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라는 시를 외우기 위해 서로 지켜보며 기다려 주던 학창 시절의 친구가 아직 나와 세상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태평양 너머 멀리 있다는 게 흠이지만 그 시절의 이야기들은 늘 그리움의 다리를 놓아준다.
그때 무작정 외워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모란의 봉우리를 억지로 피우느라 무엇을 위해 모란이 피고 지는가를 몰랐었다. 잊어버렸던 시절의 시가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영랑의 그 시를 기억하지 않아도 해마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건만 모란이 잊혀가는 시간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지고 말면 그뿐이라는 꽃으로만 생각했었다.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동백은 요란한데 매년 봄이 올 때마다 모란을 만나보지 못했다. 모란을 기억하는 마음이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체념했던 것 같다. 생각하면 삶의 숱한 서러운 마음도 모란이 피고 진 만큼 오고 가는 세월이었다. 모란이 말한 삶의 의미는 화살 속으로 어김없이 찾아주었지만 알아보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으로 산다.
어쩌면 인간이 치러내야 할 숙명처럼 모란도 천지를 따라 자취를 감추는가 보다. 시속에 숨겨졌던 모란의 비밀을 조금 알게 된 지금 나는 이미 애달픈 노년이 되어서 모란과 함께 똑같은 세월을 살아온 것을 알았다.
얼마 전 한국의 명절인 구정을 앞두고 오래된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 문자를 보냈다. 저마다 주어진 규격 속에서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그 크기에 안주하며 사느라 정신없이 산다. 그런 지인들도 이때쯤에는 새해 덕담 인사를 나눈다. 나를 늘 쌀쌀맞게 대한다고 생각이 드는 몇 살 손위의 한 지인이 답을 보내왔다.
순간 새해부터는 나도 그 지인을 미워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반갑게 받아 보았다. 지인과 내가 유일하게 일치했던 이야기가 바로 영랑과 모란이었기에 그는 평소처럼 나를 영랑이라 부르며 다가올 줄 알았다. 그러나 지인은 나와 영랑의 정을 떼어 버리듯 차가운 한 마디로, “다음 세상에서 만나자”라고 써 보내왔다.
문득 지금에서야 이 말을 해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픔을 참으며 살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를 헤아려보지 못했던 나의 성격을 되돌려 놓고 싶어졌다. 순간 아직 숨이 남아 있는 병상에서 자신의 부음을 알리고 싶은 부고장을 미리 보내놓고 떠날 것 같은 그가 한없이 가엾게 느껴졌다.
겉으로는 모란처럼 지고 말면 그뿐이라고 봄도 그렇게 가는 거라고 말해놓고 속으로는 얼마나 모란이 되어 울었을까. 그동안 차가운 지인의 비위를 맞추어 주고 일 년 삼백예순날 울고 싶은 마음은 내가 아닌 그 지인이었다. 나 밖에는 그 지인의 성격을 맞출 수 없을 거라는 평소 나의 오만한 생각이 너무도 부질없어 씁쓸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모란의 운명처럼 모든 것은 지고 말 거라고 그 어느 봄도 생각하지 말라는 그의 말 같아 더욱
슬퍼졌다. 지금 뚝뚝 떨어져 가는 모란의 눈물이 되어 나를 찾은 그의 말은 삶의 보람 하나가 사라졌음을 알려 주었다. 미대를 나왔다고 말도 그림처럼 은은하고 도도했던 그의 성격이 그때 서야 예술가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을 죽음의 소재를 화폭에 담아놓고 떠난 불멸의 화가였다.
그동안 그와 함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못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말이 필요하지 않았던 그와 그동안 넉넉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극장 앞에 걸린 큰 영화 간판을 그리며 학비를 대던 때부터 흑백 영화 이야기를 넘어 천연색 영화 필름이 돌아가던 시간에도 모란의 세상은 똑같이 흘러갔다.
이렇게 인생의 소중한 주제를 만들어 놓고 그는 세상을 떠나야 했다. 시집 장가간다는 시절 이야기에서 나눈 멸칫국물에 말아 낸 잔치 국수 맛이 최고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느냐고 그에게 묻고 싶다. 요즘 세상 결혼풍습으로 바뀌어 버린 뷔페의 매력 빵점 음식 이야기에는 똑같이 코웃음을 쳐대던 일이 생각나냐고 묻고 싶다. 그뿐이랴 결혼식이 끝나면 참석한 하객에게 찹쌀모찌 한 상자씩 나누어 주던 이야기에 침을 삼키던 그 맛을 아직도 기억하냐고 물을 수 없어 너무도 안타깝다.
그와 나누었던 귀한 이야기들을 이렇게 접어야만 하는 것도 피고 지는 모란의 시간인가 보다. 그가 떠난 뒤에 찾아오는 모란은 그럼 그대로 돌려보내야 한단 말인가. 마냥 섭섭한 모란의 표현처럼 제목 없는 시인의 시를 남기고 떠나간 그는 진정한 예술가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절절한 찹쌀모찌 이야기를 남겨두고 떠나갈 수가 있었을까.
이럴 줄 알고 그 옛날 서울 어느 집 화단에 핀 모란꽃을 처음 보았을 때도 나는 눈길을 주지 않았었다. 빈 가슴을 아무리 모란이 채워 준다 해도 그가 떠난 세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마냥 서운해 울어야 하는 일인가 보다. 지인이 떠나고 이 봄 학창 시절부터 가슴에 담아 두었던 모란의 기억이 하나둘 떨어져 간다.
화사한 꽃보다 듬직한 모란꽃 한 송이를 지인의 주검에 달아주고 싶다. 무턱대고 피워대면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젊은 날의 꽃 같은 날들이 천하게 느껴지는 봄이다. 소박한 노인이 된 나의 모습과 잘 어울릴 것 같은 영랑의 시를 두고 떠난 그를 생각하는 봄이다. 시를 잘 외우는 학생에게는 무슨 큰 특별함이 있을 것 같았던 우리의 학창 시절의 날들도 속절없이 갔듯이 모두가 머물 수 없는 모란의 윤회인가 보다.
우리가 입었던 검정물들인 광목 교복이 최고로 잘 어울렸던 모란의 세월이면 충분하다. 인간이 치러내야 할 고독처럼 그는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모란의 잎과 함께 떠났다. 나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모란의 시간으로 삼백이 넘는 날들을 두고 서러워할 것 같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