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필의 인문학 여행] 슬픈 드네프르강

김용필

 

-우크라이나 돈바스의 국적 없는 고려인 난민

 

도와주세요. 우린 조국도 국적도 없는 난민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이주할 때 국적을 잃었고요. 돈바스 분쟁으로 난민이 된 고려인이랍니다.”


시욘은 코카서스와 우크라이나에 사는 고려인들의 생활을 답사하려고 재러 고려인 출신 소설가 누드밀라의 소설 슬픈 드네프르강을 밤새워 탐독하였다. 작가는 드네프르강의 우크라이나 평원에 사는 고려인 농부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구성하였다. 평화롭던 드네프르강 변 농원에 갑자기 밀어닥친 전쟁으로 행복한 가정이 붕괴되어 오갈 데 없는 고려인 난민이 2만이라고 전하였다.

 

그녀는 소설에서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쫓겨난 고려인 후세들이 기름진 러시아 서남부 우크라이나 드네프르와 흑해 연안으로 재이주해 살면서 돈바스 전쟁으로 겪는 고통을 그렸다. 누드밀라는 슬픈 드네프르강소설에서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지에 몰린 슬픈 떠돌이 고려인이 겪는 애환을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시욘씨, 전 흑해의 크림반도 끝 세바스토풀에 사는 고려인 소설가 누드밀라 라고 합니다. 선생님의 소설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한 고려인들의 애환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곳 남·서 러시아 흑해 연안과 우크라이나에 사는 고려인의 고통도 그들 못지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길 다큐로 찍을 의사는 없는지요. 내가 도울 수 있습니다.

 

시욘은 누드밀라에게 서신을 보냈다누드밀라씨, 슬픈 드네프르 강변에서 고통받는 고려인 난민들의 참상을 다큐로 찍고 싶습니다. 당장 우크라이나를 답사하고 싶으니 저를 도와주십시오.’ , '대환영입니다. 꼭 방문해 주세요.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풀로 오시면 됩니다.'


시욘은 흑해 크림반도로 가려고 당장 터키 이스탄불행 비행기 표를 샀다.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다시 크림반도의 심페로풀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러시아의 영토로 되어버린 곳이다. 시욘은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풀 공항에 내려 그녀의 집필실로 찾아갔을 때 그녀가 반갑게 맞았다. 30대 후반의 키가 크고 날씬한 몸매에 유럽적인 분위기에 맑고 깨끗한 피부를 가진 고려인 4세였다. 외형상으로 서글서글하고 쾌활한 성격의 그녀는 슬픈 드네프르강으로 러시아 문단에서 촉망받는 소설가였다.

 

식사를 마친 후 많은 밤늦게까지 많은 이야길 나누었다. “내일 아침에 일찍 갈 데가 있으니 주무세요.” 다음 날 아침 일찍 누드밀라가 방문을 노크하였다시욘씨, 오늘 범 러시아 고려인 연합대회와 열리는 로스토프로 갈 겁니다.”  고려인 연합대회가 열린다고요?”  러시아 지방 고려인 대표들이 모여서 고려인 발전 포럼을 연답니다. 제가 연사로 출연하거든요.”

 

로스토프는 크림반도에서 한 시간 걸리는 거리의 남부 러시아의 최대 도시였다. 곧장 전 러시아 고려인 연합대회장으로 찾아갔다. 포럼은 로스토프 지회가 주관하여 러시아 50개 지부의 고려인 대표들이 모여 민족문화 계승과 상호 정보교환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고려인들의 이익 증진하는 자리였다. 우크라이나 코카서스와 볼고그라드등 남부 러시아에 15만 정도의 고려인이 살고 있었다.

 

로스토프는 돈강의 지류인 보로네시강과 마니치강, 그리고 소스나강과 코퍼 강이 북 도네츠강과 합류하여 아조프해의 타간로그만으로 흘러 들어가서 흑해로 빠지는 이름다운 서정을 담은 강변 도시였다. 회의장은 돈바스(도네츠크, 루간스크) 국경 분쟁으로 고통받는 고려인 난민을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돈바스에서 난민이 된 고려인을 구해야 합니다.’ 토론은 진지했다. 2014년 돈바스 전쟁후 주민들은 외친다. 우릴 러시아로 편입시켜라. 절대 도네츠크 루간스크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영토니 내줄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을 해서라도 돈바스를 구하겠다고 러시아가 지원하였다. 그렇게 돈바스는 우크라이나에서 분리 독립하겠다는 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로스토프 돈강은 북으로 부리스키까지 연결되어 볼가강의 운하를 통하여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까지 배의 운항이 가능하다. (중략)

 

196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솔로호프의 작품 고요한 돈강과 누드밀라의 소설 슬픈 드네프르강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유랑인으로 사는 카자크인과 고려인의 삶을 묘사한 소설이었다. 같은 맥락이면서 두 강은 확연히 달랐다. 그녀의 슬픈 드네프르강은 꿈의 대지를 찾아와서 현지 환경과 문화에 잘 적응하는 고려인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고 솔로호프의 조용한 돈강은 전통을 중시하고 국수주의적인 카자크인들의 정서를 그렸다. 그런데 그의 소설은 카자크인의 본성을 무시하고 변화에 민감하고 타문화에 적응을 잘하는 민족으로 묘사되었다. 이로 카자크인들의 분노를 샀다. 아무튼 소설에서 슬픈 드네프르강과 고요한 돈강의 평화를 비교할 수 있었다.

