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시조 시인 이은상이 고향 마산 앞바다를 떠올리며 지었다는 시 ‘가고파’에 나오는 애틋한 노랫말들을 직접 느껴보려면 마산 무학산(舞鶴山)에 오르면 된다.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고 바다를 향해 날아갈 듯한 모습의 산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무학산은 지금은 창원에 흡수된 마산의 진산(鎭山)이다. 항구도시 마산을 서북쪽에서 남북으로 길게 병풍처럼 둘러싸고 우뚝 솟아 있는 해발 761.4m의 무학산은 백두대간 낙남정맥(南正脈) 기둥 줄기의 최고봉이다. 마산(馬山)이란 지명도 무학산의 옛 이름인 말재 또는 마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마산 9경의 하나이자 전국 100대 명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무학산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가닥이 있다. 남북을 종주하는 코스로는 남쪽 만날고개-대곡산-무학산 정상-북쪽 봉화산으로 이어진다. 북능은 창원시 천주산까지 이어진다. 가장 많이 오르는 코스는 서원곡에서 걱정바위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이다. 거리가 짧으면서 경관도 빼어난데 정상까지 1.9㎞로 1시간 30분 남짓이면 오를 수 있다.
오늘 산행은 서원곡(書院谷)에서 시작한다. 서원곡은 무학산이 동쪽으로 길게 뻗어내린 울창한 숲 사이에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예전에 회원서원이 있어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지금은 서원이 없어지고 선조 때 유학자 정구가 세운 정자 관해정(觀海亭)만이 서원곡 입구에 남아있다.
서원곡의 백운사를 지나 숲속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7부 능선쯤 오르면 우뚝 솟아 절벽을 이룬 걱정바위가 나타난다. 전망이 확 트인 걱정바위 전망대에 서면 온갖 걱정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마산 합포만과 건너편의 창원, 그 가운데 덩그러니 떠 있는 돝섬, 그 오른쪽 바다가 열리는 곳에서 물 위를 가로지르는 마창대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걱정바위를 지나 나무로 된 365개의 사랑계단을 오르면 정상 바로 아래 널찍한 ‘서마지기’가 나온다. 정상 바로 아래 600평 정도의 넓은 공터가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어릴 때 이곳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했던 유년의 기억들이 그리움 되어 다가온다. 특히 봄의 무학산은 진달래꽃에 덮여 붉은 학으로 변한다. 서마지기와 학봉, 대곡산 등의 진달래 군락이 절경을 연출해 4월이 되면 전국에서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서마지기에서 다시 365개의 건강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무학산 정상이다. 억새투성이인 주봉과 서마지기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주릉을 펼치고 있는 이 산 서쪽 사면은 광려산과 마주하면서 경사가 급한 반면, 동쪽 사면은 산세가 약해지면서 마산 일원을 포근하게 안고 있다. 마산만 앞바다에 거북이 모양으로 떠 있는 아담한 돝섬, 마산과 창원을 잇는 마창대교, 진해 앞바다. 낙남정맥의 최고봉답게 마산과 창원 시가지를 비롯해 서북쪽까지 사방이 발아래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상은 학 몸통의 중심에 해당한다. 서원골 동쪽에 바위로 이뤄진 학봉은 학의 정수리다. 정상 바로 아래 서마지기에서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왼쪽 날개이고, 오른쪽 날개는 대곡산과 만날고개로 이어져 가포만 바다로 닿는다. 무학산은 높이에 비해 산세가 험하고 웅장하지만, 곡선이 부드러워 편안하고 포근한 어머니 같은 산이다. 마산 시가지를 병풍처럼 에워싸서 겨울 북서풍을 막아주는 무학산 덕분에 마산 사람들은 따뜻하게 겨울을 지낸다.
호수처럼 잔잔한 마산 앞바다, 그 서정적인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무학산은 마산을 문학과 예술의 도시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노산 이은상을 비롯해 아동 문학가 이원수, 작곡가 조두남, 무용가 김해랑, 조각가 문신,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제하, 음악가 반야월, 만화가 방학기, 영화감독 강제규 등 뛰어난 문학 예술인들이 마산에서 많이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상에 서면 함안 여항산, 고성 방향 거류산, 그 너머로 지리산, 덕유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가야산과 비슬산, 팔공산까지 조망된다. 진해 장복산, 가덕도 연대봉, 거가대교도 발아래로 펼쳐지고, 마산 신항을 비롯해 마산 앞바다 돝섬과 해양신도시, 마창대교, 거제 앞바다가 한눈에 가득하다.
마산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성지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해 4.19혁명을 촉발시킨 3.15의거와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에서 보듯 마산은 불의에 앞장서 분연히 일어났다. 마산을 어머니처럼 감싸 안은 무학산의 거침없는 기개와 정기가 자유, 민주, 정의를 사랑하는 마산 시민정신의 원류이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중봉을 거쳐 학봉 안부에서 서원곡으로 내려선다. 무학산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학봉이다. 푹신한 흙으로 덮인 육산이 분명한 무학산에서 학봉은 별난 존재다. 수려한 암릉으로 이뤄진 학봉은 무학산이 골산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골격미를 지녔다. 하산길에 전망이 트인 바위에 서니 학봉 오른쪽으로 학창 시절 다녔던 고등학교 운동장이 보인다. 교련 시간에 저 운동장에서 학봉까지 땀 흘리며 올랐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산행 후 친구들과 오동동 아구찜거리 골목에서 고향의 향수가 묻어나는 건아구찜과 미더덕찜으로 고향의 맛을 즐기며 고향의 추억을 소환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 까지 따뜻해진다.
여계봉 선임기자
yeogb@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