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 작가의 인명풀이] 한국인의 이름 (6)

봄과 보미



지난 회에서 보아, 보라, 보리, 보름, 보람에 대하여 설명했으니, 이번 회에는 보미란 이름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다. 걸 그룹 멤버들 중에 박봄도 있고 윤보미도 있는데, 이들 이름은 엄연히 다르지만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같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보미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본래 순우리말이었던 [보미]寶美라는 한자로 표기하면서 인식하기를 아예 한자식 이름이라 알고 있고 또 그런 의도에서 지어 부르는 경우가 많아 지금은 모든 보미를 우리말 이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란 이름은 지난 회에서 설명한 것처럼 원시어소 [/bur]에서 비롯된 보라, 보리, 보아, 보름, 보람등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 의미는 흥한다는 뜻이다. 증가하고 확장하고 팽창한다는 뜻이다. ‘강물이 불어나다, 나뭇가지가 벌어지다, 돈을 벌다, 라면이 불었다같은 말에 쓰인 [/]이 모두 그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왕성(旺盛), 번창(繁昌), 대흥(大興), 그 의미가 좋으니 이름에 쓰기가 좋았고, 그래서 많이 썼을 것이다.

 

[보름]을 응집발음하게 되면 [borm]처럼 된다. 다시 말해, [borm]을 응집발음하면 [, ]처럼 되고 연진발음하면 [보름, 보람]처럼 된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란 이름은 4계절의 봄을 뜻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반드시 그런 뜻만 지닌 것은 아니다. 이미 말했듯이 크게 흥한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사실 (spring)’이란 단어 역시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말이다. 겨울이 지나면 새로운 잎이 돋고 꽃도 핀다. 만물이 불어나고 벌어지는 시기다. 그러한 계절을 가리키는 말이 이다. [/]이 된 것이다. 일본어에서는 [/하루(はる)]로 정착되었다. 한국어 봄과 일본어 하루(はる)는 그 어원이 같다는 말이다. []을 연진발음한 것이 [보미]이고, “보미는 사실상 별 차이가 없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 부미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이런 이름이 많지 않지만 옛날 신라인들의 이름에는 그러한 이름이 많았으니 품()이나 범() 같은 한자로 표기된 이름 대부분이 그러하다. 화랑 관창의 아버지 이름 품일(品日)’이나 굴산대사 범일(凡日)’이 순우리말 []을 사용한 대표적인 이름이다. 일본어에서는 후미(ふみ)나 부미(ぶみ)로 나타난다. 이등박문(伊藤博文; 이토오 히로부미)의 이름에 쓰인 [부미]도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말이다. 괜히 기분이 언짢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냥 이름의 유래가 그렇다는 말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 보니]란 이름도 있는데 역시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옛날에 이본이라는 여자연예인이 있었는데 그 []도 기실은 순우리말 이름이다. 이름을 지어준 분도 어원까지 알지는 못했을 테지만 옛날부터 써온 이름이라 그렇게 지어주었을 것이다. []을 연진발음하면 [보니]가 된다.

 

모음혼교에 따라 [/]은 쉽게 넘나든다. [보니/부니]도 쉽게 넘나든다. [부니][분이]로 된 형태이다. ‘꽃분, 옥분, 갑분, 덕분, 말분같은 이름에 쓰인 []은 보통 나눌 분()’자라는 한자로 표기를 하다 보니 그 이름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줄로만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그 연원을 알고 보면 결코 무의미하거나 촌스럽기만 한 이름이 아니다.

 

남자이름 중에는 범수(範秀)”가 꽤 많은 편인데, 이는 누가 봐도 한자식 이름이다. 하지만 그 어원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본래는 순우리말 이름이었으나 한자의 거센 물결에 밀려 한자식이름으로 탈바꿈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범수에 쓰인 우리말 []은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 등과 같은 말이다. ‘범수밤쇠는 같은 이름에서 분화된 것이다. “밤쇠란 이름을 밤에 낳았다고 그렇게 이름 붙였다는 식의 설명은 시정잡배들이 우스개로 하는 소리라면 모를까, 이름을 연구하는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해선 안 된다.

 

옛날 조상들의 이름을 보면 끝에 [-]가 들어가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부여의 대소’, 고구려의 을파소’, 마한의 장수 맹소’, 신라 김춘추의 딸 고타소등등. 원시어소 [/sor]에서 받침소리가 약화 탈락한 [-]만 남아 인명조성어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소이]의 변천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넘나들고 [/]도 쉽게 넘나든다. [범소/범수]도 그러하다. 신라의 29대 태종 김춘추(金春秋)[봄수/봄추]라 불렀던 이름을 春秋라는 한자로 훈차+음차하여 적은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의 범수라는 이름은 기실 여기에 맥이 닿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 부전(浮轉)에 대해서는 백제 [초고왕/소고왕]이 혼용되었고 김유신의 동생 이름이 [흠춘/흠순]으로 혼용되었다는 사실을 참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 9대 벌휴왕(伐休王)은 발휘왕(發暉王)이라고도 했는데, 사람들이 [벌슈/발쉬]라 불렀던 이름을 그렇게 음차하여 적은 것이다. [벌소/벌소이/벌쇠] [발수/발수이/발쉬]는 서로 쉽게 넘나들었다. ‘벌쇠라는 이름에 쓰인 [-]는 오늘날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가진 말로 정착되어 쓰이고 있다.

 

모른다는 말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모르쇠라 하고, 먹기를 잘하는 사람을 먹쇠라 하며, 전문적인 사진사를 찍쇠(찍새)’라 하고, 범인을 잘 잡는 형사를 잡쇠(짭새)’라 한다. 여기 쓰인 [-]는 옛날부터 사람의 이름에 많이 사용되어 온 말이다.

 

순우리말로 [맏쇠]라 일컬었던 이름을 한자로 長金이라고 썼는데,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게 된 후대인들이 그냥 장금이라고도 일컫고, “장쇠라고도 일컫게 되니 전혀 다른 이름처럼 여겨지게 되었지만 [-]는 전문가를 가리키던 순우리말이다. 이들 이름에 쓰인 [-]를 금속을 뜻하는 말로만 여기는 일 없기 바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벌개(伐介)라는 인명이 나온다. 이를 두고 곤충 벌레를 뜻하는 이름이라고 풀이한다면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伐介(벌개)란 이름도 나오고 蟲介(충개)란 이름도 나오니 그렇게 착각하기 쉽다. 차자표기의 기본을 모르면 그렇게 된다. 벌개의 은 음차한 표기이고, 충개의 은 훈차한 표기인데 사음훈차한 것이다. 진의훈차한 표기가 아니다.

 

[]은 현대한국어 벋다, 벌다, 붇다, 불다같은 말들의 어원에 해당한다. 크게 흥할 인물이라는 뜻에서 [벌개]라고 이름을 지었고, 그것을 음차+음차하여 伐介(벌개)라고도 적었고, ‘사음훈차+음차하여 蟲介(충개)라고도 적었던 것이다.

 

외자 이름으로 을 쓰는 사람들은 []을 계절을 뜻하는 말로만 여기기 쉽고, “을 쓰는 사람들은 []이 호랑이 혹은 모범()을 뜻하는 이름으로만 여기기 쉽다. 모든 이름이 이 설명에 부합되지는 않겠지만, 이름의 어원적 유래를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 최규성] 계백과 김유신』 『소이와 가이』 『타내와 똥구디등의 인명풀이 시리즈가 있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1.04 10:27 수정 2019.01.0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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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