 

솔로호프의 소설 돈강은 모작이라면서요?”

맞아요, 남의 작품을 도둑질한 거죠.”

 

사실이었다. ‘고요한 돈강은 원래 카자크의 표도르 크류코프의 미완 소설을 훔쳐서 완성작으로 내놓았다. 크류코프는 카자크인들의 부조리한 것에 항의하는 심성을 강조한데 비해 솔로호프는 현실 적응과 순응을 장점으로 그렸다크류코프의 원작 고요한 돈강은 1차 대전 때 백군 편에서 선 제정 러시아의 아름답고 인간적인 생활상을 그렸는데 솔로호프는 원작을 전면 개작하여 제정 러시아의 민중 생활을 비극적으로 그렸고 붉은 군대 치하에서 민중은 행복한 생활을 누린다고 묘사하였다. 이에 남의 작품을 도용하여 시류를 역설적으로 조작했다는 독자와 비평가로부터 신랄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누드밀라의 슬픈 드네프르 강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평원에서 잘 적응하며 평화롭게 사는 고려인의 삶을 있는 대로 묘사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누드밀라씨 소설에서 처참하게 무너지는 가족사의 붕괴는 어디서 찾은 모델입니까?”

전통 고려인의 대가족 사회가 무너지는 우리 집안 이야기입니다.”

누드밀라씨 가족사라고요? 그 가족사를 듣고 싶네요.”


아름다운 드네프르강은 우크라이나의 중앙을 흐르는 동맥이었다. 드네프르 강변에 사는 고려인 여교사 죠반니는 어느 날 이곳에 파견된 소련의 장교 파블로비치 중위를 만나 사랑을 속삭인다. 날마다 해바라기 꽃밭에서 만나 사랑을 하였다. 그런데 평화로운 해바라기 농원에 폭풍이 몰아쳤다. 소련이 우크라이나의 돈바스를 점령해 버린 것이다. 드네프르 돈바스에 사회주의 정부가 섰다. 그리고 파블로비치 중위는 모스코바로 전출을 가고 죠반니는 그를 기다리며 혼자 아이를 낳았다.


시욘씨, 그 아이가 바로 접니다.” 누드밀라가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만났나요?”

아니죠.”

 

그런데 돈바스 분쟁이 일어났다. 루간스크와 도네츠크 주민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하면서 일어난 분쟁이었다. 드네프르 강변에서 잘 살던 고려인들이 농토를 빼앗기고 갈 곳 없는 난민이 되었다. 시욘은 그녀의 가슴에 도사린 민족주의가 와해하는 어떤 유랑 민족의 슬픔을 의식할 수 있었다.

 

고려인은 신천지를 찾아 이곳까지 흘러와서 나름대로 삶터를 개척하고 현지 문화에 동화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전쟁으로 난민이 되어 가족사의 붕괴와 정체성마저 잊어버렸다. 비슷하게 흑해 연안의 다민족 국가들과 우크라이나는 끝없는 분쟁 속에 휘말려 산다.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같은 나라에도 정체성이 다른 이념과 문화의 색깔 때문에 분쟁과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중에 우크라이나는 심각하다. 넓은 초원과 기름진 농토를 가지고 있어서 유럽의 식량을 보급하는 곡창국가이며 가장 보수적이고 선량한 민족성을 가진 나라이다. 우크라이나는 서남부 유럽의 심장부로 10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서 민족주의 갈등이 팽배한 나라로 외침을 많이 받았다. 마침내 크림에 이어서 돈바스의 분쟁이 고조 되었다.


누드밀라씨. 언제부터 고려인들이 이곳에 이주해 살게 되었나요?”

소련이 붕괴한 후 거주 이전의 자유가 허용되면서였어요.”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고려인 3.4세대들이 기름지고 비옥한 토지를 찾아 카스피해와 흑해를 건너 우크라이나로 와서 쌀농사를 지었다. 그만큼 농사짓기 좋은 땅이 많았고 농사가 잘되어 수입도 많아서 부유하게 살았다.


그런데 돈바스 전쟁 때문에 난민이 되었어요?” 그렇게 우크라이나와 도네츠크, 루칸스크의 분쟁으로 고려인들은 난민이 되어 설 곳을 잃어버렸다.

