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45회째를 맞은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손보미(42) 작가의 사춘기 소녀가 겪는 성장통 단편소설 '불장난'이 결정됐다는 보도다.
미국은 이제 코로나 팬데믹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모양이다. 감염자 수가 97% 줄어들면서 마스크를 벗는 등 완화정책이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도무지 언제 풀릴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한국의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국제대학 교수는 “한국은 왜 코로나 공포속에 희생양으로 선정됐나?” 라는 발제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미국인으로 통한다.
"실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한국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 속에서 더 큰 나라로 성장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라고 할 만큼 한국에 대한 애증이 깊은 사상가다.
그는 예일대에서 중국 문학을 전공하고 1987년에는 1년 동안 국립 대만대학교에서 유학을 하면서 그때로부터 한국 고전문학과 사상, 특히 홍익인간 연구에 집중해온 인물이다. 그가 쓴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은 베스트셀러로 국방부 안보도서에, ‘한국인만 모르는 더 큰 대한민국’은 국정원 인기도서로 선정이 되기도 했다.
한국의 문화 깊이에 감명을 받았다는 그는 정치 색깔은 없지만, 최근들어 한국이 치명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고 강조한다. 외국인인 그는 적들과 싸웠던 의병들처럼 대한민국 국민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해서 분연히 싸워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모든 신문, 지하철의 안내 방송, 광고판 등이 온통 코로나바이러스로 뒤덮여 그 외 모든 중요한 사회 현안에 대한 논의는 사라져 버렸다.
코로나에 대한 대응은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한국인 고유의 인간미를 상실시켰으며,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심지어 교회 참석까지도 QR코드 없이는 못하도록 하는 등 보이지 않는 힘의 통제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우려한다.
마스크 없이 공공시설은 물론, 직장이나 학교에 가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그 원인은 바로 전 세계 소수의 슈퍼리치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세력이 미디어와 정부기관의 유력자들을 통제하여 중산층이 주도하는 경제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끝없이 돈을 찍어내면서 정상적인 경제가 무너지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더 나아가 이들 소수독재 세력은 인간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는 감옥과 같은 지구 역사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을 조련하기 위해 쓰이는 마스크는 나노 사이즈의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수단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산소 공급을 차단시켜 면역 체계에 더 해롭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마스크는 시민들을 집단 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권위에 저항 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상실하게 된 군중들은 주변 사람들 모두 마스크를 쓰면.자기도 쓸 수밖에 없고 이런 식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 한국인들은 어떠한 중앙집권적인 전체주의에 대해서도 저항할 수 없는 심리상태가 된다는 논리이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이 상태를 심리적 전쟁, 즉 군대에서 행하는 수준의 심리전이라고 단언한다. 그 결과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코로나주사를 맞은 국가이고 K방역의 수준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이 석학이 진단하는 한국인들의 성향은 1. 한국인들은 국제사회로부터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것에 강한 집착을 한다. 2.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학교에서 스스로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교수의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폰 보급과 온라인 일일 쇼핑에 대해 무조건적인 숭상을 하는 나라인 건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무슨 문제가 있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된 것은 아닐까.
인생이란 생각하는 사람에겐 희극이고 느끼는 사람에겐 비극이란 말이 고대 그리스 격언에 있듯이, 내가 어렸을 때 산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사람들이 개미처럼 아주 조그맣게 보였었다. 그리고 국군의 날 군인 아저씨들이 시가행진하는 것이 그냥 병정놀이 같았다. 그리고 커서 결혼 후 여름 바닷가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놀 때면 어른들이 돈 많이 벌겠다고, 유명해지겠다고, 감투 쓰겠다고 애쓰는 것이 어린 아이들이 열심히 모래성 쌓는 거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인정이 많아서였는지 나도 점심을 못 가지고 오는 같은 반 친구가 있으면 같이 나눠 먹고 때로는 도시락째 주기도 했다. 길을 가다가 헐벗은 거지아이를 보면 내가 입었던 옷까지 벗어주고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한테 야단맞고 했던 기억이 있다. 명절 때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더욱 가엾게 느껴졌다. 추석 다음날엔 학교 변소가 초만원이었다. 평소에 잘 못 먹다가 모처럼 기름진 음색을 먹었거나 과식한 탓이었으리라. 좀 더 생각해보면 6.25 한국동란 때 어른들의 '불장난' 전쟁놀이로 얼마나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다치며 엄청나게 수많은 비극과 불행이 닥쳤는가.
