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에서 보는 '연민'이 필요한 시대

민병식

 

고령인 부모를 둔 나쓰메 소세키(1867-1916)는 태어나자마자 수양아들로 보내졌다. 불우했던 소년기로 성장했던 배경과 사상으로 문학에 깊이 뿌리를 내렸고, 1896년 결혼을 하여 같은 해 오아마 온천을 여행하며 소설 '풀베개'를 구상했다고 한다. 19051월 하이쿠 잡지를 통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풀베개' 등을 발표했다.

 

서양화가이자 하이쿠를 즐겨 짓는 주인공인 나는 이러한 인간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화공이 되어 인정(人情)의 세계(속세의 번뇌하는 세상)를 떠나 비인정(非人情)의 세계(자연과 동화되는 세상)로 인식되는 나코이라는 시골로 여행을 떠나 여인숙에 묵게 된다. 주인공이 화공이 되는 이유는 참 독특한데, 모든 것을 비인정으로 인식하기 위해서, 하나의 화풍으로 세계를 인식하여 속세에서 멀어지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정작 여행을 가서는 그림을 한 점 그리지 못한다.

 

울창한 숲속 연못 위에 새빨간 동백꽃이 뚝뚝 떨어진다. 꽃잎 가득 붉게 물든 연못에 아름다운 여인이 누워 영원히 잠들어 있는 모습, 화공은 그리고 싶은 그림의 주제를 얻었다. 그림의 모델로 삼기에 적합한 매혹적인 여인도 만났다. 온천장 주인의 딸 나미다. 그녀는 몇 년 전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성안에서 제일가는 부자에게 시집을 갔는데 러일전쟁(1904-1905)으로 인해 남편이 다니던 은행이 폭삭 망했다.

 

그녀는 먹고 살길이 막연해져서 이혼을 하고 친정에 돌아왔다. 나미에 대한 소문은 심상치 않다. 어느 날 인근 절에 있는 스님이 그녀에게 반해서 연서를 보냈는데 그녀가 절에 뛰어 들어와 그렇게 귀엽다 생각하시면 부처님 앞에서 같이 자자며 스님의 목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리도 자유분방한 행동을 하다니 분명히 정상이 아니라고, 그 집안에는 대대로 미친 여자가 나왔다고, 아니 여자가 가난한 남편을 버리고 돌아온 것부터 미친 짓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나미는 세간의 이목에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화공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장난을 거는 그녀는 미쳤다기보다는 어딘지 염세적이다. 삶의 희망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이 보여주는 무심함이랄까, 툭툭 내뱉는 말에 스산한 절망이 묻어난다. 그녀는 자기가 연못에 뛰어들어 죽으면 그림을 그려달라고 화공에게 부탁한다. 괴로운 표정이 아니라 편안하게 죽어 있는 얼굴을 예쁘게 그려달라고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던진다. 나는 그녀를 그리고 싶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그림 한 장 그릴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나미와 함께 기차역으로 배웅을 나간다. 그녀의 사촌동생이 러일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만주벌판으로 떠나는 길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기차에는 나미의 남편도 타고 있다. 남편도 헤어진 아내에게 돈을 빌려서 만주로 떠나는 길이다. 돈을 벌려고 가는 건지 죽으러 가는 건지 알 수 없다.

 

기차는 사람의 개별성을 무시하고 모조리 상자 속에 집어넣고 끌고 간다. 인간은 기계의 시간에 따라 막무가내로 끌려간다. 기차가 향하는 곳은 피투성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다. 어린 청년까지 전쟁터로 몰아넣는 광기의 시대, 나미는 동생에게 죽어서 돌아오라고 모질게 말한다. 죽어서 돌아오라는 말은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라는 작별인사보다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살아서 돌아오면 또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받을 테니까.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가는 사람과 남아 있는 사람, 떠나는 동생과 남편을 바라보는 나미의 표정에는 연민이 묻어난다. 비로소 화공인 ''의 가슴 속에 화면이 완성된다. 이제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가 그녀의 얼굴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이 연민의 정이었다. 주인공은 이 장면은 화풍이 된다며 쓸쓸하게 웃으며 마무리된다.

 

작품에서 소세키가 추구하는 문학은 연민이다. 그러나 그 연민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불쌍한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하는 식의 값싼 동정이 아니다. 가슴 안에 내재된 사랑의 아픔이다. 비록 전 남편이지만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길을 떠나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정이며, 전쟁터에 나가 한 줌 재로 돌아올 수도 있는 사촌 동생에 대한 애써 슬픔을 참고 보내는 애련한 가족애인 것이다.

 

코로나19의 세상, 갖은 변이 바이러스가 양산되고, 생존에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지금, 우리는 서로를 연민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에게 서로를 사랑할 마음이 있는가. 자기 생각만이 옳고 자신의 편이 아니면 배척하며 우리 편이 아니면 제거해야 한다는 증오의 마음으로 욕을 해대며 사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과 견해가 다르고 보는 눈이 다르다고 우르르 달려들어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말을 하고 언어폭력을 쏘아대는 어느 집단을 본 적이 있다. 히틀러의 광기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인문학을 말한다. 자신들의 사상과 견해에 동조해야 사람이고 인문학인 것이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동물이 인간이다. 어렵고 지쳐가는 요즘의 삶,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작품의 주인공이 그리도 찾던 연민의 마음이다. 아니 그런가.


[민병식]

인향문단 수석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문학산책 공모전 시 부문 최우수상

강건 문화뉴스 최고 작가상

詩詩한 남자 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2020 코스미안상 우수상

민병식 sunguy2007@hanmail.net


작성 2022.03.23 11:40 수정 2022.03.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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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