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한민국 정치판은 희화(戱畵)의 병풍과 같다. 우스꽝스러운 그림 여러 편 속 희객(唏客)들을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 쇠락하는 정치꾼들이여~, 국리민복(國利民福)이란 말을 들먹거리지 말지어다. 그대들의 정수(政數) 셈법에 국민과 국가라는 상수와 변수는 어찌 계리(計理)되고 있는가. 개탄(慨嘆)의 마음을 여미면서 역사 속의 사화(士禍)와 정난(靖難, 政亂)을 떠올리는 백성(百姓)들은 얼마나 될까.
1백까지의 성씨를 의미하는 봉건시대의‘백성’이라는 단어, 오늘 날 공화시대 대중(국민)으로 통용되는 이 단어가 고려 말 조선 초부터 통용된 사연을 곰곰이 되새기면서, 1953년 박재홍의 목청으로 이 세상에 나온 정치판 풍자노래 <물방아 도는 내력>을 필설(筆舌)한다. 이 노래는 그 시절로부터 1960년대로 이어오면서, 오늘날 정치꾼들처럼 초라하고 남루한 정객들과 정파를 풍자한 희곡(戱曲)으로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곡조이고, 정치꾼들로부터는 미운털로 취급을 받은 절창이다.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 낮이면 밭에 나가 길삼을 매고 /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 물방아 도는 내력 알아보련다 // 사랑도 싫다마는 황금도 싫어 / 새빨간 산기슭에 달이 뜨며는 / 바위 밑 토끼들과 이야기 하고 / 마을의 등잔불을 바라보면서 / 뻐꾹새 우는 곳을 알아보련다.
노래 속의 화자는 도연명(陶淵明, 365~427. 동진 시대 시인)의 삶을 엇댈 만큼 목가적이다. 체념과 달관의 경지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자연인이다. 우리네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머니들 삶의 모습이 얽힌다. 대한민국 근대(1876~1945)와 현대(1946~오늘날)의 시대적인 맥락(脈絡)이 노래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 이 곡조는 6.25전쟁 중 일어난 정치판으로부터 음유의 끈을 이어내야 하는 절창이다.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정치꾼들로부터 미움을 받은 노래, <물방아 도는 내력>. 그래서 이 곡조는 100년 애창곡이 되는 것이다. 천년을 이어가는 대한민국의 민중가(民衆歌)가 되면 더욱 좋으련만...
흰 명주실은 물이 잘 든다. 푸른 물감·노랑 물감·붉은 물감 등 어느 색깔이든 받아들인다. 맹물도 마찬가지로 색깔 있는 잉크물이 잘 든다. 봉건시대 백성들도 공화시대 국민들도 명주실과 맹물처럼 본심은 희고 맑다. 투명한 유리 프리즘처럼 성선설(性善說)의 근원과 같다. 그래서 나라의 지도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탁한 물감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꾼들, 특히 선출직 표몰이 패거리들이 더하다. 이 노래는 이들에게 우소(牛笑), 소 웃음을 보낸 곡이다. 1,129일 간의 6.25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에 박재홍이 불러서 공전의 히트를 한 노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친 국민들의 심신에 위로와 에너지를 불어 넣어준 유행가다.
1절 가사 길삼은 1954년 도미도레코드 판에는 기심으로 나와 있다. 기심은 국어사전에 풀, 잡초에 대한 낱말로 나와 있지 않고, 기심(欺心, 자기 양심을 속임)의 뜻만 있다. 정치꾼들의 마음과 같다. 다만, 사전에는 ‘논밭에 난 잡풀의 뜻인 김이라는 말’이 한자 없이 나와 있을 뿐이다. 김은 기음의 줄임말이며, 그 기음은 논밭에 난 잡풀인데, 이것을 뽑아 없애는 것을 ‘기음맨다, 김맨다’고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김은 기슴이라는 옛말(古語)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슴이 기음이 되고, 기음이 김이 되어 요즘 말로 쓰고 있다. 이것을 남도지방에서는 구개음화현상인 지심으로 발음하며, ‘지심맨다’는 표현으로 사용한다. 민초들이 삶에 있어서 정치꾼들은 김일까 지심일까? 저들의 상투적인 거짓 허투루는, 늘 사돈에게 남의 말을 하는 듯하다. 뒤집고, 회돌이치고, 유체이탈화법을 쓰고...
이 노래로 박재홍은 정치판에서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다. 6.25전쟁 중 임시수도가 부산에 있던 1952년 5월, 부산과 경남 및 전남북 23개 시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의원 10여명을 구속한, 이른바 부산정치파동과 이 노래를 대중들이 연계하여 반응하였던 것이다. 그 시절 임시수도 대통령 집무실은 오늘날 동아대 박물관, 당시는 경상남도 도청 건물이었다.
박재홍은 <유정천리>, <울고 넘는 박달재>등을 발표하며 1950~60년대를 풍미했던 인기가수다. 구수한 음색이 매력이었던 그는 격변의 시대상을 노래하며, 구성진 가락으로 상처받은 서민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특히 휴전시기에 발표된 이 곡은 전쟁 중에도 추잡한 모습을 보인 부산정치파동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귀거래사로 불린 노래다. 그때부터 그는 정치권에서 반골가수로 미운털이 박혔고, 이후 유주용·방주연·박일남·조미미·윤선녀·김용임·남일해 등이 부르며 인기를 지속했다.