다른 사람들 얘기는 그만두고라도 내가 겪은 일들만으로도 인생이 '비극'인 동시에 '희극'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8.15 해방 전 일정 시대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공출한다고 낙하산줄 만든다는 칡넝쿨을 걷으러 산비탈을 기면서 손과 팔 다리가 가시에 찔리고 피투성이가 되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하루는 학교. 방공호 속에 들어가 속옷을 벗어 이를 잡아서는 종이봉지에 으라고 했다. 제일 많이 잡는 아이한테는 상까지 준다고 해서, 나는 남보다 더 많이 잡아보겠다고 한 손에 종이봉지를 들고 또 한 손으로만 이를 잡는 대신 종이봉지를 입에 물고 두 손으로 부지런히 이를 잡아 종이봉지에 넣었는데, 시간이 다 돼서 선생님께 드리려고 종이봉지를 들여다보니 이가 한 마리도 없는 게 아닌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추운 겨울 날 내복을 벗어 이를 잡으니 이도 추위를 못 견뎌 따뜻한 곳을 찾아 내 입속으로 기어들어갔음에 틀림없다.
요즘은 미국 학교에서도 무료로 배부되고 있다는 콘돔이 주로 성병예방이나 피임용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7년 전 8.15 해방 직후에는 우리 어린 아이들에게 아주 색다르고 별스런 장난감이었다. 그 때 나는 서울 동대문 밖 종암동에 있는 당시 우리 나라에서 학생 수가 제일 많다는 종암국민(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자 그 동네 살던 일본인들이 두고 떠난 적산가옥에 코쟁이 미국인들이 살게되면서부터 우리 어린이들은 보물 찾듯 그런 집 쓰레기통을 뒤져 오그라든 '고무장화'(지금 생각해보니 요샛말로 콘돔)를 고무풍선으로 신나게 불고 다녔다. 오늘날 어린이들은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전자오락 비디오 게임이다 컴퓨터다 별의 별 장난감을 다 갖고 놀지만 그 때 우리가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래야 좀 두꺼운 종이로 만든 딱지, 나무를 깎아 만든 팽이나 자치기, 엽전을 종이로 싸서두 끝을구멍으로 내어 갈래랄래 찢어서 이를 많이차기 내기하는 제기가 고작이었다. 그러던 어린이들에게 너무도 신기하고 새로운 장난감이 생긴 것이었다.
이런 일들을 돌이켜보면 모두 희극이고 느끼자면 다 비극 아닌가. 아마도 느끼기를 너무 심하게 했더라면 나는 벌써 오래전에 인생를 비관해 염세자살을 하고 말았으리라. 그리고 인생이 희극일 뿐이라고 생각했더라면 허무주의 nihilism에 빠져 케세라 케세라 될대로 되라며 취생몽사醉生夢死했으리라.
그러나 내 나름대로 진지하게 열심히 살아온 데는 내가.일찌감치 제3의 결론을 얻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인생은 물론 희/비극임에 틀림없지만 그보다는 모험이란 생각에서 매사를 탐험하듯 용기와 신념을 갖고 열정으로 살아왔다. 남들이 다.안 된다고 엄두도 못내는 일일수록 더 해보고 싶었다. 남들이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새로 길을 만들어가면서 살아보고 싶었다.
