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는 사람들의 어울림이다. 즉, 사람들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이웃들과 같이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평온한 삶을 위해 법이라는 것이 생겨났고 그 법이 더불어 살아가는 기준을 만들어 준다.
그러나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란 말처럼 가능하면 적은 것이 좋다. 성현들은 새로운 것을 하나 만드는 것보다 불필요한 것을 하나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중국 진시황제의 통일 진(秦)나라가 겨우 14년 남짓 후 농민반란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데 새로운 패자(覇者)의 자리를 놓고 항우와 유방이 쟁패를 다툴 때 상대적으로 약한 군사를 가진 유방이 진나라 수도에 먼저 진입하여 한 것이 법을 3가지(約法三章:살인죄, 상해죄, 절도죄)만 남기고는 모두 없애고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정책으로 민심을 얻어 한(漢)나라를 세운 반면, 항우는 자신의 힘(귀족 출신, 강한 군사력)만 믿고 설치다가 민심과 멀어진다.
이처럼 예로부터 천자(天子)라고 일컫는 절대 권력자인 황제가 다스리던 시대에도 민심(民心)은 곧 천심(天心)이라 했다. 민심은 말이나 제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백성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2천2백여 년 전의 농경사회와 정보화시대인 지금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법이 너무 많거나 법에만 의지하는 것은 인간사회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최근 우리나라 지도층들의 행태를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한심하기까지 하다.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고소·고발장’을 들고 사법기관 앞에서 카메라를 보고 눈을 부라리며 서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공작이니, 표적이니’하면서 국론을 분열시키기에 바쁘고 또, 한편으로는 의정경력을 홍보하기 위해 이익단체 등과 협력하여 새로운 법을 만들기에 바쁘다.
우리나라의 고소· 고발률이 일본에 비해 2백 배 이상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일본과 단순 비교하는 것이 마땅한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해결하지 못하고(또는 해결하지 않고 정략 차원에서) 사법기관으로 달려가는 것을 자랑할 것은 못 된다.
세상엔 못 배운 사람들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잘못 배운 것 때문에 세상을 망치는 일이 종종 있다. 예전에 덕(德)이 없는 똑똑한 사람이 나라를 망치는 것과 같은 경우다. 자신들을 정치권이나 사회운동가 등 지도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욱 경계하고 새겨야 할 몫이다.
무슨 일만 있으면 늘 그랬던 것처럼 ‘고소·고발장’만 가지고 사법기관부터 찾아가다 보면 자신들의 정치력 부족과 해결 의지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민심이 떠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으며, 세상엔 ‘작용 반작용의 법칙과 질량불변의법칙’이 늘 작동한다. 그리고 하늘이 아무런 의미 없이 내려다보고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사회에는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조금 아쉬운 면이 있으면 좀 더 경험 많고 지혜로운 어른들이 차분하게 해결해 주는 ‘사회적 자본’이 있어 왔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필요하다. ‘정치적 수사, 공작 정치’를 운운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곧 그런 일들을 해 와서 ‘상대방도 그럴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국민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묻고 싶다.
입춘이 지났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라는 시구(詩句)가 들리는 듯하다. 올봄은 좀 더 이웃을 배려하고 따뜻함을 서로 나누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녹명(鹿鳴)이 생각난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사슴의 울음소리는 맛있는 먹이를 발견하면 멀리 있는 동족들을 불러 같이 나누어 먹기 위해서 내는 소리라고 한다.
결국 세상을 혼자서만 살 수 없다는 명제를 앞에 두고 ‘나와 너를 우리’라고 생각하면 좋겠다는 소망은 지나친 욕심일까. 올해는 시커먼 건물의 현관 카메라 앞에서 고발장을 들고 있는 모습보다 온갖 꽃이 피어있는 공원 시계탑 앞에서 ‘누구누구의 장점과 선행을 알리기 위한 피켓 이어들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행정안전부 등록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