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세상 속의 친구, 세상 밖의 친구

하진형

사진=하진형


이순(耳順)을 넘기고 퇴직을 하자 많은 것들이 멀어지고 떠나갔다. 나의 부덕(不德)일 것이다. 그리고 이 또한 제행무상(諸行無常)일 것이다. 습관처럼 또는 기계적으로 일찍 일어나 별을 보고 출근하고 저녁엔 또 다른 별을 머리에 이고 퇴근했었는데 이젠 늘어지게 늦잠을 잘 수도 있으니 새로운 세상이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주 낯설다. 그래도 새로운 인연이 고맙다.

 

하늘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준다고 했다. 인생 2막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것들을 많이 만난다. 기실 그것들이 완전히 새로운 것들이 아니고 소중한 것들의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온 것들을 때가 되니 비로소 만나는 것이다. 마치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과 같이.

 

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어릴 적에 무심히 보아왔던 감나무며 이웃 강아지, , 바람에 뒹구는 낙엽 등등이 새삼 새로운 친구로 다가온다. 오늘 아침엔 기러기 떼가 머리 바로 위를 끼룩거리며 날아간다. 바람을 덜 받는 화살촉 모양을 하고는 서로 힘내라고 격려하며 겨울하늘을 날아가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지혜가 부럽기조차 하다.

 

새로운 친구는 겨울바람도 한 몫 한다. 사람들은 춥다고 동물의 가죽을 벗긴 털옷을 겹쳐 입고 종종거리지만 새로운 봄을 맞으려면 추운 겨울을 나야 한다고 가르친다. , 모든 것을 순리대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순간순간 깨어 있으라고, 주체적으로 맑게 살라고 의식을 깨운다. 우리가 춥다고 피해 달아나는 겨울바람이.

 

우리는 이 세상이 타향인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이상하게 생겨난 이라는 것에 지배당하면서. 문제는 정작 살아있는 동안에 자신들이 돈으로부터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또는 흙이 왜 고향이냐고 우기기도 한다. 흙이 고향이 아니라면 왜 흙으로 돌아가는가?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의 뜻을 알면서도 마지막을 인식하는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모른다. 인간의 한계다.

 

아침에 고구마 몇 개를 삶아 끼니를 때우고는 껍질을 밭에 던진다. 고구마 껍질은 퇴비가 되어 나름의 봄과 함께 올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결국 흙으로 돌아가겠지. 인간 세상으로 소풍을 왔다가 때가 되면 너나없이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그곳에도 곤란이나 근심은 있겠지만 그것들도 나를 깨어 있게 할 것이니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날 세상은 풍요로움과 과식(過食)이 오히려 문제다. 아침을 고구마 한 개, 누룽지 한 사발로 끼니를 대신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좋다. 생각해 보면 많이 먹어서 탈인 세상에서 소식(小食)으로 안분지족(安分知足)을 느끼면 이 또한 행복이다. 이처럼 작으면서도 소중한 것들이 많다. 우리가 큰 것과 높은 것을 탐하다 보니 보지 못할 뿐이다.

 

어젠 친구가 다녀갔다. 저녁나절이 되어갈 무렵 불쑥 전화해 와서는 혼자 책 읽으며 지내고 있다 하니 저녁이나 같이 먹자며 불쑥 왔다. 그리곤 가까운 작은 식당에서 막걸리 한 병씩 나눠먹고 버스를 타고 멀어져 갔다. 친구가 타고 가는 버스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때 부는 겨울바람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거처로 걸어오는데 심장이 데워져 왔다.

 

세상의 온갖 것들은 봄을 기다린다. 인간 세상 같아서는 겨울을 이겨낸 것들만 봄을 만끽하겠지만 하늘의 구름이나 땅의 바람은 누구에게나 봄을 나눠준다. 어차피 세상의 섭리와 순리는 어느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웅다웅 다투지 않고 그저 그대로 자연스레 나누는 것이다.

 

갈색 과수원에서 봄을 기다리는 감나무와 곧 뿌려지길 기다리는 퇴비가 조곤조곤하게 말을 나누고 있다.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지만 그 작은 서로의 몸부림이 온 세상을 푸르게 만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반드시 있다. 뻔한 이치를 알면서도 멀어지기 전에는 헤어짐을 모르고 제대로 오르는 수고를 하지도 않고 내리막부터 걸으려 하는 것이 문제다.

 

인연의 멀어짐을 원망하지 말자. 그들은 떠나야할 때가 되어 떠날 뿐이다. 남은 이들에게 나의 의무를 다하면서 다가오는 새로운 인연에게 고마움으로 반기면 되는 것이고, 나의 봄은 내가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 우리들의 꽃을 피우면 되는 것이다. 작은 열매의 수확을 고마워하고 앞으로도 봄을 여러 번 더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03.04 11:31 수정 2022.03.0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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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