어차피 인생이 소꿉놀이 같다면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그리고 매사에 너무 심각할 것도 없지 않을까. 그래도 각자 제 멋대로 제 가슴 뛰는대로 살아보는 것 이상 없지 않겠나 싶다. 프로이드도 성욕 애욕을 의미하는 '리비도 libido'가 삶의 원동력이라고 했다지 않는가.
자, 이제, 앞에. 언급한 콘돔으로 돌아가 이 단어 풀이 좀 해보리라.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기구로서의 그 중요성을 감안할 때 결코 무의미하지 않으리라.
영어로 'con'이라 함은 라틴어로 반대한다는 뜻의 'contra'의 약자이고 우리말로 '돈 놈'의 약자 '돔'과 함께 '콘돔'이란 단어가 생겼을 법 하다. 아니면 조건부란 뜻의 'conditional'의 약자인 'cond'에다 산스크리트 범어의 '옴' 자를 갖다 붙여 잡스러움이 붙지 않고 엄마, 어머니의 '엄'의 변형 '옴' 자로 세상 모든 것의 근본을 찾아 순간순간의 삶을 사랑으로 채워보라는 것 아닐까. 그도 아니면 마음의 반성 또는 집중상태를 가리키는 '생각하는 모자 thinking cap'를 쓰고 아니 끼고 자중자애自重自愛하라는 뜻이었으리라. 어쩌면 그래서 '남자들은 자지로 생각한다 . Men think with their dicks/penises.'라는 말이 서양에 있나 보다.
끝으로 지난해 2021년 10월 4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 글 우리 되새겨보리라.
2021년 10월 2일 미주 뉴욕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뉴스칼럼 <‘신유목민’의 삶>을 옮겨본다.
평생을 미국 직장에서 일해 온 김명국씨는 은퇴 후 RV를 집으로 삼아 전국을 여행하면서 노후를 보내겠다는 계획을 아주 오래전 세웠다. 미국 자산관리회사에서 컴퓨터 담당자로 일하다 65세에 회사를 나온 그는 홈 디포의 키친 디자이너로 제2의 삶을 살다 지난 2019년 78세의 나이로 마침내 은퇴했다. 그리고는 평소 꿈꿔온 은퇴 후 계획을 곧 바로 실천에 옮겼다.
샌버나디노의 집을 판 후 그 돈으로 가장 먼저 튼튼하고 쓸 만한 중고 RV를 구입했다. 수천 달러를 들여 차량의 안전장치를 강화한 후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2020년 2월 드디어 미 전역을 도는 대장정에 들어갔다. 2월 샌디에고에서 시작한 장정은 11월까지 무려 9개월 동안 계속됐다. 그는 이 기간 중 미 본토 49개 주 가운데 아칸소 한 곳만 제외한 48개주 모두를 돌았다. 총 운전거리는 3만7,000마일에 달했다.
그리고는 지난해 12월 구입한 데저트 핫 스프링스의 모빌 홈에서 겨울을 난 후 지난 4월 또 다시 대장정에 올랐다. 이 여정의 목적은 알래스카 곳곳을 훑는 것이었다. 그는 5개월 동안 총 1만3,000 마일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9월 중순 자신의 동절기 거점인 모빌 홈으로 다시 돌아왔다.
김씨는 “나에게 남은 시간을 소유가 아닌 더 많은 경험으로 채우고 싶었다”고 RV 위의 삶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미국 전역을 돌면서 무수한 새로운 풍경,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김 씨의 경우처럼 시간의 대부분을 RV에서 보내거나 완전히 RV에서만 생활하는 미국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런 추세는 팬데믹을 지나면서 한층 더 가속화되고 있지만 그 이전부터도 RV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것은 RV 소유와 판매 현황에서 확인된다. RV 산업협회에 따르며 RV를 소유하고 있는 북미 가구 수는 무려 1,120만에 달한다.
