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리아의 시간여행

1. 라임의 전투비행사 리아

수에나

네온사인 불빛이 환하다.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어깨에 내려앉는다. 불빛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활기차다. 사람들의 표정을 가늠하기에는 거리가 좀 있지만 무척이나 밝아 보인다.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저 사람들과 아무런 연관도 없고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하늘을 바라본다. 흑백의 하늘이어야 하는데 밤하늘의 색깔이 푸르다. 푸른 하늘 한가운데에 하얀 달이 떠 있다. 달빛이 밝다. 별도 떠 있다. 조금은 눈부신 달 가까이에 반짝거리며 움직이는 별이 보인다. 아마도 다른 별보다 크거나 지구와 가까이 있는 것 같다. 별이 조금 더 커지는 것 같지만 대수롭지도 않다.

 

반짝이는 별들조차 나에게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차라리 아무런 말 없이 고요한 밤하늘의 풍경이 사람들로 뒤섞인 거리의 풍경보다 나은 것 같다. 혹 나의 마음을 알아줄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무심한 하늘은 마냥 고요할 따름이다. 나의 한숨도 알 수 없고 나의 모습도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그냥 나이고 나만이 자신을 가엽게 여길 뿐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나를 알아봐 줄 일은 없을 것이다.

 

순간, 셔츠에 찬 바람이 스며들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여러 잡음이 귓속에 스며들었다. 사람들과 자동차, 그리고 알 수 없는 소리들이다. 예전에는 무심코 내 귀에 들려왔을 이 소리들 조차 오늘은 또렷이 들려온다. 나는 이런 잡음조차 마음대로 들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나에게 쏟아지던 비난의 말들과 표정, 사람들의 무관심, 나의 소심함은 나를 더욱더 내면의 상자 속에 가두게 만들었다. 그동안 참 많이 힘들었다.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바람이 지나간 자리처럼 평온할 것이다. 나는 숨을 길게 내뱉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나 자신에게 건네는 인사인지, 세상을 향한 마지막 목소리인지 상관없는 인사다.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긴 숨을 들이마셨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하나도 두렵지 않다. 몸이 가벼워진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는 기분이다.

 

나는 나비가 된다.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있는 한 마리의 나비이다. 땅바닥에 두 발로 버티고 서 있을 때보다 한결 가벼운 몸으로 날아간다. 내 날갯짓이 서툴더라도 괜찮다. 이미 나에게는 날개가 있고 몸은 하늘을 향해 있으니까. 바람이 불어와도 어딘가에 있을 한 송이 꽃잎 위로 날아갈 힘은 있다. 나의 온몸으로 느끼는 가벼움은 자유다.

 

바람에 실린 꽃향기가 느껴진다. 전에 어디선가 맡은 적 있는 향기다. 옅은 라일락 향기 같기도 하다. 달콤함이 배어있는 향기가 코끝에 가까워진다. 눈을 떠 볼까? 찰나의 고민을 하다가 실눈을 떠보았다. 하얀 공간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공간인지 조명이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누운 채로 보이는 것이 흰색인 그런 곳이다. 많이 낯설다. 여기는 내가 아는 곳이 아니다. 심장이 두근거리지만 겁이 나서 주변을 살펴보지는 못하겠다. 아직도 향긋한 향기가 여전한 걸 보면 그리 나쁜 곳 같지는 않다.

 

괜찮아?”

 

누군가 옆에서 말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은빛 옷을 입은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발의 푸른 머리칼이 인상적이다. 여자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이 사람은 누구이고 여긴 어딜까?’ 나는 이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 없다. “괜찮구나. 잘 왔어. 안심해.”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살짝 몸을 일으키다 보니 나도 옆에 선 여자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내게는 이런 옷이 없었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내 몸에 입혀진 옷을 살폈다. 비닐 같기도 하고 비단 같기도 한 그런 옷감이다. 상하로 구분된 옷인데 나에게도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옷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내가 옷을 살피는데 여자가 말을 이어갔다.

 

옷이 낯설지? 여기선 이 옷을 입어야 해. 강제로 입힌 건 아냐. 자연스럽게 입혀진 거니까 놀라지 마.”

?” 나는 아직도 정신이 멍하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겨우 응? 하고 되묻는 거였다.

난 리아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여자가 내 이름을 물었다.

나는 주연이.”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반가워, 주연아. 여기는 라임 비행선 안이야. 내가 너를 여기에 태웠어. 나는 라임에서 왔는데 여기서 꽤 먼 거리에 있어. 지구가 아닌 다른 별이야. 이곳에 오면서 처음으로 너와 눈이 마주쳤어.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과 친구를 해야 하거든. 너도 날 봤을 거야. 자세하진 않았겠지만 말이야.”

