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의자·46
-시를 보는 안목
시를 잘 쓰는 요령은 시를 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밖에 없습니다. 어떤 시가 왜 잘 되었는가? 무엇이 어떻게 잘 되었는가? 무슨 표현법을 썼는가? 주제와 소재는 무엇인가? 시어는 적절한가? 이 시의 느낌은 어떠한가? 등등 한 편의 시에 대해 종합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냥 잘 썼다 못 썼다 하는 간단한 느낌은 시를 모르는 사람들도 자기 입장에서 누구나 말할 수 있습니다. 시를 보는 안목이 없으면서도 자신을 속이고 안목이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코끼리의 여러 부위를 만지고서 자신의 느낌을 마치 안목이 있는 것처럼 과대 포장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기만 행동은 정상적인 문인이라면 있을 수 없는 치졸한 시정잡배들이나 모리배들의 행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비정상적인 구조를 통해 문학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문학 풍토가 시장바닥으로 변질되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리배들의 기만 행동은 다른 시인들보다 자신이 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시 이론을 들먹거리며 시를 보는 안목이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기도 합니다. 이런 허위적인 과대망상 짓들은 주로 문예지 발행자들이 벌이는 경우가 많은데, 시를 보는 안목도 전혀 없으면서 아는 척하며 문예지에 작품을 보내온 사람들의 작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데 이들의 속셈은 음흉한 상업적인 계산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시인에게는 작품이 엉터리이더라도 무조건 좋은 작품이라고 호평하고, 반대로 쓸 만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이해관계가 없는 문인의 작품은 작품이 좋지 않다고 혹평하며 게재를 거절하는가 하면, 자신의 말에 토를 달고 반대의견을 제시하면, 그 사람의 작품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과감하게 첨삭 지도한다고 첨삭해서 게재하는 무례한 짓을 서슴없이 자행하며 문인 길들이기를 감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거짓 안목으로 위장된 상업적 전술의 연막탄을 터뜨려서라도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문예지 관련자들이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문예지를 발행하여 자격 미달의 습작기 시인들을 자기 잡지로 등단 사칭하고 많은 수를 등단시켜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는 가짜 문학 권력자들은 오직 자신의 문예지 출신 문인을 자기 고객으로 확보해놓고, 그 고객 위에 군림하면서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기발한 상술로 문학놀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합리한 체제로 문학을 시작한 이들이 자신을 문인으로 추켜세운 문예지나 그 관련 문학단체 조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자기가 등단한 문예지를 떠나서는 활동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문학 권력자의 수하에 들어가 조직의 일원으로 문학 활동하는 도제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 권력자들이 지방마다 고려시대 지방의 호족처럼 지방문인단체의 우두머리가 되어 문학 권력을 행사하고 있고, 중앙문인단체의 주요 요직의 감투를 쓰고 그 실체가 없는 감투를 과시하며 영구적인 문학 권력을 행사하는데 심혈을 쏟아 영구적인 종이 장사 상업전략과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예지 발행자와 시인이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을 자기 자신을 모르고 문인이 되겠다고 명리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뛰어든 사이비 문인들의 허명 의식과 그것을 부추기는 모리배들이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문학 풍토입니다. 이런 비정적인 문학 풍토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해결할 것인가 다 같이 고심해야 할 때입니다.