RV 소유주들 가운데 아예 이것을 집으로 삼고 살아가는 미국인들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제적 처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RV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본인들의 선택에 의해 자발적으로 RV족이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김 씨처럼 은퇴생활을 즐기는 노인층 뿐 아니라 RV로 여행하고 일도 하는 젊은 층도 많다. 자발적 RV족은 오래 전에 1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1세기의 새로운 유목민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긱워크(단기노동 형태)를 통해 생활비와 여행경비를 충당한다.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사이트도 있고 아마존 같은 기업은 성수기 동안 RV족을 특별 모집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임시직뿐 아니라 CPA 등 전문직 일을 하는 RV족도 적지 않다. 과거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이것을 가능케 해주고 있는 것은 디지털 기술이다. 그래서 이런 RV족들을 ‘디지털 유목민’ 혹은 워캠퍼스(Workampers, 캠퍼에서 일하는 사람들)라 부르는 것이다.
김명국씨가 80이 다 된 나이에 두려움 없이 대장정에 나설 결심을 한데는 본래 젊은 시절부터 여행을 좋아했던 데다 미국회사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해 영어와 디지털 기술에 능숙한 것도 도움이 됐다. 그는 여행 중 자녀들은 물론 지인들과도 수시로 소통한다. 타주에 사는 자녀 가족이 그의 여정 중간에 잠깐 합류해 같이 여행을 즐기기도 했다.
신유목민들을 위한 여건과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RV 위에서의 삶이 항상 안락할 수만은 없다. ‘분도킹’(boondocking), 즉 전기가 없는 곳에서 생활해야 할 때 있고 디지털 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크게 불편할 수도 있는 이런 삶을 굳이 선택하고 있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이다. 그리고 “소유보다는 경험”이라는 김명국씨의 말속에 바로 그 답이 들어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목민 삶의 방식(Nomadic Lifestyle)에 대한 말 몇 마디 Quotes for the Nomadic Lifestyle and long term Travel 인용해보리라.
네가 소유하는 것들이 너를 소유하게 된다.
Things you own, end up owning you . (Fight Club)
진정한 나그네는 무계획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A good traveller has no fixed plans and is not intent on arriving. (Lao Tzu)
확실치 않아도 그냥 길을 가다 보면 흥미로워진다. If in doubt, just walk until your day becomes interesting. (Rolf Potts)
나의 종교는 살다 후회없이 죽는 거다. My religion is to live and die without regret. (Milarepa)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에 아주 극 소수만 날아보고 싶어한다. 이 얼마나 딱한 일인가? 유목민은 난다. In a world full of people, only some want to fly. Isn’t that crazy? Nomads fly. (Seal)
세상 사람들은 날보고 뿌리를 내리라 했다. 나는 날개를 키웠다. They told me to grow roots, instead I grew wings. (Lou)
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그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그 어떤 독선 독단적인) 교리나 주의 주장이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이런 것들이란 그 어떤 다른 사람의 생각의 결과물일 뿐이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someone else’s thinking. (Steve Jobs)
난 평생토록 내일만 기다려 왔다. (내일은 오지 않는다.) I’ve been waiting for tomorrow all my life. (Tomorrow never comes.) (Matt Johnson)
긴 여행은 사회에 대한 반항행위가 아니고 사회생활의 상식이다. Long term travel is not an act of rebellion against society; it’s an act of common sense within society (Rolf Potts)
신神의 한 벗은 여행이다. One friend of God is traveling. (Sufism)
네가 찾는 것이 너를 찾는다. What you seek is seeking you. (Rumi)
혼자 있을 때 네가 외롭다면 너는 벗을 잘못 사귄 거다. If you are lonely when you are alone, you are in bad company. (Jean-Paul Sartre)
변화를 이해하려면 그 변화 속으로 뛰어 들어 그 변화와 같이 움직이고 춤추는 방법밖에 없다. The only way to make sense out of change is to plunge into it, move with it, and join the dance. (Alan Watts)
고향 집은 여기 그리고 지금이다. Home is the here and now. (Buddhism)
네가 경험한 순간들만 네 소유로 그 아무도 앗아갈 수 없다. The moments you have experienced are the only possession that nobody can take away from you. (Unknown)
길이 나의 스승이다. The road is my teacher (Yours truly!)