 

비행선이라구?”

 

나는 뜻밖의 말에 놀라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 천정, 바닥 모두 하얀색일 뿐이다. 리아는 덥석 내 손을 잡더니 한쪽 벽을 가리켰다. 그러자 흰 벽에 원형의 창이 나타났다. 리아는 손짓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나는 리아를 한 번 보고는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으로 아까 내가 서 있던 자리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나는 공중에 떠 있었던 거다.

 

정말 내가 비행선에 타 있는 거야? 내가 어떻게? 난 전혀 기억이 없어.” 내가 놀라 말했다.

당연히 그럴 거야. 넌 저곳에 서서 나를 바라봤지. 나는 그런 너를 보고 이 여정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어. 그런데 네가 두 눈을 감고 있더니 갑자기 건물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어. 그 순간에 널 비행선에 태운 거야. 그 동안 넌 계속 눈을 감고 있었으니 아무것도 본 게 없는 거야.”

 

나는 리아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현실적이지 않은 말이었다.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의 유리창을 통해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건물의 옥상을 볼 수 있다. 어쩌면 나는 꿈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주연아. 여길 봐.” 리아가 가리키는 흰 벽에 커다란 스크린이 나타났다.

 

스크린에는 건물들의 옥상이 보이더니 이내 한 건물의 옥상으로 초점이 모아졌다. 그곳에는 하늘을 응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바로 나였다. 내가 달을 바라보던 그 순간의 모습이었다. 바람에 머리칼이 날리고 있고 두 눈에는 아무런 표정 없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였다.

 

난 이렇게 큰 화면으로 널 보았어. 아주 자세하게 보았지. 아마도 너는 작은 불빛 정도로 나를 보았을 거야.”

 

무심하게 떠 있는 달과 별이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무의미한 별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나를 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밝았던 불빛은 리아의 불빛이었다.

 

스크린을 통해 본 나의 모습은 나 같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서, 그것도 비행선에서 방금 전의 내 모습을 본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꿈이 아님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리아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직 실감은 나지 않을 거야. 내가 지구인이 아니란 것과 다른 별에서 온 것도 너에겐 낯선 일이겠지. 네가 여기에 탑승했다는 것도 그래. 내게 거짓은 하나도 없어. 내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거든. 지구에 오는 것은 나에겐 무척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야.”

그래. 믿을게. 이 모든 게 신기해. 내가 우주인인 너와 함께 있다는 건 꿈만 같아. 그런데 어떻게 나를 발견한 거야?”

라임에서 지구에 올 때는 달이 비추는 곳을 향해 오게 되어 있어. 그 시간에 내 비행선의 직선거리에 네가 있었던 거야. 우리는 엄청난 인연으로 만난 거지. 우리가 지구에 와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가 특별해. 그중에 내가 널 만나게 된 거야

난 특별하진 않은데 이렇게 만나게 되었네. 내게는 이렇게 대단한 일이 한 번도 없었어.”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너만의 특별함은 이미 있는 거야.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특별한 거니까.”

 

나는 말 할 거리가 없었다. 내가 살아 온 시간 동안 그 무엇도 내세울 게 없는 외톨박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나만의 특별함이란 시시하고 못난 존재감에 있지 않을까 하는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라임 사람은 첫 만남을 가진 지구인과 친구를 맺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어. 왠지 알아? 라임의 조상이 바로 지구인이기 때문이야.”

정말이야? 지구인이 너의 조상?”

맞아. 라임의 역사는 2천 년 정도야. 나의 조상이 되는 분들이 라임 행성에 정착해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어. 그러니 우리가 지구에 오는 것과 사람을 만나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거지.”

“2천 년이라고? 어떻게 그 옛날 사람들이 우주로 비행을 했다는 거지? 이건 너무 뜻밖이야. 이거 확실한 거야?”

 

그래. 이건 라임의 역사이고 그렇게 배워왔어. 지구의 사람들이 비행선을 타고 지구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향했었어. 지구를 떠난 사람들에게 라임행성은 최고의 정착지였고 그곳을 새로운 문명의 세상으로 만든 거지.”

 

우와. 정말 대단한 이야기야. 그런데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지?”

 

지구를 떠난 사람들에 대한 역사는 세월이 지나면서 잊혀진 거지. 하지만 라임의 후손은 지구의 삶을 잊지 않고 있었어. 그래서 라임과 다른 지구의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아가려는 거야.”

 

옛날 사람들이 라임이란 곳에서 훨씬 발전된 세상을 만든 거구나.”

