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의 양심선언] 시인의 의자·48

김관식

시인의 의자·48

-억새꽃

 

시인의 의자가 있는 강변에는 억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흔들거렸습니다. 바람 불 때마다 쓰려졌다가 일어서고 다시 쓰러지고 몸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강변은 코로나로 답답한 사람들이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가끔 시인의 의자에 앉았다 가기도 했습니다.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에서 억새꽃은 서걱서걱 자작시를 낭송하고 있었습니다.


억새꽃

 

김관식

 

얼키설키 얽혀져서

쌈박질하는 잡초밭에

펜 하나 들고 찾아왔다

눈 멀고 귀 먼 잡초들

얼리고 달래어도

머리채가 뽑힌 줄도 모르고

억세게 악다구니 써댔다.

 

봄부터

날카로운 신경 곤두세운 채

펜 한 자루 끄적거리다가 백발이 되었다.

 

뿌리 채 뽑히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더니만

하나둘 모두 달아나

이제 억센 억새들이 자리 잡았다.

 

찬바람 불어올 때마다

무수히 내뱉아 놓은 말들

흩어져 허공을 떠돌아다녔다.

 

서리 발 달라붙은 억새꽃

바람 불 때마다 털고 또 털어내도

잡초들의 말 찌꺼기들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흔들었다. 사정없이 흔들었다.

싹싹 쓸어내도 다시 또 달라붙는

끈질긴 서릿발 선 잡초들의 고린내

콧 끝이 간지럽더니 재채기가 나왔다.

에취-에취-

 

한 해가 속절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으나 산천은 그대로였고, 사람들만 바뀌었습니다. 어제의 늙은이는 죽어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고, 어제의 젊은이는 오늘의 늙은이가 되어서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시인의 의자는 낡아서 흙먼지에 덮여갔습니다. 이미 시인의 의자에 붙어있는 나무판자는 삭아서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너덜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조차 점차 시인의 의자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시인의 의자는 풀숲이 가려지고 흙먼지에 덮여 묻혀 지고 있었습니다. 시를 좋아하여 이곳을 찾았던 가족들만이 꽤 유명한 시인이 강변 모래밭 시인의 의자에 앉아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를 여기 의자에 앉아 지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강변의 억새꽃은 시인의 의자에 않아 시를 읊었던 시인들의 시들을 해마다 가을이 오면 그 시들을 낭송하고 있었습니다. 시인의 의자는 강변의 자연 속에 묻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살아있을 때 사람들로 버림받아 존재가 죽어버렸던 시인의 의자는 자연의 품속으로 죽어가면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살아있을 때 죽어지냈던 존재가 죽어가면서 살아나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존재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나는 시인의 의자는 바로 자연이었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가 자연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면서 대를 이러가고 있었습니다. 대지는 생명체가 죽으면 썩어서 거름이 되어 다른 생명체가 자라나는 자양분으로 다시 순환이 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인간들이 편리하게 살겠다고 석유 찌꺼기로 만들낸 비닐, 플라스틱 같은 물질들이 순환을 거부하여 대지를 괴롭히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시인의 의자는 죽어가면서 사람들 가슴속에 해마다 억새꽃으로 살아나서 시를 쓰고 낭송하고 사람들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죽어서도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시 한편으로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시인이 죽고 시인의 의자도 소멸 되었지만 시인이 시인의 의자에 앉아 쓴 시는 해마다 살아서 강변의 억새꽃으로 피어났습니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

 


작성 2022.02.21 10:16 수정 2022.02.21 10:5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정민기자 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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