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최근까지 만리장성을 경계로 남쪽은 중국 역사이고 북쪽은 동이 역사로 여겨 왔다. 그러던 중국이 갑자기 한반도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강탈하게 된 이유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는 한반도와 만주에서 시작한 한반도 민족의 뒤를 따른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인류유적은 5만 년 전에 구석기 시대부터 나타난다. 동남아시아에서 해안선 따라 이주해왔다. 동굴에서 살며 사냥하고 채집생활하며 사계절의 겨울 동안 생존하려 농사짓기 시작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가꾸어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 음식을 장만하는 농지를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농사짓는 문화는 호남지역과 제주도에서 가장 오랜 유적으로 발굴되고 있다. 농사는 한반도 남단에 영산강 유역에서 시작된 듯하다.
나주평야에서 처음으로 농가가 증가하며 한반도 동부와 중부의 강변에 분산되었다. 농사짓는 마을에 조상의 분묘가 동그랗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한반도의 동그란 묘지는 수만 년 동안 현대까지 지속되었다. 커다란 가족묘가 자라고 고인돌 무덤을 짓기 시작하였다. 고인돌 처음 모습은 널바위로 묘를 덮어 시신을 보호하였다. 한반도 내에 고인돌 3만여 개 중에 2만여 개가 영산강 주위와 고창 지역에 있다. 나주지역 벼농사가 성장하며 초가집을 짓고 짚배를 강에 띄워 바다로 진출하였다. 농사를 지어 인구가 증가하고 농업이 발달하여 바닷길 따라 한강, 대동강, 압록강, 요하지역과 산동반도, 그리고 일본 남부로 이주해갔다. 일본의 야요이족은 영산강 민족이다.
농사지으며 닭, 오리, 거위를 기르며 새들을 숭배하여 후에 고구려, 신라, 건국 신화에 새알에서 태어나는 전설로 이어지며 야요이족의 새 숭배 사상으로 연결된다. 백제의 금동향로(국보287호) 꼭지에 봉황새가 여의주를 품은 모습과 이조 왕궁천정에 룡과 봉황의 장식으로 이어졌다. 머리에 새의 깃을 장식하는 우리민족의 전통도 마한의 바탕에서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한반도 남단에 인구증가와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해오는 인구증가는 발해만에 집결되었다. 요하지역에서는 농업과 유목생활의 목축업이 함께 발달하였다. 이지역의 흔한 석탄은 석탄불의 고열로 사기그릇과 금속도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금속도구는 인류 생활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였다. 한반도 민족의 신석기 문화는 한반도 남단에서 나타나고 금속문화는 발해만 요동반도에서 처음 나타난다.
요하지역에서 5.500년 전에 인류의 첫 문명, 홍산문화가 탄생하였다. 유목 생활이 성장하며 말과 개를 기르기 시작하여 기마문화가 발달하였다. 주위에 풍부한 석탄은 금속도구와 무기를 갖춘 군사력이 성장하여 처음으로 국가체제를 갖춘 고조선이 건국되고 기마문화는 한반도 남쪽 영산강에 이르러 마한의 국가체제가 세워진다. 소를 몰아 밭고랑을 파고 달구지에 짐을 나르는 평화의 마을에 말을 타고 금속 무기를 갖춘 집권 세력이 나타나며 기원전 4세기부터 영산강 유역의 마한은 혁명적인 사회변화를 초래한다.
영산강 유역의 토기문명은 옹기에 시신을 간직하는 옹관묘제로 성장하며 마한문화의 특색이 되었다. 거대한 지도자의 가족묘에서 금속 왕관(국보295호), 보검, 금동 승마화(못 구두), 진주와 구슬 장식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승마구두는 말등자에서 발이 안정되도록 만들어진 못 구두 금속신발로 마한문화에서 처음 나타났다. 고조선에서 시작한 거마(車馬 chariot)의 바퀴도 마한의 발굴유물 중에 섞여 있다. 영산강 마한문화는 고창 해변 지역으로 성장하고 익산을 지나 한강 남부지역까지 영역이 확장되었다. 마한은 54마을을 보유하고 진한은 12마을, 변한은 18마을로 이루어졌고 마한은 후에 마한백제로 이어졌다.
