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더 섬세한 시선을 갖고서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음을 보라.
- 프리드리히 니체
전 세계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그림책, 베르너 홀츠바르트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읽는다.
작은 두더지 한마리가 하루는 해가 떴는지 보려고 땅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뭉글뭉글하고 길고 갈색의 어떤 것이 머리에 철퍼덕하고 떨어졌다. “에그, 이게 뭐야?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두더지는 사방을 휘둘러보았지만, 눈이 나쁜 두더지는 범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한순간에 두더지에게 몰입하게 된다. 왜? 똥 이야기니까. 어린아이들은 똥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난다. 절에 가면 뒷간(화장실)을 해우소라고 한다. 근심이 사라지는 곳. 어릴 때 우리는 똥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에 시달렸던가?
동물들은 똥을 누고 싶을 때 마음껏 눈다. 동물에서 진화한 인간은 똥을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누면 안 된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는가? 똥을 참는 것, 인간이 체험하는 원초적 고통이다. 그러다 마음껏 똥을 누게 되었을 때, 그 해방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으리라.
그런데 그 시원한 똥을 누가 내 머리에 누었다고 상상해 보라! 두더지처럼 복수심으로 활활 불타오를 것이다. 두더지는 증거물인 똥을 머리에 이고 범인을 찾아 나선다. 만나는 동물들마다 머리의 똥을 보여주며 묻는다.
“네가 머리에 똥 쌌지?” 그러면 동물들은 자신들의 똥을 보여주며 대답한다. “나? 아니야. 내가 왜?” “내 똥은 이렇게 생겼는걸.”
다섯 개의 크고 굵은 말의 똥, 까만 새알 초콜릿 같은 염소의 똥, 쫘르륵 하며 쏟아지는 누렇고 커다란 소의 똥, 뿌지직하고 풀밭에 떨어지는 돼지의 묽은 똥...... 두더지는 그들이 범인이 아님을 확인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두더지는 평소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놀라운 체험을 했을 것이다. ‘참으로 똥이 다양하구나!’ 서로 다 다르다는 것. 섬세하게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두더지는 머리에 똥을 맞는 치욕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치욕을 겪으면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잘 알게 된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현미경처럼 상세히 보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신의 마음 알기’다.
자신의 마음을 보아야 남의 마음이 보인다. 니체는 말한다. “보다 더 섬세한 시선을 갖고서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음을 보라.” 섬세한 마음으로 자신과 세상을 보지 않으면 자신과 세상이 변한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된다.
늘 고정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고정된 것, 영원불변한 것을 찾게 된다. 생로병사의 변화 속에 있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게 된다. 현재의 삶을 도외시하고 사후의 천국, 극락 같은 것을 희구하게 된다.
현재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노신의 소설 ‘아큐’에 나오는 아큐처럼 늘 ‘정신 승리법’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면 당장에는 마음이 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속이고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진짜 마음은 무의식이다. 무의식을 속인 대가는 처절하다. 삶의 허무감을 느끼고,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시들시들 죽어가게 된다. 생성 변화하는 천지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이치에 마음과 몸을 싣고 신나게 살아가야 한다.
맹자는 말했다. “하늘의 뜻을 따르면 흥하고 하늘의 이치를 어기면 망한다(順天者興 逆天者亡).”
두더지는 뭔가를 핥아먹고 있던 파리들을 만난다. 파리들은 두더지의 머리에 얹혀있는 똥의 냄새를 맡고는 범인을 가르쳐준다. “아, 이건 바로 개가 한 짓이야!” 범인은 바로 옆집 개 한스였다. 두더지는 뚱뚱이 한스의 집 위로 재빨리 기어 올라갔다.
두더지는 까만 곶감 씨 같은 똥을 한스의 머리에 떨어뜨렸다. 작은 두더지는 그제야 기분 좋게 웃으며 땅속으로 사라져갔다. 아이들은 싸울 때, 복수를 한다. 반드시 맞은 곳을 그만큼만 세게 때린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복수인가? 어른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도 묻지마 폭행, 묻지마 살인을 당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복수를 하다 사랑을 배웠다. 원수를 사랑하는 위대한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우리는 먼저 자신 마음속에 있는 복수의 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넘어서는 큰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섬세하게 알아차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다른 존재들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 최두석, <성에꽃> 부분
섬세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어디나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우리는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