변화가 고향 집이다. Change is home. (Me again!)
자, 이제, 지난해 2020년 11월 6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칼럼도 옮겨보리라.
[이태상 칼럼] 우리는 인생탐험가, 나아가 우주탐험가, 코스미안 이어라
다른 사람들이 속아왔듯이 나도 사람에게는 누구한테나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인생 80여 년 살아오면서 ‘선택 의 자유’는 신념과 용기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작가J(John) R(Richard) L(Lane) 앤더슨 (Anderson1911-1981)이 쓴 인간의 탐험심에 관한 그의 저서 ‘율리시스 요인(The Ulysses Factor: The Exploring Instinct in Man(1970)’ (352페이지의) 책 내용을 내가 단 한마디로 요약 하자면 이렇다.
‘인간의 정신은 여러 개의 창문을 갖고 있다. 어떤 창문이든 열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창문을 열어보 고 싶은 본능을 타고났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Odysseus)의 라틴어 이름이고, 로마인들은 라틴어로 울릭세스(Ulixes), 혹은 울리세스 (Ulysses)라고 불렀고, 영어로는 율리시스라 하는 이 '율리시스 (Ulyssess)'는 그리스 전설 시대에 이타카(Ithaca)의 왕으로, 그는 기원전 8세기경 고대 그리스 중 암흑기 말기에 활동했던 유랑시인 호메로스 (Homer)의 서사시 ‘일리아드 (Iliad)’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며, ‘오디세이(Odyssey)’의 주인공이다.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는 그의 대표작 소설 ‘율리시스(Ulysses, 1922)’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율리시스’ 속에 수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두었기 때문에 앞으로 수 세기 동안 대학교 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 하기에 바쁠 것이다. 이것이 (나를) 불멸의 작가로 보장하는 유일 한 길이다. (I've put in so many enigmas and puzzles that it will keep the professors busy for centuries arguing over what I meant, and that's the only way of insuring one's immortality.)”
그는 또 이런 말도 남겼다.
“나는 나 자신이 진짜 모험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건대, 진짜 모험이란 집에만 있는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인 까닭에 타향 (他鄕)에서 감행해야 한다. I wanted real adventure to happen to myself. But real adventures, I reflected, do not happen to people who remain at home: they must be sought abroad."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로 높은 이상(理想)과 무지갯빛 낭만 (浪漫)으로 터지도록 가슴 부풀었던 젊은 시절 나도 모험심 (冒險心)과 탐험심(探險心)에 불타 시간과 공간을 초월(超越)한 인생 무 대에서 활약한 역사, 문학, 예술, 철학, 종교 세계의 대탐험 가들에 관한 책을 탐독하고 인간 정신의 창문을 열고 새 지평 (地平) 아니 천평(天平)을 개척한 그들 못지않은 탐험가가 될 것을 꿈꾸면서 그 어떤 모험도 불사했다.
홍길동이니 돈키호테란 말 들으면서 좌충우돌(左衝右突) 뒤죽 박죽, 천방지축(天方地軸), 날뛰던 내가 어느 틈에 80대 중반 노인이 되고 보니, 하늘의 별이라도 따겠다는 다른 많은 몽상가 (夢想家)들처럼 풀죽은 나도 조금은 미몽(迷夢)에서 깨어나 냉엄 (冷嚴)한 현실(現實)이란 환경과 사회적인 관습에 얽매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웬일일까. 나의 가슴은 젊었을 때 못지않게 여전히 설레며 벅차게 뛰고 있다. 새 창문을 열고, 새 문을 두드리며, 새로운 지평선(地平線) 아니 천평선(天平線) 아니 우평선(宇平線) 을 향해 새로운 코스미안의 기(氣)똥찬 길을 떠나고 있다. 신기루 (蜃氣樓)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새 오아시스, 새 코스모스를 찾아서…
어떤 교리(敎理)나 이론(理論) 따위는 아랑곳없이 나는 아직도 언제나 모험을 하고 있다. 그 무엇인가를 아니면 그 누군가를 찾아서… 어떤 의미와 뜻, 그 어떤 길, 지로역정(地路歷程) 아니 천로역정(天路歷程) 아니 우로역정(宇路歷程)의 코스미안의 길에 오른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나의 마음과 혼을 꼭 닮은 신(神), 다시 말해 나의 진짜 ‘짝’ 아니 작은 나 ‘소아(小我)’의 큰 나 ‘대아(大我)’를 찾아가는 것이리라.
