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검을 보다

신연강

사진=신연강


바람의 흔적을 보아라, 얼음 위에 남긴 칼의 노래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자유로운 영혼의 속삭임을. 동장군과 어울려 신명 나게 군무를 추고 사라지는 바람. 내년 이맘때 다시 돌아올 것이다.

 

글은 칼이다. 날카롭고 예리하며 따뜻하고 묵직한. 시류를 풍자하는 글은 웃음 짓게 하고, 시사를 예리하게 분석한 글은 통쾌하고 섬뜩하다. 부조리와 불의를 향해 돌직구를 날리는 글에는 중력을 이겨내는 힘과 끓어 넘치는 기운이 있다.

 

글은 검이다. 몇몇 작가의 글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다산(多産)을 자랑하는 하루키의 글은 편안하고 유머가 넘치지만, 무자비한 링(글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글쟁이의 지난한 노력과 비장한 각오를 전한다. 박상우 소설가의 글에는 유혹의 바다를 오롯이 건너야 하는 글쟁이의 올곧음과 강인함이 있으며, 김훈 작가의 짧고도 비감 어린 산문에는 노동의 세계를 견뎌온 강인함과 곤고함이 촘촘하고 따스하게 배어있다. 백무산 시인의 글은 자본이라는 거대한 산에 온몸으로 맞서며 옹골찬 기운을 뿜어낸다. 그들 모두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글을 조련해온 장인(匠人)의 역량과 경지를 보여준다.

 

근래에 위기의 쓰나미가 밀려오지만, 한편으론 주변이 풍성해졌다. 코로나로 수많은 생명이 떠나가고, 경제적 위기가 사람들의 마음과 재산을 쓸어간다. 재활용센터 앞에 산더미로 쌓인 집기를 보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마스크 뒤로 숨은 얼굴은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아 보이는 불확실성의 세상. 다행히 사색의 강을 흐르는 물살은 더욱 거세고 찬란하다. 때론, 반사하고 때론, 격렬하며 때론, 잔잔하며 예리하다.

 

전쟁터를 떠올린다. 그 옛날 전장의 군영. 한 장수가 검을 휘두른다. 낯익은 검법이다. 장군 반열에 오를 법한 검술을 지녔으나, 불평 없이 충직하게 본분에 임하던 그는 쉼 없이 검을 연마하며 살아남았다. 다른 누군가는 큰 갑옷을 하사받고 소리 없이 도망쳤다. 또 다른 소년장수는 소소한 검술을 더욱 열심히 선보이기도 했다. 진정한 검법이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거나, 상소로 왜곡되거나, 또는 관심 밖이었을지 모른다. 한때 혈기 가득한 젊은 장수들이 군영을 찾아왔다. 그리고 떠나갔다. 오래전 얘기다.

 

온갖 검객과 검술이 어우러져 제국을 건설한 얘기. 출중한 전략가와 검객이 난무한 제자백가 시대이거나, 출신을 따지지 않고 중용해 강성대국을 건설한 당 제국을 보는 듯한 즐거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중흥에는 법치에 따른 엄격한 자기규율과 정도를 향한 의지,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 검술에 대해 확신과 긍지가 있었던 검객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리고 젊은 기사들이 꿈을 세우기 위해 몰려들지 않았던가. 오색찬란한 생각을 앞세우고 그들은 잠들지 않은 땅을 밟지 않았던가. 아마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글은 검이다. 자기 검의 성격을 잘 알고, 절차탁마한 검술로 자신만의 무공을 펼치는 자를 나는 진정한 검객이라 부르고 싶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

신연강 imilton@naver.com

 


작성 2022.02.28 11:26 수정 2022.02.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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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