 

라임의 선조가 되시는 분들의 업적이 정말 훌륭해. 그분들은 목숨을 걸고 라임을 일으켜 세우셨거든. 우리 후세대는 라임을 잘 지켜내고 주변 행성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려고 해. 우리가 지구 여행을 오는 것도 이 때문이야

 

좋은 의미로 하는 여행이구나. 라임에서는 누구나 이런 여행을 올 수 있어? 그런데 지구로 와서 어디를 여행하는 거야?

 

그래. 좋은 의미 맞아. 라임의 전투비행사가 되어야 지구로 올 수 있어. 정식 비행사가 되면 의무적으로 지구에 왔다 가야 해. 라임 전투 비행사의 첫 출발점인 셈이지. 라임을 지키는 군인으로서 지구인을 만나 삶의 체험을 하는 거지. 언젠가는 라임과 지구의 안전은 공동의 문제가 될 거야. 우리가 먼저 이 문제를 준비하는 거라고 보면 돼. 그래서 지구 여행은 어느 장소에 가는 것이 아냐. 지구에서 살아 온 사람을 만나는 게 목적이야.”

 

그럼 너도 전투비행사야? 아직 어려 보이는데 정말 놀라워. 훌륭해 보이기까지 해. 여기 온 목적도 뚜렷하구나.”

 

라임은 지구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면이 있어. 라임에서는 15살이면 성인이야. 나는 군인이니까 전투선 비행은 당연히 해야지

 

너에 비하면 난 어린애 같다. 너도 어려 보이는데 군인에다가 비행선까지 몰 줄 알고.”

 

아니야. 우린 친구야. 나이로 나누면 친구가 될 수 없게 돼. 우린 살아 온 환경도 다르니까 굳이 나이 생각하지 않아도 돼.”

 

맞아, 우린 친구다. 근데 지구여행에서는 누굴 만나는 거야?”

 

만나기로 예정 된 분들이 있어. 차츰 알게 될 거야. 그 분들을 만나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 될 거야. 네가 이번 여행에 나와 같이 한다면 좋겠어. 너와 함께 해야 이 여행이 시작될 수 있거든. 네가 동행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다시 찾아야 해.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현재 지구에 살지 않는 과거의 사람들이라 현재의 지구인과 동행해야 과거의 시간으로 들어갈 수가 있어. 그래야 비행선이 과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거든. 이건 과거로 가기 위해서 정해진 라임의 법이자 전통이야.”

 

과거의 사람을 만나는 시간 여행이야? 난 너를 만나 너무 신기한 얘기만 듣고 있어. 이 모든 게 현실인 게 맞아?”

그래. 하나도 거짓 없는 현실이고 사실이야.”

. 만약 내가 가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데?”

너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돼. 비행선을 잠깐 타 본 추억이 남겠지. 아마 우리가 다시 만나는 건 어려울 거야.”

, 너와 함께 할래. 난 돌아갈 곳도 없어. 차라리 이 여행을 한참 하면 좋겠어. 아니면 과거로 돌아가 살든가. 그런데 이 여행은 얼마 동안 하는 거야?”

좋아. 잘 결정해 줘서 고마워.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을 모두 만나면 여행이 끝나는 거야. 그래서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아. 꽤 자유롭지? 주연이랑 같이 여행하게 되어 기쁘다.”

나도 좋아. 나에게 와준 게 너무 고마워. 그리고 이 옷도 마음에 들어.” 내가 웃으며 소매를 쓰다듬었다.

마음에 든다니 나도 좋아. 잘 어울려. 너도 이젠 정식으로 비행원이 된 거야.”

 

나에게 찾아 온 엄청난 일이다. 그 동안 쌓여 온 마음 속의 아픔이 녹아 내리는 듯 했다. 아니 잊혀지는 것 같았다. 내 가슴이 쿵쿵 뛴다. 언제 이런 설렘이 있었나? 내 기억으로는 한 번도 없었다.

 

리아는 나의 첫 번째 친구가 될 거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나는 라임에 대해 알고 싶고, 과거의 시간여행이라는 말에 상당한 호기심이 생겼다. 비행선의 하얀 실내 공간은 무척 심플하다. 복잡하지 않아 오히려 덜 낯설다. 과연 내가 그리도 우울한 사람이었나 싶다. 이 공간은 나에게는 생소한 안락함,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수에나]

한국, 미국, 독일 20여 회 개인전

60여 회 그룹 전시 활동

미네소타 뉴욕 밀스 아트 리트릿 레지던시 활동

자하 갤러리 공모 전시 심사위원 역임

수에나 www.suena.creatorlink.net


작성 2022.03.03 12:00 수정 2022.03.0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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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