이 노래를 작사한 손로원은 노랫말로 정치를 비판할 의도는 없었단다. 하지만 대중들은 희화적인 반응을 한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선출직에서 상대방을 앞서거나 비 선출된 정치가가 아닌, 정치꾼들은 <물방아 도는 내력>의 내력을 암송해야만 대한민국의 정치선(政治船)에 승선할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는 것인데.... 근래,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낙선(落選)의 문지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었던 나그네 몇몇이 또 대문을 열고 내로남불 판으로 걸어 나왔다. 지켜볼 일이지만, 눈총은 따갑다. 투표(投票)의 ‘표(票)’자가 ‘불똥 튈 표자’라는 것을 저들은 알고나 있을까. 불 속에 뒹굴다가 재(災)가 될 기우(杞憂)는 할까 아니할까.
<물방아 도는 내력> 노래 발표 당시 43세이던 손로원은 1911년 서울(철원)에서 출생하여 손희몽·불방각·손영감·나경숙·부부린·남북평 등의 예명을 사용하였으며, 우리나라 근현대사 대중가요계 불세출의 작사거장(作詞巨匠)이라 할 만하다. <봄날은 간다>, <잘 있거라 부산항>, <홍콩아가씨>,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샌프란시스코> 등등이 그의 손끝에서 씌어 졌다. 그는 6.25 전쟁 당시 부산에서 단칸방 벽에 세계지도를 붙여놓고 이국정서가 가득한 노랫말을 만들었단다. 그의 성장기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정규교육을 받은 근거는 없으며, 독학으로 대중가요 작사를 익힌 것으로 본다.
그는 미술로 대중예술계와 인연을 맺으면서, 1930년대에 작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반야월과 함께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사가이며, 두주불사(斗酒不辭) 주종물문(酒種不問)의 애주가로 살다가 1973년 향년 6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걸작 <봄날은 간다> 노래 속의 봄바람에 휘날리는 ‘연분홍 치마’는 그의 어머니가 시집을 오던 날 입고 온 치마이며, 아들이 장가드는 날 입으려고 했던 옷임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 연분홍 치마는 끝내 다시 입지 못하고 저승길을 드셨으니...
작곡가 본명 이삼동. ‘동양의 슈베르트’로 불린 이재호는 1919년 진주에서 출생하였고, 진주고등보통학교(진주고)를 다니다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고등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였다. 귀국 후 콜럼비아 레코드사에서 무적인(霧笛人, 안개 속에 경적을 울리는 사람)이라는 필명으로 작사·작곡을 해오다가 태평레코드로 옮겨 이재호라는 예명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였다. 그는 <북방여로>,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산팔자 물팔자>, <고향설>, <불효자는 웁니다> 등으로 인기를 모으고, 태평연주단을 이끌고 국내와 만주일대까지 순회공연하며 이름을 떨친다. 광복 후에는 결핵 질병 치료차 고향 진주에 내려가 모교이던 진주중학교 음악교사를 지내다가 6.25전쟁 이후 다시 작곡활동을 하였으며, 1960년 지병인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40세였다.
<물방아 도는 내력> 발표 당시 27세이던 박재홍은 1927년 시흥에서 태어나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해방 후 1947년 당시 오케레코드가 주최한 신인콩쿨대회에서 입상하여 데뷔하였다. 그는 1948년 <눈물의 오리정>, 1949년 <자명고 사랑>, <제물포 아가씨> 등을 히트하고, 1950년 반야월이 창립한 남대문악극단 단원으로 <울고 넘는 박달재>를 취입하였는데, 이후 한 달 만에 6.25전쟁이 터진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나라가 치루고, 전투는 군인이 하며, 국민들은 피란살이를 해야 한다.
그러한 전쟁 통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문화는 생멸한다. 대중가요를 포함한 모든 문화예술의 가닥도 마찬가지다. 부산으로 피난을 간 박재홍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쇼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1954년 말에는 부산의 도미도레코드에서 이 노래와 <향수>, <슬픈 성벽> 등을 취입하였고, 1956년 신신레코드, 1959년 아세아레코드를 전전하였으며, 1960년대 오아시스 쇼단을 창설하여 단장을 역임했다. 1970년대부터는 주로 극장무대에서 활동했으며, 1980년 12월 1일부터 방영된 컬러TV시대에는 원로가수로써 방송출연도 활발히 하였다. 그러던 중 1989년 지병으로 향년 63세로 타계하였다.
천시지심(天時地心) 지부장무명지초(地不長無名之草)다. 하늘은 때를 운행하고 땅은 만물을 길러낸다. 모든 것은 시와 때가 있음이고, 그 땅은 이름 없는 풀 한포기도 길러내지 않는다. 삼라만상에는 하늘의 뜻이 깃들어 있음이다. 2022년 5월 대한민국의 새 기운이 감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과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깃발이 다시 펄럭거린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정리파권(政利派權)에 우선할 진정한 치가(治家)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찬이슬 저녁바람이 서러운 나그네(떠나가는 권세들)의 아침과 저녁은 시(時)인가 때(時)인가. 때는 가득 찰 때와 텅 빌 때가 있고, 일은 이로울 때와 해로울 때가 있다. 거권래권(去權來權),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여~. 영원할 자유대한민국이여~.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유차영 519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