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지각의 문

고석근

 

지각의 문을 닦으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무한하게 보인다.

- 윌리엄 블레이크

 

어릴 적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초가집에서 살았다. 하지만 부족한 줄 모르고 신나게 뛰어놀았다. 초등학교 6학년쯤에 호롱불이 전깃불로 바뀌고 초가지붕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논들이 네모반듯하게 정리가 되었다. 어떤 집에서는 초가집을 헐어내고 양옥집을 지었다. 소 대신에 경운기, 트렉터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소를 빌려주고 빌리던 이웃의 정이 소와 함께 사라져갔다.

 

골목은 콘크리트로 포장했다. 마을 앞 시내의 나무다리를 없애고 새로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수천 년 동안 내려오던 사람살이 풍경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잘 살아보세!’ 새마을 노래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숨차게 앞으로 달려간 6, 70년대였다. 고무신 대신 운동화, 구두를 신고 자전거 대신 자동차를 타기 시작했다. 시골뜨기 나도 양복을 입고 출퇴근하는 월급쟁이가 되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고향 마을에 가서 동네 한 바퀴를 둘러보면, 시냇물은 병색이 완연하다. 꾸룩 꾸루륵 소리를 내며 힘없이 흘러간다. 도림사 가는 길옆에서 사철 조잘거리며 맑은 물이 흐르던 도랑에는 이제 물이 흐르지 않는다. 항상 가재들이 돌 틈에서 나와 저희들끼리 노닥거렸는데.

 

도시 근교의 산에 올라도 사람들은 더 이상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낯선 사람들도 산에서 만나면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는데. 시내버스를 타도 각자 무거운 가방을 들고 있다. 서로 가방을 받아주던 미덕은 사라졌다.

 

이제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일단 경계하고 본다. 전화, 문자가 와도 일단 의심하고 본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게 눈부신 발전의 결과인가? 잘 살게 된 결과인가? 살아오면서 계속 좋아졌는데...... .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그의 저서 지각의 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사람은 어느 순간에나 지금껏 그에게 있었던 모든 일을 모두 기억하고 우주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지각할 수 있다. 뇌와 신경계는 이런 것들의 대부분을 차단한다... 그 결과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아주 작고 특별한 정보만이 남는다.”

우리는 발전의 미신에 취해, 우리의 뇌와 신경계에는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아주 작고 특별한 정보만이 남았다.’ 그래서 계속 좋아진다는 착시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 착각 속에서 수십 년이 쏜살같이 휙 지나갔다.

 

영국의 시인 블레이크는 지각의 문을 닦으라고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무한하게 보인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아주 작디작아져 버린 지각의 문을 넓혀야 한다. 지각의 문을 닦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던 본연의 지각의 눈을 되찾아야 한다.

 

하나의 모래알에서 한 세계를 보고,

한 떨기의 야생화에서 한 천국을 보며,

손바닥에서 무한을 잡고,

한순간에서 영원을 잡는 것.

새장에 갇힌 울새 한 마리가

온 천국을 분노하게 한다.

......

어둠 속에 사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신은 나타나시며 신은 빛이시다.

하지만 낮의 영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신은 인간의 형상을 보여주신다.

 

- 윌리엄 블레이크,순수의 전조(前兆)부분

 

새장에 갇힌 울새 한 마리가

온 천국을 분노하게 한다.’

 

우리들의 눈요기를 위해 새장에 갇힌 울새 한 마리가 우리 모두의 천국을 빼앗아버렸다. 신은 인간의 형상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었는데, 나는 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제 다시는 보기 힘든 간절히 그리운 사람들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

 

 

작성 2022.02.24 11:34 수정 2022.02.24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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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