몇 년 전에 로마 가톨릭 교황이 ‘남편이 아내를 강간하는 것이 가능 하다’고 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속으로 실소(失笑)를 금치 못했다. 결혼도 안 해본 제 주제에 뭘 어찌 안다고. 차라리 실수를 하고 시행착오(施行錯誤)가 있더라도 무사무고(無事無故) 의 백지답안(白紙答案)을 내놓기보다는 할 수 있는 대로 한껏 기껏 인생을 탐험하고 경험해 보겠노라고 말한 이탈리아 여배우 소피아 로렌(Sophia Loren, 1934 - )한테서 좀 배울 일이지, 쯧-쯧-!!
‘있는 자에게는 더 줄 것이요. 없는 자에게서는 있는 것까지 빼앗으리라’는 예수의 말이 정말 ‘용용 죽겠지.’ 참으로 원통(寃痛), 절통(切痛)할 일일 것이다. 인생무대에서 제 노릇 한 번 제대로 못 해 보고 그 어느 누구 ‘허깨비’의 대리 노릇이나 하는 ‘조형 인간 (造型/造形 人間/印刊/印簡)’ 꼭두각시 인생의 비애(悲哀)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우리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의 경구 (警句) 하나 들어보리라.
눈처럼 흰 종이 한 장이 말했다
순결하게 나는
창조되었으니
영원무궁토록
순결하게 나는
살리라.
내 몸에
더러운 것이
가까이 오거나
검은 것이
내 몸에
닿는 것을
참고 견디느니
차라리 나는
불에 타서
하얀 잿가루가
되리라.
잉크병이 이 말을 듣고
그 시꺼먼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그는 종이에게
접근조차 아니 했다.
종이가 하는 말을
들은 색색이 색깔의
여러 가지 색연필들도
또한 종이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눈처럼 흰 종이는
순결하고 정숙하게
영원토록 있었다.
순결하고 정숙하게
그러나
외롭고 공허하게
- 칼릴 지브란의 ‘선구자(先驅者)’에서
‘Said a Sheet of Snow-While Paper’
Said a sheet of snow-white paper,
"Pure was I created, and pure will I remain for ever. I would rather be burnt and turn to white ashes than suffer darkness to touch me or the unclean to come near me."
The ink-bottle heard what the paper was saying, and it laughed in its dark heart; but it never dared to approach her.
And the multi-coloured pencils heard her also, and they too never came near her.
And the snow-white sheet of paper did remain pure and chaste for ever -- pure and chaste -- and empty.
- from The Forerunner (1920) by Kahlil Gibran(1883-1931)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인생탐험가, 나아가 우주탐험가, 코스미안이어라. 그것도 밖이 아닌 안으로 탐험함으로써 밖을 보게 되는 우주탐험 말이어라.
우리의 선각자(先覺者)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이자 이슬람 법학자 무울라나 잘랄에딘 모함마드 루미(Jalal ad-Din Muhammad Rumi 1207-1273)도 진즉에 이렇게 밝혀 주지 않았는가.
“우주는 네 밖에 있지 않다.
네 안을 보라.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미 바로 너이니.
The universe is
not outside of you.
Look inside yourself;
everything
that you want,
you already are.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