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눈들이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때, 섬세하고 부드러운 나목의 뿌리털이 차가운 땅을 헤집고 시린 물을 빨아들여 지상으로 옮긴다. 땅과 대기의 온도가 비슷해지면서 눈이 녹기 시작하는데, 바야흐로 봄이 오는 가장 구체적인 징조인 입춘이 된 것이다.
입춘은 24절기 중 제일 먼저 오는 절기로 봄이 시작된다는 날이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한자로 ‘설 입(立)’자와 ‘봄 춘(春)’자를 쓰는 것은 ‘봄이 섰다’, 즉 ‘봄이 시작 된다’는 말이다. 절기(節期)란 태양의 위치에 따라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것인데,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해마다 날짜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 올해는 2월 4일(금)이 입춘이다.
사주명리학에서는 24절기 중 처음이자 만물이 소생하는 입춘을 새해로 본다. 따라서 태양의 황경(黃經)이 315˚가 되는 2월 4일 오전 5시 51분부터 임인년 새해가 시작되고 나이도 한 살 더 먹게 되는 셈이다.
입춘첩(立春帖)은 본래 설날에 문신들이 지어 올린 신년 축시 중 잘 된 것을 골라 대궐의 기둥과 난간에 써 붙였는데, 이것이 일반 민가에까지 퍼지면서 새봄을 축하하는 풍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가정에서는 벽이나 대문, 대들보, 천장 등에 입춘첩을 써 붙이고, 콩을 문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입춘첩에는 "입춘을 맞이하여 밝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기원한다"는 뜻의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평안하니 집집마다 넉넉하다”는 뜻의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오고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긴다”는 뜻의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등이 있다. 특히 추사 김정희가 당시 재상 채제공으로부터 명필이 될 것이라고 예언 받게 된 것도 7세 때 대문에 써서 붙인 ‘입춘대길 건양다경’ 때문이라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입춘 날 전해오는 우리 풍습으로 ‘아홉차리’라는 것이 있는데, 입춘날 각자 소임에 따라 아홉 번씩 쉬지 않고 자신의 일을 되풀이하면 한 해 동안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받게 된다는 민속이다. 이날 서당에 다니는 학동은 천자문을 아홉 번 읽고, 아낙들은 아홉 꾸리의 실을 감고 아홉 가지 빨래를 하였으며, 불자들은 나무아미타불을 아홉 번씩 9일 동안 독송했던 풍습이었다. 또 착한 일을 해야 액을 면한다 하여 입춘 전날 밤에 남몰래 개울가로 가서 징검다리를 놓는다든가, 가파른 고갯길을 깎아 놓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근면하고 착하게 살려고 했던 우리 민족의 습성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민속이라고 할 수 있다.
연초에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신정에 작심삼일, 구정에 작심삼일, 또 첫 절기인 입춘부터 작심삼일. 이렇듯 작심삼일을 수없이 반복되다 보면 저절로 한 해가 알차게 채워지게 된다.
2022년 임인년 새해에는 코스미안뉴스 독자 여러분께서도 한 해의 시작인 입춘부터 작심삼일을 끝없이 반복하여 보람차고 알찬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여계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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