본래 정상적인 문인이라면 정상적으로 공인된 기관으로 등단을 했으나 문예지와 연계가 안 되면 그 능력이 사장되어버린 것이 비일비재합니다. 해마다 신문 지상의 신춘문예를 통해 화려하게 신인으로 등장하여 문단 미아가 되어버린 경우가 허다한 실정입니다. 신문사에서는 신춘문예로 시인과 작가를 등단시키는 역할만 할 뿐 그들이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해주지도 않고 일회용 행사로 끝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들이 지속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따로 문예지를 찾아가 문학 권력자와 인과관계를 형성해야 만이 살아남는 구조가 되어 수많은 신춘문예 등단 신인들이 문단 미아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출판사와 문인은 서로 공생 공존의 평등한 관계이지만 수많은 문예지에서 배출한 신인들이 많은 관계로 이들이 출판사와의 관계를 맺는데, 불리하게 주객전도의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출판사는 정당한 고료를 지불하고 문인들에게 원고를 받아 출판물을 출간하고, 서점을 통해 판매하여 이익을 창출해야 옳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와 반대의 관계가 형성되어 출판사는 문학 권력자가 되고, 고객인 문인은 문학 권력자에게 착취당하는 불합리한 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예지가 동인지 형식으로 발간되는 경우도 많지만출판사에서 문예지를 발간할 때 원고료를 지불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게재료 형식으로 정기구독료를 받는다거나 자신의 작품이 게재된 문예지를 여러 권 구입해 주는 관례가 일반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모두 자신의 실력을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려는 욕구를 물질로 교환하는 거래가 암암리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국에 문예지가 500∼600개나 발행되고 폐간과 창간을 되풀이하며 해마다 코로나 확진자 숫자만큼 세 자리 단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 중 일찍 눈을 뜬 문인은 혼자 스스로 공부하고 습작하여 깨우치기도 하고 훌륭한 선생님의 사사를 받아 시작 기능을 익히고 시를 보는 안목을 키운 시인들은 출판사와의 도제관계를 끊고 당당한 독립노선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 이른 문인들이 많지 않지만, 문예지와 문인의 불합리한 관계 개선을 희구하는 깨우친 문인들이 문인들의 정화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방마다 작품창작 능력이 부족한 습작기 수준의 문인들은 아예 안목을 키우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문인들의 모임에 감투를 쓰고 문학 활동을 부지런히 함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아 문단이 문학 본질의 작품창작 풍토로 정화되기란 요원해진 상황입니다. 한국문학단체 문학 놀이판의 자정작용은 그 기능이 완전하게 마비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국에서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서라도 이런 상황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한 문인연수기관을 설치하여 연수를 실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문학 풍토 개선을 위한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문학 풍토의 문제점을 확실히 파악하고 각성을 촉구해야만 바뀌는데 촉진제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합니다. 내일의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문학 풍토를 물려주기 위한 작은 저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새·2
새는
가슴에
칼을 품지 않아
하늘을 높이 날고
인간은
가슴 구석에
칼을 넣고 다니므로
땅 위에서
칼과 함께 피를 흘리고
칼과 함께 녹이 슬어 부러진다
……새새새새새새새새새
새는 죽어
하늘에 허공을 남기지만
인간은 죽어
땅 위에 눈물을 남긴다
그 어떤 칼날로도
무너뜨리거나
베어 버릴 수 없는
눈물의 투명한 빛깔과 따스함을 남긴다.
김준태 시인의 「새·2」입니다. 새는 칼을 품지 않으니까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합니다. 어리석은 인간만이 가슴 한 구석에 칼을 품고 살다 서로 피를 흘립니다. 그러다가 칼과 함께 녹슬어가고 주어진 운명대로 살다가 죽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땅 위에 눈물을 남기고 말지요. 그 눈물은 “그 어떤 칼날로도/무너뜨리거나/베어 버릴 수 없는/눈물의 투명한 빛깔과 따스함을 남긴다.”고 합니다.
살아가는 동안 칼을 품고 살다가 피를 흘리는 인간의 애증은 아마 동물적인 생존의 본능일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넓게 보는 안목과 시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좋은 시를 남기려는 문인이 되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순간의 헛된 욕심은 이웃들에게 칼을 품는 악인이 됩니다. 부질없는 일에 아까운 인생을 낭비하지 마시고,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이웃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혜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진실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눈물로 다가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문학 활동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어리석고 문인답지 않은 시정잡배들 같은 잡스런 행동이 마침내 문학의 가치를 땅에 떨어뜨리고 자신들의 존재까지 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시를 올바르게 보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 문학 본질로 가는 길이며. 좋은 작품을 쓰게 되는 관건이 됩니다. 문학을 빙자한 엉뚱한 문학 활동은 좋은 작품 창작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자신과 이웃들을 모두 불행하게 만들어 후손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줄 뿐입니다. 세상을 바로 보는 눈, 시를 바로 볼 줄 아는 안목을 길러 투철한 문학정신을 갖는 사람들이 칼을 품지 않고 서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문학 풍토를 만드는데, 다 같이 노력해서라도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문학 풍토를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