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의 초기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현상을 그린 수작으로 가난에 대한 주인공의 현실적 아픔을 아주 생생하게 그린 수작이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자 어머니는 아버지, 동생과 함께 연탄불을 피워놓고 자살을 했다. 혼자 남은 주인공 '나'는 어머니 친구 집에서 인형 옷을 만드는 재봉틀 일을 했다. 그리고 어쩌다 멕기 공장에서 일한다는 상훈이를 만나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동거하기로 했다. 연탄 반장을 절약하기 위해 남녀가 한 이불 속에서 같이 잤다. 그러던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상훈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며칠 만에 들어온 상훈이는 깔끔한 양복에 일류 대학 배지를 달고 있었다. 상훈이는 아버지가 커다란 회사를 운영하는 재벌 아들인데, 고생 좀 해보라고 돈 한 푼 없이 쫓겨나 겨울방학 동안 공장에 다녔다고 했다.
"너 미쳤니? 너 기어코 도둑질했구나. 해도 왕창. 그리고 가짜 대학생 짓까지. 너 정말 미쳤니?
"여 봐, 이러지 말고 이제부터 내가 하는 소리를 정신 차리고 똑똑히 들어. 나는 부잣집 도련님이고 보시는 바와 같이 대학생이야. 아버지가 좀 별난 분이실 뿐이야. 방학 동안에 어디 가서 고생 좀 실컷 하고, 돈 귀한 줄도 좀 알고 오라고 무일푼으로 나를 내쫓으셨던 거야. 알아듣겠어.''
-본문 중에서
주인공은 부자들이 재미 삼아 가난뱅이를 놀이로 해보는 것에 배알이 틀어졌다. 도대체 가난을 뭐로 알고, 가난을 훔쳐 희롱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집에 데려다가 잔심부름이나 시키며 대학에 보내준다는 말도 뒤로한 채 고래고래 소리 질러 상훈이를 내쫓아버린다.
'나는 그를 쫓아 보내고 내가 얼마나 떳떳하고 용감하게 내 가난을 지켰나를 스스로 뽐내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방은 좀 전까지의 내 방이 아니었다. 내 가난을 구성했던 내 살림살이들이 무의미하고 더러운 잡동사니가 되어 거기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 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은 빛나는 학력, 경력만으로는 성에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본문 중에서
그렇다. 가난은 생존의 문제다. 가난이 힘든 것은 세상으로부터의 소외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가난은 가난에 대해서 관심 있어 하는 체하는 유명 인사들의 체험학습이 아닌 것이다. 상훈의 아버지는 결국 부잣집 도련님으로 살면서 풍족함만 알고 살았던 자식에게 고생이라는 방학동안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을 하게 하며 얼마나 뿌듯해했을까.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고 누가 말했다. 그 불편함이 얼마나 사람을 아프게 하고 비참하게 만드는지 그 입장이 되어보면 쉽게 말하지는 않았으리라. 가난을 훔쳐 간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 있다. 가난을 짓밟고 올라가려고 하는 자들이다. 부동산 투기가 그렇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 자녀의 출세를 위해 비양심적이고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뻔뻔한 자들이 그렇다. 너희들은 원래 없이 태어났으니 그렇게 살아라. 나는 상류층이며 지도층이니 내가 누릴 세상을 따로 있다는 그 위선이 더 나쁜 것이다.
얼마 전 생리대가 없어서 고민한다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국내 자선 단체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을 걱정한다면 답은 간단하다. 값싼 동정을 하면서 국가가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고 하기 이전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내 것을 나누면 된다. 말로만 걱정하고 위한다고 떠벌리는 사람으로 살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행해야 한다. 조금을 나누는 것, 그게 함께 사는 세상이다.
[민병식]
인향문단 수석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문학산책 공모전 시 부문 최우수상
강건 문화뉴스 최고 작가상
詩詩한 남자 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2020 코스미안상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