 파블로 네루다처럼 시가 나를 찾아왔어라는 고백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

 

 

 

 

이정민 기자
작성 2021.12.23 09:42 수정 2021.12.2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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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