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자랑하는 인물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1821~1881), 그는 28세 때 별것 아닌 일로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인생의 황금기 거의 10년을 시베리아 수용소와 군에서 보내야 했다. 시베리아에서 풀려난 뒤로는 늘 빚에 쪼들려 선금을 받고 마감 기일에 쫓기며 원고를 써대는 고단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몸에 붙은 도박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고 지병인 간질도 늘 그를 괴롭혔다.
농부 마레이는 1876년 2월 ‘작가 일기’에 실린 단편이다. 시베리아 옴스크 유형소에 들어간 첫해인 1850년 봄의 일로 추측된다. 내용은 이렇다. 화자인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다. 그는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하고 있던 중, 부활제 주간을 맞아 자유 시간이 주어지자 온갖 추잡한 행동을 일삼는 동료 죄수들을 보고 혐오와 증오심을 느낀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욕설과 말다툼을 하고 도박판을 벌인다. 부활절 주간 둘째 날, 견디다 못해 감방을 뛰어나온 도스토예프스키는 M-츠키라는 폴란드 정치범이 죄수들을 향해 이를 갈며 "난 저런 망나니들을 증오해!"라고 내뱉는 소리를 듣는다.
수용소의 감방으로 돌아와 나무침상에 팔베개를 하고 눕는다. M-츠키의 말을 되새기며 과거를 회상하던 중 문득 20년 전 다보로예에서 있던 일을 떠올린다. 아홉 살 때, 집 근처 숲에 버섯을 따려고 들어갔는데 '늑대가 온다!'라는 환청이 들린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공포에 질려 근처에서 밭을 갈고 있던 마레이에게 달려간다. 마레이는 도스토옙스키 영지의 농노였다.
“어디 보자. 단단히 놀랐구나. 아이고, 괜찮다 얘야 꼬마야!” 그는 팔을 내밀며 도스토옙스키의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다니까. 예수님이 너와 함께 있는 걸. 십자가를 그어라.”
그런데 20년이 지난 이 순간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진정시켜 주던 농부 마레이가 떠오른 것이다. 내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쟁기질을 멈추고 어머니같이 인자한 미소로 지켜보던 모습과 성호를 긋던 모습이 말이다. 그 당시는 자유의 가능성을 기대하지도 못했던 그 불쌍한 농노에게서 고상한 인간의 감정과 부드러운 마음을 느낀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침상에서 내려와 주변을 둘러본다. 눈앞의 죄수들은 난폭하고 무자비하지만 그들도 마레이처럼 내면에 깊고도 개화된 인간의 감정이나 여성스러운 온화함과 섬세함으로 가득 차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마음속까지 다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자 죄수들에 대한 증오심과 혐오감이 사라진다. 그날 저녁 다시 한번 M-츠키를 만나게 되는데 그에게는 마레이와의 추억 같은 것이 없었을 것으로 보여 오히려 불행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가 어린 시절 자신의 집 농노로부터 느꼈던 따뜻한 기억이 그가 시베리아에서 만난 농노출신의 유형수 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고 한다. 바로 죄수로 들어와 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원래는 마레이와 같은 따뜻한 사람들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그의 가슴에 있던 분노를 사라져 버리게 했다는 거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의 친아들이었어도 나를 그때보다 더 밝은 사랑의 눈길로 쳐다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우리 집의 농노였고 내가 도련님이었기에 그렇게 한다고 해서 상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위에서 보고 계셨을 것이다. 이처럼 도스토옙스키는 유형행활의 생지옥을 공상적 사회주의자에서 영적 구원을 좇는 기독교적 인도주의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 따라 상대를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다.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 없는 시선을 말한다. 내가 물질을 더 가졌다고 해서 내가 남들보다 똑똑하다고 해서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타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세상의 연약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품어주어야 한다는 두 가지의 마음을 배운다. 지금의 세상은 누구나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는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작품은 연민과 긍휼과 사랑이 내 가슴의 얼마를 차지하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촉구하고 있다.
[민병식]
인향문단 수석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문학산책 공모전 시 부문 최우수상
강건 문화뉴스 최고 작가상
詩詩한 남자 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2020 코스미안상 우수상
민병식 sunguy20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