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정명 [기자에게 문의하기] /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마전리에서 귀한 재봉틀 하나를 만났다. 재봉틀 주인 이임수(87) 할머니에게 이 재봉틀은 시간의 역사이며 가정의 역사이며 자신의 역사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갓 시집 온 손주 며느리에게, 시할아버지가 소 한 마리를 팔아서 저 재봉틀을 사 주었다고 한다.
"저 재봉틀이 우리 큰 아들보다 나이가 많아. 저 재봉틀은 마산 3.15의거를 비롯해 근대사의 우리 역사와 함께 했지. 4.19도 같이 했고 5.16도 보았고 월남파병도 봤지. 그 뿐인가 유신도 지켜보았고 박정희 죽음도 보았고 5.18도 봤어, 88올림픽도 함께 지켜봤고 2000년 월드컵도 봤지. 마산이 창원으로 합병되는 것도 보고 작년엔 할아버지의 임종도 봤지. 참 많은 세월을 함께 했어, 고마운 내 벗이야."
마산으로 시집 올 때 곱디 고왔던 시절을 회상하는 할머니의 얼굴엔 회한이 묻어 있다. 마음은 여전히 젊은데 몸은 세월과 함께 늙어 이제 백발이 되었다.
" 조각을 기워 네 명 아들의 옷은 물론 동네 꼬마녀석들 바지 저고리를 다 만들어 준 재봉틀이야! 지금도 잘 돌아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집안의 역사와 자부심이 이 재봉틀 하나에 가득하다. 이런 것을 두고 진품명품이라고 한다. 손때 묻고 세월의 때가 묻은 재봉틀을 매일 닦고 또 닦아 좋은 벗으로 지내는 이임수 할머니의 마음이 더 진품명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