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군(軍) 생활을 할 때엔 폭력이 공공연히 있었다. 그 시절엔 열악한 환경에서의 전투력을 배가시키기 위한 방책의 일환이기도 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럼에도 남자들이 술만 마시면 군대이야기를 하는 것은 ‘같이 고생하고 같이 땀 흘리며 웃고 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잠꼬대하며 걷어찬 이불을 챙겨준 이는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가 아닌 ‘악명 높았던 고참’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생 1막을 마치고 참살이로 방향을 바꾸어 농촌으로 거처를 옮기자 모든 것이 낯설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하고 흙을 밟으며 땀을 흘리는 재미도 좋고 조용한 밤에 글을 읽는 것을 만끽하는 특권(?)도 좋지만 먹고 사는 모든 것들은 약간 생소하기도 했고 새로운 시작은 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왔다.
그때, 초보 농부로서 조금은 어리둥절할 때마다 다가오는 이웃들이 있었다. 윗마을에 사는 구룡농장 채웅형은 때가 되면 ‘밥은 묵었나?’라며 올라와서 같이 먹자고 끼니를 챙겨주고, 마을 이장님은 ‘혼자 지낼 만 한교?’라며 만날 때마다 안부를 묻는다. 그런가 하면 이웃 동네 어르신은 창고에 들릴 때마다 농사일은 자신이 도와주겠다면서 논물을 챙기고 퇴비는 뿌렸는지, 비료와 제초제는 사 놓았는지 확인하시고 어제는 집에서 고왔다며 돼지육수까지 주셨다.
곳곳에 이웃이다. 며칠 전에는 묵혀있던 감나무과수원 빈터를 밭으로 만들려고 괭이질을 하는데 개미집이 나왔다. 괭이질을 멈추었다. 수만 마리의 개미가 살고 있는 터전을 나 혼자 이득보자고 허물 수는 없는 것이다. 개미집을 피해 돌아가니 밭의 모양새는 이상해지고 아내는 유난을 떤다며 핀잔을 주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제초제를 뿌릴때에도 조심해야지.
산 밑 시골에 살다 보니 거처에 많은 것들이 들어온다. 문을 잠시만 열어두면 청개구리도 들어오고 거미도 들어와 집을 짓는다. 그만큼 살만한 곳이라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이웃이 많다는 것이기도 할 터이고. 그리고 책장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책들도 이웃이라면 이웃일 것이다.
엊그제는 집 옆의 친척 농장을 돌보고 있는 할머니께서 찾아오셨다. 지난번 귀갓길에 할머니를 태워드린 적이 있는데 고마웠다면서 작은 검은 비닐봉투를 내미셨다. ‘맥주 3캔, 해삼 조금’이었다. 해삼은 이웃에 사는 큰아들이 바다에서 직접 잡아 온 것이라면서 먹어보라고 손에 쥐여주셨다. 사양할 수가 없었다.
그러시면서 서울에 사는 아들에게 얘기했더니 꼭 한 번 찾아보겠다고 하더란다. ‘내 어머니에게 그렇게 고마움을 주신 분이 누구신지 보고 싶다면서.’ 내가 부끄러웠다. 그날 나는 초저녁 쯤 집으로 가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고 계시는 할머니를 잠시 태워드린 것 밖에 없는데 맥주에 해삼 대접까지 받았으니....
혼밥을 하며 식탁에 올려놓으니 제법 그럴듯하다. 젓가락이 망설여진다. 해삼을 초장에 찍어 먹는다. ‘오독오독’ 소리를 내며 갯내음까지 입안으로 퍼진다. 이어 맥주도 한 모금 들어 마신다. 입안이 개운해지며 할머니의 고마운 인정까지 더하여 나의 온 심신(心身)을 녹인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남겨진 맥주 2캔은 뒤늦게 찾아온 친구가 마셨다. 선한 영향력의 인연이 퍼져나간다.
지금 밖에는 어제 내린 비로 논물이 넉넉히 차 있고, 어디서 왔는지 개구리 오케스트라가 합주곡을 쏟아내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왜가리가 내려다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가족 모두가 합창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마도 곁에서 땀 흘리고 있는 농부의 힘을 믿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개구리 입장에서 농부는 든든한 이웃이기도 할 테니까.
이처럼 우리의 곁에는 따뜻한 이웃들이 있고, 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웃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 나도 누군가를 돕는 이웃이 되고 싶다. 조용히 소리 내지 않고 누구도 인식할 수 없는 나만 알 수 있는 따뜻한 도움말이다. 생각해 보니 오늘 아침도 새와 개구리의 노랫소리에 깨어났다. 여러 이웃이 곁에 있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