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길을 가라.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내버려 두라.
- A. 단테
자존심과 자존감은 다르다. 자존심은 세상에서 말하는 나, ‘자아’에 대한 존중감이다. 사회적 지위에 대한 존중감이다. 자아는 사회적 인정에 의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그에 반해 자존감은 사회적 인정과 관계없이 자신에 대해 느끼는 존중감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회적 인정과 관계없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인간에게는 두 개의 나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눠진다. 의식의 중심에는 자아가 있고, 무의식을 포함한 전체 마음의 중심에는 ‘참나’가 있다.
참나는 우주와 하나인 마음이다. 그래서 남의 평가와 관계없이 무한한 존재감을 느낀다. 명상을 해보면 안다. 생각을 내려놓고 고요히 머물면 나라는 존재가 은은히 빛난다. 텅 빈 충만,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항상 명상 상태에만 머물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남의 인정과 관계없이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까?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는 말했다. “너의 길을 가라.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내버려 두라.”
그렇다. 자존감을 느낄 때는 바로 나의 길을 갈 때다. 내 안에서 솟아올라오는 힘으로 가는 길, 신들린 듯이 나의 길을 갈 때는 남들의 칭찬, 비난이 잘 들리지 않는다. 삶이 명상이 된다.
나는 이런 자존감을 대학 2학년 때 처음으로 느꼈다. 대학 주최의 논문현상 모집에 당선되었을 때, 지도교수님은 내 손을 잡으시며 ‘학자의 길’을 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 안에서 올라오는 알 수 없는 힘을 느꼈다.
꼼지락 꼼지락 기어 다니던 애벌레가 “네 안에 나비가 있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애벌레는 이런 느낌이었을까? 내가 이 세상을 훨훨 날 수 있단 말이야? 나는 그 뒤 생각했다. ‘그래, 삶의 비의를 알고 인류를 구하는 철학자가 되자!’
공부 모임을 만들어 철학과 교수님을 모시고 철학공부를 했다. 하지만 내게 철학공부는 막연했다. 이렇게 공부해서 ‘인간의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구체적 삶과 유리된 철학공부, 그래서 나는 결국 대학원 같은 제도권에서 공부하지 않았다.
나는 자유인이 되어 세상을 떠돌며 공부했다. 좋은 강의를 찾아다니고, 여러 일을 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방황하면서 나는 사회적 인정보다 내 안에서 솟아올라오는 길을 가야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아갔다.
세상에는 고수들이 많았다. 알 수 없는 아우라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그들은 세상의 인정을 받는 사람도 있고, 무명인 채로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내 안에서 신명이 솟아올라왔다.
나의 길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안개 속을 헤쳐 나가듯 나의 길을 찾아갔다. 인문학 강의와 글쓰기가 하나의 길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인정을 받을 때는 기분이 좋다. 하지만 내 안에서 솟아올라오는 희열은 더 컸다. 세상의 인정과 관계없이 나의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자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이거야말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한 말이 가슴 저리게 와 닿았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 윤동주,《새로운 길》부분
‘새로운 길’은 새로운 길이 아니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이다.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롭기 때문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