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저녁] 은비령엔 그가 산다

전승선

 




은비령엔 그가 산다 





산은 길을 덮었다.

푸른 안개가 계절에 옷을 입히면

숲이 열리는 소리에

내려와 잠든 별들이 달아나 버린다.

빈 가방 속에 숨어 나를 따라온

슬픔의 언어들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숲 속에 숨는다.

가지마다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에

인연의 옷이 하나하나 벗겨지고

몸 속 감옥담장이 허물어진다.

하얀 마음을 손수건처럼 펼쳐 논 산기슭에

그의 눈물이 이슬처럼 내리고

산과 산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의 미명에 나는 묻혀버리고 만다.

낡은 세상에 이름만 남겨두고

먼지 쌓인 세월을 털어 내며 떠나온 길

계곡은 깊어 삶을 잊기에 알맞다.

낯선 울음소리에 깨어난 숲이

먼 산의 어깨를 흔들면

마지막 아침이 오늘이라 해도 좋겠다.

아파할 사랑 없는 생애가 부끄러울 뿐

시들시들 말라 가는 시간의 저편을 떠나보내고

남루함 덮어줄 그리움마저 묻어 버린다.

이제 불타는 숲의 산문을 걸어 잠그고

은비령의 그가 부르는 바람의 노래를

마저 부르리라.

 



전승선

시인으로 활동중이며, 자연과인문 출판사 대표로 있다. 주말이면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산골서재 자인헌에서 자연관찰자가 되어 집필과 수행을 하며 풍요로운 정신세계를 가꾸고 있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18.12.21 17:56 수정 2018.12.2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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