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 칼럼] 지명풀이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

최규성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일본서기계체기 23년조에 실려있는 성의 이름이다. 임나지역의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 파견된 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이라는 인물이 신라와 백제를 업신여기고 거드름을 피우다가 신라의 상신(上臣) 이질부례지간기(伊叱夫禮智干岐=이사부)가 군사 3천명을 이끌고 오자 웅천(熊川)으로부터 임나의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으로 피신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임나(任那)의 위치와 관련하여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지명이기도 하다.

 

먼저 해당 지명이 등장하는 일본서기계체기 23(서기 529) 4월조 해당부분의 기록을 발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은 크게 노하여 나라의 사신을 문책하여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이 정한 도리이다. 무슨 까닭으로 두 나라의 왕이 직접 와서 천황의 칙명을 받지 않고 함부로 사자를 보내는가. 지금 만일 너희 왕이 몸소 칙명을 들어러 온다고 해도 내가 칙명을 전하지 않고 반드시 물리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구지포례와 은솔 미등리는 두려운 마음을 품고 각자 돌아가 왕에게 알렸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는 다시 상신(上臣) 이질부례간기를 파견하였으며, 무리 3천명을 이끌고 칙명 듣기를 청하러 왔다. 모야신은 멀리 무장을 갖춘 무리 수천 명을 보고 웅천(熊川)으로부터 임나의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으로 들어갔다. 이질부례지는 다다라원(多多良原)에 머물면서 귀복하지 않고 석 달을 기다리면서 번번이 칙명을 듣기를 청하였으나, 끝내 칙명을 알려주지 않았다.

 

인용문에 나오는 웅천(熊川)’은 현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일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된다. 기실 熊川(웅천)’이란 표기는 당시 사람들이 [구마나리/kuma-nori]라 일컬었던 지명을 훈차하여 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바, 비슷한 이름을 가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비정할 수 있는 대상지역이 여기저기 많이 있는 것이다.

 

충남 공주시에 있었던 웅진(熊津)’에 비정할 수도 있을 것이며, 현 전남 여수시 웅천동에 비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 큐슈 야츠시로(八代)시 일대를 흐르는 구마천(球磨川)도 그 대상일 수 있다. 필자는 현 야츠시로시의 구마강 하류에 위치한 센단마치(栴檀町)가 서기 562년에 화랑 사다함이 격파했다는 전단성(栴檀城)일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큐슈의 구마천(球磨川)이 바로 웅천(熊川)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생각을 바꿔 위 인용문의 웅천(熊川)’은 현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웅천(熊川)이 경남 진해라면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은 어디를 가리키는가?

 

일본어를 잘 아시는 분이거나 일본서기를 연구하신 분이라면 일본의 고대문헌에 쓰인 ()’[/ko]에 가깝게 소리내는 음을 적었던 글자임을 아실 것이다. 그리고 ()’은 현대한국어의 사이시옷과 유사한 사이지읒 정도의 음을 표기한 글자임도 잘 아실 것이다. 다시말해, ‘己叱己利(기질기리)’[곳고리/kotkori]라 일컬었던 지명을 음차한 표기라는 말이다


원시지명어소 [/tar]을 중첩하면 [다다라/tatar]과 같은 식으로 발현되고 원시지명어소 [/kur]을 중첩하면 [구구리/kukuri] 혹은 [고고리/kokori]와 같은 식으로 발현된다. [곳고리/kokori]를 당시 사람들이 己叱己利(기질기리)’라 적었던 것이며, 현 큐슈 후쿠오카 남쪽에 있는 오고리(小郡)’시에 그 지명의 유전자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질기리(己叱己利) 현 오고리(小郡)시에 비정된다는 얘기다


<웅천(熊川)과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의 위치>



小郡을 현대일본어에서 읽으면 고고리(kokouri)”라 읽을 수도 있고 오고리(okouri)”라 읽을 수도 있다초성의 []음이 약화 탈락하는 사례는 한국어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세종대왕 때 간행된 용비어천가』 주해에는 楸洞(추동)을 가래올”, 沙峴(사현)을 모래오개라 병기해 놓았다본래 가래골” “모래고개라 써야 할 터인데 가래올과 모래오개라 써놓은 것이다초성의 []음이 약화탈락하였음을 말해준다그와 비슷하게 일본인들도 본래 [고고리]라 일컬었던 지명을 己叱己利’ 혹은 小郡이라고도 썼던 것인데후대인들이 小郡을 고고리라 읽지 않고 오고리라 읽고있는 것이다




필자는 임나(任那)’와 가라(加羅)’의 위치에 대하여 현 큐슈 북단의 마츠우라(松浦)’가라츠(唐津)’에 비정하는데, ‘기질기리(己叱己利)’는 그들과도 잘 합치되는 곳에 위치해 있다앞의 인용문에 설명을 조금만 더 덧붙이자면, 신라 상신 이질부례(=이사부)3개월동안 다다라원(多多羅原)에 머물며 칙명 듣기를 기다리다가 4개의 마을을 초략하여 사람들을 잡아갔다고 되어 있다 4개의 마을은 금관(金官), 배벌(背伐), 안다(安多), 위타(委陀)”를 가리킨다고 하였으나 다른 책에는 다다라((多多羅), 수나라(須那羅), 화다(和多), 비지(費智)”를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한다. 그 중 어느 설이 옳은지 알기는 어렵지만, 여기 언급된 8개의 마을 전부에 대해 언어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이들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추정을 해 볼 수는 있다. 금관(金官)은 현 경남 김해에 비정되고 나머지 마을은 다음 지도에 표시한 바와 같다




