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애는 아직 전화 안 왔죠?’ ‘응, 공부한다고 정신이 없나 보지 뭐.’ 큰아들 내외와 어버이날 저녁 식사를 하러 가면서 아내와 나눈 대화다. 언제부턴가 5월을 가정의 달이라면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번갈아 챙기는 것이 풍습이 되다시피 되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사흘을 두고 연이어 다가오고 부처님 오신 날까지 겹치니 오월 초순은 싱그러운 봄을 만끽하는 분위기로 흐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어버이날 자식들이 부족한 아비를 챙기는 것을 당연지사로 알고 웃으며 떠들다가 돌아오는 밤길을 걸으면서 뒤늦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다. 지하에 계신 부모님도 어버이인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본질을 놓친 것이다. 지금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피투성이로 태어난 내가 길을 걷도록 해 주신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부자(모녀)관계가 단절된 것인가? 죽음은 단절을 의미하는가? 해마다 때가 되면 겨우 제사 한 번 모시고 나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현세(現世)의 자식들에게서 어버이 소리만 들으면 되는 것인가? 죽음과 삶은 단절이 아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 그리고 현재의 삶(선물)이다.
세상엔 어머니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은 친구 어머니며 이웃 어르신을 보고 ‘어머니’ 또는 ‘모친’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생물학적인 내 어머니는 한 분이다. 내 어머니는 초등학교 사립문에도 가보시지 못하시고 한평생 밭에서 뜨거운 햇볕을 등에 지고 김을 매시며 자식들을 키우셨다. 어느 날, ‘내가 몸이 좀 무겁네.’라셔서 병원으로 모셨는데 스무날 만에 급하게 가시고 말았다.
어머니는 35년 전 내가 평생직장을 구해 떠날 때 수건으로 보리타작 먼지를 털어내시며 말씀하셨다. ‘세상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하든지 옳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가도 오래 걷다보면 옷이 다 젖는 것 같이 결국은 자신을 해치게 된다. 사람은 어떠하든지 바르게 살아야 한다’라시며 손을 꼬옥 잡으셨다. 엄중함과 믿음의 눈빛이었다.
그때 그 말은 지금까지 나의 삶에서 기준이었다. 내 어머니를 생각하면 작은 키에 햇볕에 그을린 검은 얼굴, 북두갈고리 같은 손이 떠올려진다. 내 어머니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학처럼 선녀처럼’ 살다 가시지도 않았다. 그저 봄이 오면 봄을 맞이하셨고 가을이 오면 가을에 감사하셨다. 아이들이 커 가면 믿음으로 떠나보낼 뿐이었다.
희한하게 아버지와 생신날이 같으셔서 당신의 생신날에도 부엌데기를 면하지 못하셨고 아버지께서 먼저 가신 후엔 홀로 시골집을 지키시다가 당신이 영원한 여행지로 가셨다. 그곳은 땅이었고 흙이었다. 한 줌의 하얀 뼛가루로 황토에 묻히셨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도 자식들을 위해 애를 쓰셨다.
나이만 먹은 철없는 막내가 건강하지 못한 간(肝)에다가 술을 계속 먹자 어느 해 여름 청천벽력 같은 회초리를 내리치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둔(愚鈍)한 아들놈이 알아듣지 못할 줄 아셨기 때문에. 그래서 걸어 다니는 신체를 살리셨다. 그리고 이번에는 늦게까지 철이 들지 않은 아둔한 아들에게 더 큰 시련을 내려 세상 공부를 깊이 시키셨다.
그냥 세태에 젖어 세상을 의미 없게 스쳐 살다 갈 아들은 어머니께서 내리신 시련으로 까막눈을 뜨게 되는 행운을 맞았다. 그야말로 큰 축복이었다. 말로만 ‘본질(本質)’ 어쩌구를 뇌까리다가 생각도 없이 본질을 놓칠 뻔했다. 세상을 바라보이는 대로 볼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을 만난 것이다.
그 시련을 처음에는 낭떠러지인 줄 알고 화도 내었었지만 쫄쫄거리는 시냇물이었던 자신의 내면(內面)을 채우는 시간이었음을 깨닫고 나의 작은 강을 흐르는 우생마사(牛生馬死)의 진리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맛보는 기쁨을 누려가고 있다. 요즘은 사색을 넘어 멍 때릴 줄도 안다. 모두가 땅속 깊은 곳에서 애쓰고 계시는 하얀어머니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버이날 자식들과 맛있는 것을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자신들이 잘난 것이라고 취해가는 것이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자식이 효자면 부모님이 장수 하신다는데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한 일들이 사방에서 피어올라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하지만 따뜻한 추억들도 한없이 피어납니다.
어머니, 나의 하얀어머니. 삶과 죽음이 하나이듯 생사가 천륜(天倫)을 갈라놓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시절, 어느 때 다시 인연이 온다면 나풀거리던 곱슬머리 그대로 나의 어머니로 오십시오. 그때도 부족한 아들은 아둔함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버선발로 뛰어나가 모시겠습니다. 나의 현재를 사랑하게 하신 어머니. 제가 피투성이로 태어난 저의 생일날 새벽에라도, 시골 산 밑 작은 집 사립문에 피어난 붉은 작약(芍藥)으로라도 꼭 오십시오.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제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