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지(銍知)는 [가마-지]란 이름을 차자한 표기
고대한국어에서 [감/검]은 ‘임금’을 가리키는 말이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의 儉은 ‘존장자, 임금’을 의미하는 우리말 [검/kum]을 음차한 표기이다. 신라 17관등 중에서 제1위 관등을 서불감(舒弗邯)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감(칸)] 역시 ‘가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나 존장자를 가리키는 말이고. 상감마마라고 할 때의 감(監) 역시 [감]을 음차한 표기이다. 신(神)이나 수령(首領)을 의미하는 일본어 카미(かみ)는 한국어 [감]을 연진발음한 형태이며, 같은 어원에서 분화된 말이다.
[감/kham]은 응집발음한 형태이며 [감]을 연진발음하면 [가마, 가므, 가모, 가무, 가미, 가메]와 같은 형태로 발현된다.
고대한국인들은 어떤 말에 [-지]라는 인명용접미사를 붙여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신라의 김알지(金閼智), 눌지(訥祗), 백제의 두지(豆知), 곤지(昆支), 덕지(德智), 고구려의 노류지(怒流枳), 을두지(乙豆智) 같은 이름이 그러하다.
‘임금처럼 가장 높은 인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 [감/kahm]에다 [-지]를 붙이면 [감-지]라는 이름이 된다. [감지]라는 이름은 그러한 의미를 지닌 말인 것이다. 그런데 그 [감-지]를 연진말음하면 [가마-지] [가므-지] [가모-지] 같은 형태가 될 것이다.
자야국 제8대 질지왕(銍知王)의 이름에 쓰인 질(銍)은 ‘낫 질’자이다. 풀 벨 때 쓰는 농기구 낫을 가리키는 한자다. 낫을 가리키는 일본고유어는 ‘가마(かま)’이니 [가마-지]라 부르는 이름을 일본어에서 한자로 차자하여 적은 것이 ‘질지(銍知)’인 것이다. 임나어 또는 가라어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중간쯤에 위치했던 언어라는 점을 상기하시기 바란다.
다시말해, 질지왕(銍知王)이라는 이름은 한국어로는 [감-지], 일본어로는 [가마-지]라 일컬었던 이름을 그러한 한자로 차자하여 적은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荷知)의 원래표기는 하지(荷持)였을 것
이제 하지(荷知)라는 이름에 대하여 분석해 보기로 하자. 하지(荷持)가 실제로 뭐라고 부른 이름을 그렇게 차자한 것인지 추측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추측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어에서도 그러하고 일본어에서도 그러하다.
단서로 삼거나 추찰에 참고로 할 만한 표기도 거의 없다. 『삼국유사』 「가락국기」 좌지왕(坐知王)조에 나오는 하산도(荷山島)란 지명, 『일본서기』 중애기 9년조에 나오는 하지전촌(荷持田村; 노토리타후레)란 지명, 그리고 『일본서기』 「신대기」 소잔오존(小戔嗚尊)편에 나오는 ‘토사련(土師連; 하지노무라지)’이라는 인명 등을 보고 ‘荷’라는 한자의 차자방식을 유추해 보려고 해도 그저 막막하기만 할 따름이다.
이처럼 유추가 어려운 경우는 대개 2차 3차 표기자들에 의해 원래의 표기가 왜곡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후대인들에 의해 잘못 변형된 표기를 두고 아무리 분석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추측컨대, 가라왕 하지(荷知)의 원래 표기는 “하지(荷持)”였을 것이다. 본래는 [가마지]라 일컬었던 이름을 “하지(荷持)”라는 한자로 차자하여 적었던 것인데, 그 사실은 모른 채 그냥 한자만 아는 후대의 표기자들이 “하지(荷知)”라고 잘못 바꿔서 표기하는 바람에 도대체 무얼 표기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을 거라는 말이다.
일본어에서 持는 “모츠(もつ)”라 하는 바, [가마-지]란 이름을 [가-모치]로 인식하여 荷와 持라는 한자로 ‘음차+사음훈차’한 것이다. [가-모치]를 차자하여 표기한 ‘荷持’를 후대의 표기자가 ‘荷知’와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해 잘못 표기했고, 그것이 『남제서』의 기록에 그대로 남게 되었을 거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
다시 말해, 가라왕 하지(荷知)의 이름은 원래 하지(荷持; 가-모치)였고, 이는 [가마-지]를 차자하여 적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질지(銍知)와 동일한 이름이며, 이 둘은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남제서』에는 가라왕 하지가 479년에 조공을 해왔다고 하였는데, 이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질지왕(銍知王)의 재위기간 중이므로 활동연대상으로도 깔끔하게 합치된다.
백과사전 등에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실려있는 가야국 역대왕들의 이름 중에 하지(荷知)와 합치되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기술해 놓았는데, 차자표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학자들의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했기 때문에 그런 엉터리 기술을 해놓은 것이다.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최규성]
차자표기 연구가
인명 지명 국명 연구가
방송 작가
수필가
칼럼니스트
최규성 ; burkurta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