대체 고려인 난민이 몇 명이나 되나요?” 우크라이나 전체에 2만 명이 넘어요.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국적이 없어요.” 국적이 없다고요. 왜죠?” 카자흐스탄에서 이주하면서 국적이 말소되었는데 우크라이나에 와서 국적을 얻지 못한 영주자로 살았다. 전쟁이 나니까 이들은 국적 없는 난민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국적이 없어요? 정말 불행한 일이군요.” 누드밀라는 시욘을 데리고 로스토프 시내로 나갔다. 로스토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서남쪽의 중심 도시로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 평화로운 도시였다. 이곳에 고려인이 3만여 명 살고 있었다. 그들은 강변에 서서 강 건너 저편 분쟁의 우크라이나의 돈바스를 바라보고 분노하고 있었다. 정말 돈강의 로스토프는 평화로웠다. 러시아의 식량 기지로 불릴 만큼 기름진 농토를 가지고 있는 도시였다.


로스토프 도시 중앙을 관통하는 돈강은 내륙 운하로 통하는 아름다운 뱃길과 풍경을 그려내는 곳이었다. 로스토프 돈강 변의 산책길엔 라일락꽃과 자작나무가 아름다운 정원을 이루었고 돈강은 내륙에서 아조프해를 거쳐 흑해, 에게해, 지중해로 가는 물길의 출발점이었다. 슬픈 드네프르강과 돈강이 비교되는 것이었다돈강의 운하로 연결되는 로스토프 항은 물류의 집산지로 내륙으로 물류를 운송하는 요충지였다. ·서 러시아의 철도와 도로가 발달하여 육상 운송과 해상 운송의 교차점이었다. 따라서 돈강 하류 선착장엔 지중해로 나가는 유람선과 여객선 등 크고 작은 배들이 빽빽이 정박해 있었다. 거대한 화물선들이 석탄과 원유를 가득 싣고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스토프와 돈바스가 비교되네요.”

시욘씨, 로스토프 항은 대륙과 해양의 물류를 수송하는 거점 도시랍니다. 이곳에서 연해주까지 갈 수 있어요.”

훌륭한 교통 물류망을 가지고 있군요.”


로스토프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더불어 러시아의 3대 항구였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물류의 중심지여서 고려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였다그렇게 로스토프는 운하를 통하여 모스코바까지 갈 수 있고 흑해와 지중해를 통하여 인도와 아프리카로 가는 항로가 시작되고 시베리아와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연결되는 물류의 철도망을 갖고 있었다. 열차를 타고 아조프해의 타간로크 항구에서 흑해로 연결된다. (중략)

 

시욘씨, 내일은 우리 우크라이나로 가서 내 소설의 고향을 둘러봐요.”

기대됩니다. 슬픈 드네프르 강을 볼 수 있고 그곳의 난민도 만날 수 있겠군요.”

, 그곳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한 곳이며 내가 태어난 곳이죠. 고려인들이 그림 같은 전원생활을 하고 있었답니다.”

지금도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요?”

. 3만 정도가 살고 있는데 국적 없는 난민으로 살고 있어요.”


1차 대전 때 독일군이 잡은 러시아군 포로 중에 조선인이 우크라이나 하리코프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포로 석방 후 그들은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이곳에 거의 정착하였다. 드네프르강은 고려인들의 슬픈 역사가 점철된 땅이었다. 누드밀라는 소설 슬픈 드네프르강에서 성실하고 순진한 고려인들의 민족성과 정서를 러시아인의 입장에서 잘 그려내었다. 농촌과 도시가 아름다운 강과 호수로 어우러진 울창한 숲은 천진난만한 우크라이나인과 고려인들의 정직한 생활과 일치하였다.

 

드네프르강은 천혜의 전원 풍경을 품어 안은 강이었다. 벨라루스의 스몰렌스크에서 시작하여 프리파트라강과 데스나강이 합류하여 치르노빌, 키예프, 크레멘추크, 드니프르페트롭스크, 지포로제, 도네츠크, 헤르손에서 흑해로 흘러드는 강인데 전 강역이 배편 소송이 가능하다. 강을 따라 끝없이 전개되는 논과 밭에 풍성하게 영그는 농작물의 풍경은 우크라이나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특히 강을 따라 끝없이 피어있는 해바라기 농원은 장관이었다. 이곳에 독일의 포로로 잡혀 온 고려인들과 카자흐스탄에서 이주한 고려인 후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돈바스에 사는 고려인 난민들의 생활은 너무나 처참했다.

 

누드밀라 씨, 돈바스 분쟁으로 난민이 된 고려인들은 어떻게 해요?”

국적이 없기에 구제할 길이 없답니다. 가슴이 메고 답답할 뿐입니다.”


국적이 없으니 구할 길이 없다니 이를 어찌하랴. 드네프르강과 돈바스를 돌아보고 오는 길에 시욘은 쏟아지는 눈물을 지쳐 할 수 없었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

김용필 danmoon@hanmail.net


작성 2022.02.22 11:46 수정 2022.02.2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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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