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프로젝트] 조상님, 우리 페친할까요?

신명호

사진=코스미안뉴스


‘Believe It Or Not!’은 미국 TV 프로그램인데 믿기 힘든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맨 마지막 멘트가 언제나 믿거나 말거나였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도 찬반이 갈릴 수 있어서 믿거나 말거나 들어보시라고 앞 수를 뒀다. 조상은 나에게 영향을 미칠까?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내가 얼굴을 본 적 있는 조상들과 나는 당연히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위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3, 4, 5대 조상들이 나하고 상관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Yes.


조상 박대하면 삼 년에 망하고 일군을 박대하면 당일로 망한다는 속담이 있다. 조상의 영향이 즉각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 수 있다. 속담을 뒤집으면 조상 공경하면 삼 년이 흥하고 일군 존중하면 당일로 흥한다가 될 것이다. 조상 공경은 제사 지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감놔라 대추놔라 따져가며 떡 벌어지게 진설하는 제사상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 산 자의 허세를 위한 것이다. 제사는 음식 가지 수가 아니라 정성이 전부다. 그리고 제사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조상을 아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영향을 준다는데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면 어떨까?


내가 조상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내가 후손에게 뭐를 주고 싶은데 후손은 나에게 관심도 없고 나를 알지도 못한다면 어떨까? 내가 성격 나쁜 조상이라면 괘씸하다고 꿀밤을 줄 것이다. 아무리 성격 좋은 조상이라도 자기에게 관심도 없는 후손을 돕겠다고 발 벗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조상 공경의 시작은 조상과 안면을 트는 것에서 시작한다. 3대조가 누구고 4대조가 누구고 그런 것을 아는 것은 미시적인 접근이다. 그도 나쁘지 않지만 먼저 조상 전체의 큰 그림을 바라보는 거시적인 접근이 조상 알기의 첫걸음이 된다. 바로 본관과 시조를 아는 것이다.


우리가 풍산 김씨, 경주 최씨라고 부르는 그 본관은 기나긴 시간 동안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면서 세상에 비슷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세인들은 그 집안사람들의 품성과 자질을 논하여 00이 씨는 너그럽다. 00박 씨는 고집스럽다.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매긴다. 자신의 본관이 가진 집단 무의식적 캐릭터에 가까운 사람도 있고 벗어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체로 자기 본관이 굴레가 되는 사람과 굳건한 뿌리가 되는 사람으로 갈린다. 물론 전자보다 후자가 더 좋기에 그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 길을 찾는 방법이 족보 찾기. 만일 조상 뿌리고 뭐고 다 싫다. 나는 나다. 조상은 상관없다!’ 이렇게 외치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조상이 굴레가 되어 벗어나고 싶다고 외치는 것이니....


요즘은 족보를 찾고 알아보기 위해 집안 어른, 문중 어른을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에 본관, 시조, 조상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잘 정리되어 있다. 자신의 본관 00 김씨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시조는 누구이고 몇 대조는 어떤 벼슬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역사적 사건에 엮인 적이 있다면 그 역사를 검색해 더듬어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한두 시간 정도 백 투 더 퓨처의 주인공이 되어 과거를 누비다 보면 어떤 조상은 나와 성격이 좀 비슷한 거 같고 나는 이런 조상처럼 살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들것이다. 그리고 조금 깊게 들어가 보면 조상들이 이어달리기처럼 하나의 커다란 골인 지점을 향해 바톤을 주고받으며 교대로 달려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어디로 달려가는 것일까? 조상의 시조는 그 집안이 대대로 나아갈 방향을 일러준다. 나의 시조가 어떤 분이고 어떤 목표를 지녔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자신에게 서려 있는 뿌리 깊은 집단 무의식을 대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조 캐릭터를 요모조모 뜯어보다 보면 내 안에 있는 변하지 않는 성격과 아집도 서서히 보일 것이다.


시조 탐구가 쉽지 않다면 입체적으로 탐구해볼 수도 있다. 자신과 배우자, 아직 미혼이라면 부모님 두 분의 본관을 찾아보는 것이다. 시조를 중심으로 보면 둘의 관계가 선연인지 악연인지도 언뜻 보일 것이고 부부 관계에 있어서 늘 반복되는 캐릭터 간의 대립/화합의 패턴이 조상의 관계에서도 슬쩍 보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00 김 씨는 00 이 씨와 사돈을 맺지 않는다. 이런 속설이 있다. 그걸 안 따르는 사람 중에 큰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고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확률적으로 보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은 팩트다. 그러니 결혼 궁합을 볼 때 조상 관계를 따지는 것이다.

 

나는 결혼 전에 궁합을 보면서 조상 관계를 따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작년에 족보 찾기를 하다가 아내의 시조가 어떤 분인지 찾아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의 시조와 아내의 시조가 지인 관계였다. 두 분 모두 고려 개국 공신으로 왕건과 함께 고려를 일으켰다. 천년 전에 우리 부부의 조상들이 한 편이 되어 전쟁터에서 함께 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세운 것이다. 그 후손인 우리가 천년 뒤에 부부로 맺어졌다.


조상은 살아있다. 현생에서 조상은 돌아가셨지만 살아있는 내 삶 속에 일부분으로 분명히 살아있다. 그런 조상의 숨결, 맥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천군만마를 얻는 일이다. 대체로 후손 잘못되기를 바라는 조상이 없으니 조상이 내 뒷배가 되어준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조상은 내 편이니까. 조상의 일대기를 적은 기록이 족보다. 족보는 앞으로 SNS로 대체될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이 돌아가신 부모님의 SNS를 백업받는다. 페이스북도 본인 사후에 자식이 페이스북을 유지하는 것을 허용한다. 여기에 AI가 결합 된다면 어떻게 될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내 SNS에 댓글을 달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몇 대조 할아버지, 생전 보지도 못한 조상이 내게 페친하자고 그럴지도 모른다. 믿거나 말거나.

 

신명호

이메일 : constelling@naver.com

 

이정민 기자
작성 2022.01.11 11:52 수정 2022.01.1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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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