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스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 알베르 카뮈
시지프스는 신들의 왕 제우스를 속인 죄로 지옥에 떨어졌다. 그는 언덕 정상에 이르면 바로 굴러떨어지는 무거운 돌을 다시 정상까지 계속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고문은 같은 일을 반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로 시지프스의 형벌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소설가 카뮈는 말한다. “행복한 시지프스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러시아의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으며 ‘행복한 시지프스’를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소설 끝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렇게 하루가,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가 마감되었다. 이런 날들이 그의 형기가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만 10년을, 그러니까 3,653일이나 계속되었다. 사흘이 더 많은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끼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분명히 억울하게 강제노동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는 전혀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지도 않고, 앞날을 걱정하지도 않고, 자신의 형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행복한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다.’ 그는 하루하루 매순간을 충실히 살아간다. 영창에 들어가지 않고, 죽 두 그릇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는 가끔 절망한다. ‘주여! 내 발로, 내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날이 오긴 오는 겁니까, 안 오는 겁니까?’
하지만 그는 행복의 비결을 깨달았다. ‘음식을 먹을 때는 그 진미를 느끼며 먹어야 한다. 조금씩 입안에 넣고 혀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며 양쪽 볼에서 침이 흘러나오게 한다. 그렇게 하면 이 설익은 검은 빵이나마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대학 3학년 때, 불교학생회 수련회를 가서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처럼 밥을 먹은 적이 있다. 조용히 앉아 밥과 반찬을 입안에 넣고 오래도록 씹었다. 밥이 침과 뒤섞이며 단맛이 입안 가득하게 되었다. 그 뒤에는 그런 식사를 한 적이 없다. 침이 거의 나올 새도 없이 음식은 반찬이나 국과 함께 목구멍 안으로 넘어갔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10년 동안 용맹정진을 한 것이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자신의 삶을 밀고 간 것이다. 절에서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알아차리라고 한다. 걸어가며 발바닥이 땅에 닿는 세세한 느낌을 알아차려야 한다.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의 미세한 손길을 느끼고, 눈에 보이는 풍경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보아야 한다. ‘나’는 점점 바깥의 사물과 하나가 되어간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10년 동안 알아차림 명상을 했다. 그는 가장 혹독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었다. ‘행복한 시지프스’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은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1> 부분
시인은 밤에 홀로 유리창을 닦으며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은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죽은 어린 아들을 ‘산ㅅ새처럼 날러’ 보낸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