己叱己利(기질기리)’는 실제 당시사람들이 [곳고리] 정도로 일컬었던 지명을 차자한 표기인 바, 이름만 놓고 보면 현 경남 거제의 앵산(鶯山)’에 비정할 수도 있을 것이나 필자가 큐슈 후쿠오카현의 오고리(小郡)’에 비정한 이유는 이들 연관지명이 모두 큐슈 일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펴낸 한글역주본 일본서기에는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을 현 경남 창원시 성산패총(城山貝塚)에 비정하고 있는데, 참으로 한심한 주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任那(임나)’가 무엇을 차자한 표기인지도 모르고 任那(임나)’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른 채 모든 지명을 무작정 한반도 남부지역에다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만 드는 태도는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답지 않게 너무 안이한 자세로 연구의 흉내만 내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임나(任那)는 현 큐슈 북단의 마츠우라(松浦)시를 가리키며, 일본서기임나의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이라고 되어 있는 기질기리(己叱己利)는 현 큐슈 후쿠오카현의 오고리(小郡)시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연구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계체기 23(서기 529) 기록 내용의 전후 상황에 대해 설명을 조금만 더 보충하기로 하겠다.


계체천황 6(512)에 백제가 임나의 4(상다리, 하다리, 사타, 모루)을 달라고 요청했고, 그 요청에 따라 임나4현을 백제에게 주었는데, 반파국(伴跛國)이 백제의 땅 기문을 뺏어가 버린다. 이듬해인 계체천황 7(513)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기문(己汶)을 백제에게 되돌려달라고 요청하자 주변 여러 나라의 사신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기문(己汶)과 대사(帶沙)를 백제에게 준다


그러자 이듬해인 계체천황 8(514) 반파국이 다시 기문과 대사를 공격해 빼앗은 후 성을 쌓고 일본에 맞선다. 그리고 신라를 공격하는 등 횡포를 부린다. 계체 9(515) 백제 사신의 귀국길에 물부련(物部連)을 함께 보내지만 물부련은 대사강(帶沙江)에서 반파국 군사들의 공격을 받아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간신히 도망쳐 문모라(汶慕羅)라는 섬으로 피신한다.


그로부터 12년 후인 계체 21(527) 근강모야신을 보내 임나를 재건하고자 한다. 신라에 의해 멸망한 남가라(南加羅)와 탁기탄(啄己呑)을 다시 일으켜 세워 임나에 합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축자국조(筑紫國造) 반정(磐井; 이바이)의 반역으로 길이 막혀 근강모야신은 가지 못한다.


계체 22(528) 물부대련추록화(物部大連麤廘火)를 보내 축자국조 반정의 반란을 진압한다


계체 23(529) 백제왕이 하다리국수 수적신압산(穗積臣押山)을 통해 백제의 조공항인 다사진(多沙津)을 요청하자, 물부이세련부근(物部伊勢連父根)을 파견하여 백제왕에게 다사진을 하사한다


그러자, 가라왕(加羅王)이 자기네 땅인 다사진을 백제에 주었다며 불만을 품고 신라와 우호를 맺고 일본을 원망한다. 신라는 도가(도가) 고파(고파) 포나모라(포나모라) 3개 성을 함락시키고, 북쪽 변경의 5성도 공격한다


529년에 교역통로의 요지인 다사진(多沙津)을 백제에게 주자 본래 그곳을 관할하고 있던 가라(加羅)를 비롯해 반파(伴跛)와 신라(新羅) 등의 주변국들이 크게 반발할 수밖에 없었고, 신라는 이질부례(=이사부)를 보내 다다라(多多良)벌판에 3개월동안 머물며 답변을 기다리다가 금관(金官) 배벌(背伐) 안다(安多) 위타(委陀) 4개의 마을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잡아갔다고 한다. 어떤 책에는 이질부례가 초략한 4개의 마을이 다다라(多多羅) 수나라(須那羅) 화타(和多) 비지(費智)라고 되어 있다 한다.


가라(加羅)가 신라에 항복한 것이 532년이니, 항복하기 2년 전인 529년에 이사부의 규슈 정벌이 있었던 셈이다. 이것이 이사부의 1차 큐슈 정벌이고, 562년 임오년에 15세의 화랑 사다함을 선봉으로 하여 이사부가 다시 큐슈를 정벌하게 되는데 그것이 이사부의 2차 큐슈 정벌이다. 이러한 기록은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없다. 일본서기에만 실려있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이사부가 2차에 걸쳐 큐슈지역을 정벌했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는 책이 바로 일본서기인 것이다



[최규성]

방송 작가

수필가

칼럼니스트

최규성 ; burkurtar@naver.com



작성 2022.05.13 10:07 수정 2022.05.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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