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실외에서는 마스크 대신 신선한 공기를
정부는 이제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고 밝혔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모든 조치도 해제되었다. 그동안 우리를 묶어두었던 많은 제한과 제제들이 하나둘씩 점차 풀려가고 있는 모습이다. 영화관에서 다시 팝콘과 콜라와 같은 음식 취식이 허용되고 대규모의 지역축제 또한 활기를 띠고 있다.
실제로 벗나?
실외 마스크 착용 제한이 해제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고 있다. 실외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고 오미크론의 전파력과 코로나 숫자가 줄긴 했지만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한동안은 실외 마스크 착용 제한이 해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마스크를 밖에서도 쓴 채로 활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혼자 공원을 산책하거나 넓은 공터에서는 가끔씩 마스크를 아예 착용하지 않는다기 보다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신선한 공기를 쬐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가라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정부의 방역 제한이 점차 해제됨과 함께 나오는 말은 일상으로의 복귀였다.
하지만 말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 코로나 사태가 완전히 종결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전 세계에는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과, 심각한 후유증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 백신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표현은 우리가 잠시 포기해야 했었던 우리의 자유에 대해 돌아온 권리에 한해서 존재하지, 완벽히 돌아갈 수 있는 상황으로써 쓰이지 못하는 표현임은 분명하다. 시간이 지나며 마스크를 벗는 사람이 유지될 수도, 늘어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의 자유를 완벽히 돌려주지는 않는 어려운 복병인 것이다.
다시는 못 돌아간다?
많은 의학계 전문가들은 전 세계는 더 이상 코로나 시대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고 했던 전문가들의 말은 세계 2차시대 이전과 이후처럼 코로나 시대 이전과 이후로 완벽하게 분리되었다거나 모두가 코로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반응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그 의미는 코로나가 설령 완벽하게 지구상에서 퇴출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바이러스가 인류를 괴롭힐 수 있으며 이러한 바이러스의 창궐은 언제까지나 인류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이렇게 힘들었지만 그 누구도 코로나의 타격을 예상하고 대비하지 못했다.
코로나처럼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언제든 나올 수 있으며 인류를 괴롭히는 바이러스는 강도가 심해지면 심해지지 약해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본질적 의미의 '코로나'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너무나도 고통받은 지금, 인류는 코로나를 본질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제2의 코로나는 무엇일까? 생각하기 싫지만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코로나가 이렇게 직격탄이 심했던 이유 중 하나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병상 가동과 의료체계 및 재난상황 시의 시스템이 갖춰졌다. 이러한 시스템은 코로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앞으로 올 수많은 질병을 예방하는 용도로 함께 사용되어야 한다.
질병뿐일까?
문제를 확장시켜 더 큰 관점에서 인류를 바라본다면 과연 인류의 고통과 멸망이 질병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든다. 대답은 초등학생에게만 물어봐도 들을 수 있다. 인류의 고통과 아픔은 질병뿐만 아닌 여러 곳에서 오지만 가장 큰 은 인류가 지구를 아프게 해서 온 고통을 다시 받는 것이다.
많은 기상이변, 재난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인류에게 심각하게 다가왔을 인류는 코로나 시대보다 더 손놓고 상황으로 바라보게 될 수밖에 없다. 질병의 무서움도 상당하지만 자연의 분노 또한 인간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은 이미 자연의 위대함과 무서움을 동시에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지구를 괴롭히면 안 는 것도, 이미 상당 준으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었다는 것도 피부로 느끼고 있고, 본능적으로 감이 오며, 많은 매체를 통해 눈으로 읽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매일 산사태가 나서 집을 덮치는 것이 아니고, 쓰나미와 지진이 매일 나는 것이 아니니 인류는 그 속에서도 안정을 느끼며 삶을 영위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작디작은 인간의 오해이다. 산사태가 집을 덮치지 않더라도 덮치려 지금 이 간에도 움직이고 있고 지진과 쓰나미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꾸준히 우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인류를 힘들게 하는 가장 높은 단계는 결코 질병이 아니다. 질병은 눈에 가시적으로 빠르고 명확하게 드러나서 사람들이 더 크게 느끼는 것이지,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꾸준히 우리를 노려보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자연재해에 눈을 돌려야만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한국의 속담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인류의 마지막이 외양간을 고치는 모습이 아니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하고, 나의 세대가 아닌 미래 후손 세대의 이야기라고 귀를 닫고 눈을 감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당당히 지킬 수 있는 인류가 되어야 하는 시기가 점차 더 확실하게 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