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 첫발 내 디딘지 어느새 40여년이 지나버렸다. 엊그제 발령받은 것 같은데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그동안 교육계도 많이 변했다. 컴퓨터가 없는 시대, 공문이 오면 묵지를 대고 글씨로 써서 보냈던 기억, 원지를 긁어 시험문제를 출제하거나 학부에게 알리는 글을 손수 써서 인쇄하여 보냈던 일, 지금 생각하면 아련하다.
그땐 글씨를 잘 쓴 교사가 대우를 받았다. 3월 학급을 맡으면 환경정리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뿐인가 아침마다 조회, 오후에는 종례가 잦았고, 공부 가르치는 교사인지 사무 보는 교사인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던 시대였다. 오늘날 같이 행정실이 어디 있겠는가. 행정실 업무도 교사의 업무 중의 하나였다.
교사 중 한분이 경리 업무를 맡아 교사들 봉급도 나누어주고 학교 예산의 경리장부를 정리하곤 했다. 남자 교사의 경우 번갈아 가며 숙직을 하고 일요일에는 일직을 하였고, 방학을 하면 일숙직으로 작은 규모의 학교는 일숙직 근무로 방학을 거의 소일하곤 했다. 전화기도 학교 전화기 한 대로 숙지는 전화통을 지켰다. 운동회가 열리면 운동회 준비로 한 달여 동안을 운동장에서 고생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그야말로 교육박물관을 거쳐 오늘에 이른 셈이다. 오늘날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오늘날 젊은 교사들은 박물관 속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제 마음속에 박물관을 지니고 사는 교육박물관이다. 교육박물관의 마인드로 어디 오늘날의 교사를 지도 감독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마인드로 교육현장을 이끌어가는 관리자들이 가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학교는 구세대와 신세대의 소통부재로 보이지 않는 심리적 고통을 겪게 된다. 소통의 단절이다. 관리자의 독단적인 운영으로 소통이 되는 것 같지만 착각이다. 안으로 상처가 곪고 있는 것이다. 민주적인 운영과 신세대의 말을 귀 기우릴 줄 아는 관리자의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교육현장을 지혜롭게 이끌어가려면 우선 관리자가 부단한 연수로 자기갱신의 뼈아픈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분명 부단한 연수를 거친 관리자들의 학교운영은 원활하게 돌아가지만, 속물적으로 승진대열에 윗사람의 비위맞추고 자기 연수를 게을리 하는 관리자 중에는 아직도 교육박물관 같은 행동으로 존경이 아니라 빈축을 사는 사례가 있기도 할 것이다. 고정관념이란 무서운 일이다. 늙을수록 고정관념이 사로잡혀 자기 고집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노 교사들이 있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때이다. 시대가 너무 변했다.
옛말에는 체벌로 허용되었고, 그래도 스승 존경 풍토가 있어서 교사가 대접을 받았으나 요즈음에는 대접은커녕 교사가 학부모를 모셔야하는 상황이다. 학부모가 왕이 되어버린 세대다. 수요자 중심교육이라고 말은 그럴 싸 하다. 언제는 어린이를 위해 봉사하지 않았나. 수요자 중심이라면 수요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수요자 무엇을 원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원하는 문제는 예나 오늘날이나 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보살펴주고 공부를 잘 가르쳐주고 바른 인성을 심어달라는 것,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옛날에는 마치 수요자의 요구를 묵살한 것으로 몰아세우고 수요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서 교육과정에 반영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수요자가 정말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변화하는 미래에 대처하는 인간을 육성해달라는 것이다. 즉 어린이 중심교육을 해달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학교운영이 어린이 중심이 아니라 어린이의 입장을 무시한 관리자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그것은 바로 교육박물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교육박물관 같은 행동으로 부끄럽게 행동해왔는가? 자꾸 반성한다. 40여 년간 교육현장에서 어린이를 가르쳤지만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만 같다.
다행이 나는 관리자가 되지 않아 죄를 덜 짓는다는 것에 대해 만족할 뿐이다. 관리자가 오늘날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하고 교육박물관 같은 사고와 행동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면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일인가? 능력이 부치면 젊고 유능한 교사의 자문을 얻어 그들의 참신한 교육적인 마인드를 학교현장에 실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어야 한다.
구세대와 신세대가 소통하는 교육 현장이 되어야 한다. 일방 통행식의 지시전달에만 급급할 때 교육의 혁신이 물 건너가고 오히려 퇴보할 뿐이다. 얄팍한 지식과 고집불통으로 더 이상 죄를 짓는 교육박물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관리자들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