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칼럼]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홍영수

우린, 지구상에 태어나 한평생 살아가면서 좋든, 싫든, 타의든, 자의든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맞이하고 일어난 일들은 그 어떤 이유가 있어서일까?, 아님, 우연히 생기는 일일까? 그런데 라이프니츠는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한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이다. 이에 따르면 모든 실재성에는 그것이 존재이든 혹은 진리이든 간에 왜 그것이 그러한 방식으로 존재하며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원리이다. 

 

여기서 라이프니츠가 말했던‘충족이유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이 존재하는 다른 방식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존재해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원리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이유 없이 결과가 나타난 것은 없다.” 는 의미이다. 이렇게 인간의 사고가 가능한 것은 이성적으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충족이유율’은 인간이 세계를 탐구하는 원동력, 즉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원인을 찾는 행위 자체에 기반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참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각성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어쩜, 성인들이나 구도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길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기 위해서는 의문과 질문이라는 물음표를 달고 사는 철학하는 인간, 즉 호모, 필로소피쿠스(Homo Philosophicus)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세계가 존재할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충족이유율’이라 할 때, 시인을 떠 올려 본다. 시인은 항상 겪었던 일과 매일 습관적으로 행하는 일처럼 매우 익숙함에 젖어있는 일상에서도 낯섦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데 비단 시인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이라는 무대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것을 카뮈는 ‘무대장치의 붕괴’라 했다.

 

“갑자기 무대장치가 붕괴하는 경우가 있다. 기상, 출근, 회사나 공장에서의 몇 시간 근무, 식사, 전화, 수면 똑같은 리듬으로 흘러가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이런 길을 대개의 경우 천천히 더듬어 가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어째서?’라는 질문이 갑자기 고개를 추켜든다. 그렇게 되면 놀라움의 빛으로 불들여진 이 권태 속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 ‘비롯된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

 

위의 카뮈의 글에서 필자는 ‘어째서?’라는 질문이 궁금했다. 그 이유는 시골집 대문 밖에서 노을빛을 보려는 내 곁으로 “황혼 녘, 망백(望百)의 할머니의 휠체어 바퀴 소리가 레퀴엠이 아닌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혼인 미사곡으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충족이유율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들릴만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도 나 자신이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고향에 내려가서 문밖의 석양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가만가만 다가오며 들리는 휠체어의 바퀴 소리는 미사곡으로 들려오는 우연성의 음악일 뿐이었다.

 

사실 모든 것들에 결정론적인 충족 이유가 있다는 충족이유율에 대해 한편으로는 의문을 품게 된다. 왜냐면, 세상에는 얼마든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이유를 대거나 설명할 수 없는 비합리적이고 또한, 우연히 존재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망백望百의 할머니가 대문 밖으로 나와 먼바다 진도 섬 자락을 물들인 황혼의 노을을 바라보고 계셨다.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그 장엄하고 경이로운 광경에 취해서 스스로 존재의 신비로움에 소름이 돋는 듯 보였다. 그리고 사색의 시간에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빛과 달빛들의 형언할 수 없는 경외감에 전율하는 듯 굳은 몸을 움직이셨다.

 

그 어떤 철학적 사유를 떠나 곁에서 바라보는 할머니 모습은, 저물녘 삶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을 거부하지도, 버리지도 않는다는 사실과 어떠한 이별과 고통도, 아픔과 슬픔도 소중하게 품는 듯했다. 이토록 주어진 삶을 소중하게 품어 안는 할머니의 삶, 그 삶은 삶 자체이고 또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지구의 유언장』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6.06.29 11:01 수정 2026.06.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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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