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월 중순, 한 달 뒤 입대를 앞둔 기자는 같이 입대하는 친구와 같이 보름 일정으로 동해안 여행을 떠났다. 부산 해운대에서 시작해서 동해안 북단 고성까지 7번 국도를 따라 북상하면서 들린 구룡포 포구. 허름한 선술집 앞에 굴비처럼 지푸라기에 매달려 비릿한 해풍에 몸을 맡기고 있는 청어를 보고 너무 신기해서 서슴없이 가게로 들어섰다. 팔십이 훨씬 넘은 주인 노파가 피대기가 된 꾸덕꾸덕한 청어와 생미역을 담은 접시를 내놓았다. 특유의 냄새 때문에 주저하다가 소주 낱잔을 입에 털어 넣고서야 먹어본 과메기는 그야말로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맛이었다.
정초에 동해안 여행을 같이 갔던 친구를 자주 가는 동네 횟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올겨울 처음으로 과메기도 만났다. 노란 배추 위에 김 한 장을 올린 후 새콤달콤한 초장을 듬뿍 묻힌 과메기 한점을 올리고 물미역과 쪽파도 조심조심 챙겨 올린다. 마지막으로 마늘 한 쪽도 넣고 도르르 말아 한입에 털어 넣는다. 구룡포 겨울 바다에서 쫀득쫀득 얼 말린 과메기가 입안에서 왔다 갔다 하니 비릿한 갯내음이 입안 가득 전해진다.
과메기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한, 그 정도로 개성이 강한 음식이다. 기자는 고소하고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며 쫀득쫀득한 식감에 반해 매년 겨울이 되면 즐겨 찾는다.
과메기의 역사는 깊다. 고려 말, 성리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쌀 한 말에 관목청어가 스무 마리 남짓으로 비싸다”라고 했고, 조선 때는 조정에 공물로 진상될 정도로 대접받은 생선이었다.
경상북도 영일만 지역은 예로부터 청어와 꽁치가 많이 잡혔다. 이들 등푸른생선은 쉬 상한다. 공물이나 상품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냉장, 냉동 설비가 없었던 시절에는 생선을 말리거나 염장(鹽藏)하는 것이 보관, 유통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이들 물고기가 겨울에 많이 잡히니 차가운 해풍에 말려서 과메기로 가공했다.
밤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어육 중의 수분이 얼어서 빙결정이 되고, 낮에는 햇빛에 의해 빙결정이 수증기로 기화하여 조직이 다공성(多孔性)이 되면서 어체는 쫄깃쫄깃한 탄력을 지니게 된다. 결국 어체의 수분이 제거되어 저장성이 좋아지면서 식감도 향상되고 곰삭은 맛은 덤으로 얻어지게 되는 것이다.
‘청어 과메기’가 원조라는 말들이 많다. 아니다. 옛날에 꽁치도 과메기로 만들었다. 어느 날부터 청어가 사라지니 청어 과메기도 사라지고 꽁치 과메기만 남았던 것이다. 요즘도 청어가 많이 잡히면 청어 과메기가 많이 유통된다. 지금은 지역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데 영덕에서는 주로 청어로, 구룡포에서는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
‘과메기’라는 이름은 여러 가지 유래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관목(貫目), 즉 관목어(貫目魚)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다. 청어나 꽁치를 말려 과메기를 만들 때 눈을 관통해 말리기 때문에 뚫을 관(貫), 눈 목(目)을 사용해 관목어로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과메기 생산량이 많은 구룡포에서는 지역 방언으로 ‘목(目)’을 ‘메기’라 불렀는데, 처음에는 ‘관메기’로 불리다 ‘ㄴ’이 탈락하고, 자연스럽게 과메기가 되었다고 한다.
유독 구룡포 지역에서 과메기가 많이 생산되는 이유는 ‘바람’과 ‘햇볕’ 때문이다. 동해안의 차가운 해풍과 강한 햇살로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해야 질 좋은 과메기를 얻을 수 있다. 고서 기록에 따르면, 조선 시대 영일 현감이 조정에 진상한 ‘영일현 생산 해산물’ 목록에 건광어, 건대구, 반건대구, 건문어, 관목청어, 분곽(미역), 전복이 있는데, 이 7가지 중 전복을 제외하면 모두 말린 해산물이다. 이 정도로 구룡포는 수산물을 건조하는데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해양수산부에서는 올해 1월의 수산물로 김, 홍합과 함께 과메기를 선정하였다. 과메기에는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이 들어있는데 어린아이의 두뇌 발달이나 노인들의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는 뇌세포 활성화 효능이 있다. 그리고 과메기에는 원재료인 청어나 꽁치보다 핵산의 양이 많을 뿐 아니라 비타민 E가 많아 체내 활성산소 제거, 피부 노화 등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이 밖에도 칼슘과 비타민D가 풍부해 뼈 건강 개선 효과,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해 숙취 해소 등의 효능도 있다.
겨울에 사랑받는 과메기. 뼈와 창자까지 발리웠지만 고향을 잃은 서러움 때문일까. 바싹 마르길 거부해서 쫀득쫀득해진 과메기의 속살과 어우러져 입안에서 구룡포의 바람이 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40여 년이 훨씬 지났지만 젊은 시절 동해안 여행의 추억을 친구와 함께 반추하면서 과메기를 안주 삼아 기울이는 술잔에 겨울밤은 깊어만 간다.
여계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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