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기다림은 희망이다

하진형

             [사진=하진형]


이번에는 봄비가 제법 내렸다. 이전에도 두어 번 내리기는 했지만 겨우 겉흙만 적시고 지나갔었는데 이번에는 무논을 채우고 넘었다. 지난번에 홑갈이를 해 놓고 비가 오지 않아 논이 말라가서 지하수를 끌어다가 어렵게 물을 채우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물꼬를 넘어간다. 밤새 소리 없이 내린 봄비가 대지를 흠뻑 적신 것이다.

 

낮에 해를 등에 업고 집 앞 작은 텃밭과 포도나무, 배나무 아래 올라온 잡초제거에 나섰다. 우후죽순이라더니 그야말로 우후잡초다. 사나흘 만에 이렇게 무성하게 자랄 수가 있을까, 땅속엔 대체 무슨 기운이 있어서 이렇게 생명을 불어 올릴까.

 

봄비로 흙이 부드러워진 덕분에 잡초 뽑기가 수월하다. 깊게 내려간 뿌리까지 쑤욱 하고 뽑혀 올라온다. 흙을 털어내고 한쪽으로 모으자 움푹 파여진 흙에서는 지렁이며 아기번데기들이 잠에서 깨어나고 잡초더미는 하나씩 늘어간다. 지렁이며 아기번데기를 다시 흙이불로 덮어 재운다. 그들도 나름의 삶에 대한 시간이 있을 것이다.

 

오후엔 경청(傾聽)에 관한 책을 읽고 늦게 밖을 보니 참새가족들이 몰려와 일구어진 흙에서 부지런히 먹이를 찾고 있다. 아마도 이웃 가족들까지 불러서 온 듯 짹짹 푸드득하며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먹이를 서로 나눈다. 작은 것들도 나눔을 하는 것들이 욕심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친다. 볼수록 사랑스럽고 고마우며 여유롭다.

 

우리가 근세기에 처음 겪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서 빨리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봄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존재도 많다. 나만 봄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말없이 또는 소리 없이 불어오는 바람과 비를 기다리며 제각기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준비는 곧 희망이다.

 

누구나 크고 작은 기다림이 있듯 우리의 기다림도 모두가 희망이다. 우리에게 기다림과 희망이 없다면 무슨 맛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겠는가? 아무리 힘든 오늘이 있어도 버틸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이겨낼 의지와 희망이 있기 때문이고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시련도 감당할 만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토닥거려주며 살아가는 것이다.

 

계절도 마찬가지다. 추운 겨울만 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봄은 무성한 여름을 기다리고 또 여름은 열매 맺는 풍성한 가을을 기다린다. 그리고 겨울에는 휴식을 취하며 봄을 준비한다. 우리도 수많은 인연들을 기다리고 만나며 헤어진다. 그런 오늘을 지내면서 막연히 내일의 희망도 그린다.

 

매말라 있던 감나무에 연두색 잎이 싱싱하게 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어쩌면 삭은 빨래줄 같던 포도나무엔 보라색 잎들이 부끄러운 얼굴을 들고 광대놀이를 한다. 이제 곧 노란 감꽃들이 올라올 테고 포도송이는 아래로 처질 것이다. 시기를 놓치지 말고 비좁게 피어나는 감꽃들을 속아내어 주어야 하고 포도나무 지지대도 튼튼히 받쳐 주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욕심도 덜어내고 불필요한 말도 줄이고 더군다나 욕망의 찌꺼기인 화도 버려야 한다. 생각해 보니 내 안에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희망을 기다리려면 이것들부터 버리고 채움의 공간을 비워두어야 한다. 이것도 서툰 청소수행자의 욕심의 산물일까. 오늘의 해가 지지 않으면 내일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볼 수 없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05.06 11:46 수정 2022.05.0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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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