마한의 해양 영토를 이어받은 백제는 동남아시아 해양제국으로 성장하고 일본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해변 영역은 인도의 갠지스강까지 이르렀다. 기원전 6세기에 검은 머리에 상투를 세운 석가가 갠지스강에서 불교를 시작하였다. 부여 능산리 사지에서 발굴된 백제의 금동향로(국보 287호)에 코끼리, 낙타, 악어, 등의 동남아시아 생활환경을 보여준다. 통일신라 이후에 고려의 왕건은 마한의 영역을 토대로 고려국을 건설하였다. 요하지역에서 시작한 기마문화는 몽골초원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유라시아 대륙으로 번창하였다. 영산강 주민이 뱃길 따라 요하에 이르고 요하의 기마문화와 금속문화가 영산강에 이르러 마한문화를 시작했듯 만주 지역의 고구려와 훈족의 문화는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한 한반도 민족의 역사이며 문화임을 보여준다.
나주평야에서 겨울을 지내려 농사짓기 시작하며 나타난 발효음식들, 김치, 된장, 술, 여러 가지 젓갈들은 세상에 가장 오래된 음식문화이며 지금까지 잘 보존되었다. 농사짓기 시작하며 제일 먼저 입은 옷이 일본사람들이 아직도 입는 기저귀 모양 훈도시었다. 나뭇잎으로 가리고 짐승 가죽으로 옷을 입다가 베틀에서 실을 짜서 갈·등·곡·마·면·모·견 등의 실로 만든 직물과 각종 염색물을 동원하여 고구려 고분의 벽화에서처럼 한반도의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입게 되었다. 농사지으며 뽕나무에서 누에를 기르고 비단옷을 입기 시작하였다.
한반도 들판에서 나뭇가지들을 세우고 나뭇잎이나 짐승 가죽을 덮어 집을 지어 살았다. 먹고 싸고 쏘고 잠자는 보금자리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방 하나 안에서 천정에 바람구멍을 내어 숨을 쉬며 아이 낳아 기르며 살았다. 한반도의 천막집은 몽골초원의 동그란 천막집 모양으로 아직도 가장 오랜 집 모양을 세상에 잘 보여준다. 몽골은 고구려의 후손이며 일본은 백제의 후손이다. 일본인은 언어와 생활 풍습이 우리와 제일 유사하고 백제 문화를 간직한 한반도 민족이다. 동아시아의 한반도와 주위에 음식, 의상, 주거, 등의 여러 가지 상고사 유적들이 잘 보존되었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이 한반도 문화임을 증명한다. 이때까지고 중국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한반도민족의 홍산문화는 고조선, 고구려, 훈족, 하나라, 상나라로 이어지며 황하문명을 시작하였다. 황하 지역은 한반도 민족의 상나라 영토였다. 황하문명은 장강, 메콩강을 지나서 갠지스강과 인더스강 문명으로 이어졌다. 바닷길 따라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에 이르렀다. 세계 4대 문명은 홍산문화에서 시작하였다. 훈족의 기마문화는 강력한 유동성으로 서남아시아와 지중해에 이르러서 고조선의 기마문화와 거마를 그리고 적석총(pyramid)문화를 서남아시아와 나일강에 전하였다. 거마(車馬 chariot)는 전거(戰車)로도 알려진 한반도 문화의 발명품이다. 홍산문화는 바닷길 따라 미대륙에 이르러서 중미의 마야, 아스텍, 페루, 문명들을 일으켰다. 스페인 정복자가 중미민족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 자기네 선조는 바다 멀리 맥족이었다고 말해서 나라 이름을 멕시코로 불렀다. 우리민족이 상고사에 예족과 맥족이었다고 전해진다. 중미문화의 옥돌문화는 상나라 유물들과 동일하고 농사짓는 생활 풍습은 한반도 민족과 동일하다. 미대륙 원주민은 한반도 민족이다.
동아시아의 중화족(中華族)은 일만 년 전에 인도 북방에 인도아리안으로 나타남이 인류의 혈연지도에서 보여준다. 황하 상류에 기원전 3,000년 경에 정착하여 수만 년 이전부터 정착한 한반도 민족에 혼혈되기 시작한 듯하다. 기원전 1,046년에 황하 하류에 상나라를 침공하며 중화국가, 주나라가 처음 세상에 나타났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기록한 공자도, 진나라를 부흥시켜 세계 첫 제국을 건설한 진시황제도 한반도 민족임을 알게 되었고 중국한자도 상나라에서 상나라 생활 풍습을 그림으로 시작한 한반도 민족의 문자임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중화족이 한반도 민족에 혼혈된 한족(漢族)이 전국시대에 나타났다가 한나라를 세워 진시황제의 영토를 차지하고 훈족의 침략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았다. 한나라 사마천은 한반도 민족의 역사를 중국 역사로 꾸며 기록하여 한나라를 과장하였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북경)은 고조선, 당, 수, 나라들의 군사 요지였다가, 요(거란)나라 때 처음으로 남경으로 승진하고 동이국가 금나라의 도읍이 되었다. 몽골제국의 쿠빌라이는 유라시아 세계제국을 다스리며 자금성을 짓기 시작하고 유럽의 마르크 폴로가 이곳에서 일하며 동아시아 문명에 놀라고 동방견문록을 써서 유럽에 알려주게 되었다. 1559년에 백두산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누르하치는 1618년에 청나라를 세웠다. 만주 동이족 금나라의 뒤를 이어 베이징을 도읍으로 오늘의 자금성과 천안문을 완성하였다. 베이징(북경)은 4세기 중엽부터 만주족 거란의 근거지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동이족 활동 근거지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1949년에 모택동이 천안문 광장 주위에 중화 인민공화국을 세웠다. 요녕성, 하북성, 산동성은 백제와 고구려의 땅이었고 동이족 근거지인 그 한복판 베이징(북경)에서 동이족이 중국을 다스리고 있다.
한반도 민족 훈족과 몽골은 14세기까지 세계를 다스렸다. 유럽은 몽골침략에서 기마군과 화기, 총과 대포를 배워 세계침략을 시작하고 오늘의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영산강에서 농사지으며 사계절을 사방으로 나누어 음양오행 사상을 이루었다. 음과 양, 그리고 5행은 일(양) 월(음) 화(불) 수(물) 목(나무) 금(금속) 토(흙) 7날의 일주일 제도로 오늘의 인류 생활에 적용되어 일주일 달력을 사용하고 있다. 농사지으며 사계절에 맞추어서 자라난 빨리빨리 민족성은 세계의 경쟁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한반도 민족의 정체성이 되었다.
영산강에서 시작한 인류의 문명은 인더스를 지나 지중해에 이르고 독일, 프랑스, 영국을 지나 미국에 머물렀다가 지구를 서쪽으로 돌아서 다시 동아시아에 돌아온다. 미국은 유럽의 백인들이 동아시아인, 미대륙 원주민을 말살하고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부려 성장하였다. 일차 세계대전부터 지금까지 세계를 주도해왔다. 이제 세계의 주도권은 태평양을 지나 동아시아로 넘어오고 있다. 한반도의 남과 북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조화를 이루는 역할은 한반도 민족의 몫이다. 진실을 밝히고 세상에 알리면 세상은 반드시 진리를 받아드리고 따른다. 동아시아에서 인류의 다음 세대가 태어나고 세계평화의 가정 시대가 미래의 세계에서 기다리고 있다. 한반도 민족이 어디서 와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우리의 길을 정립해야 하는 때다.
[최용완]
건축가·시인·수필가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
미네소타 주립대 대학원 졸업
오하이오주 건축회사 대표
전 문교부 문화재전문위원 역임
미주문협 신인상 수상
자유문학 신인상 수상
에세이포레 신인상 수상
최용완 ywbryan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