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막 난 빈 정원에 꽃을 심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예쁜 꽃을 피우는 꽃씨를 찾았다. 첫눈에 앙증맞은 꽃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몽둥이같이 노란꽃들이 꽃대에 모여 붙어있는데 몽둥이 끝은 진붉은 동그라미가 있다. 그런데, 그 귀여운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치통꽃(toothache flower)’이란다. 왜? 하고, 자세히 보니 이 꽃은 예로부터 치통의 진통제로 사용했던 모양이다. 이가 아플 때 입에 물면 아픈 부분을 마비시켜서 여느 진통제보다 낫다는 설명이다.
드디어 우체통에 그것이 들어있다. 발신인의 주소가 모 씨회사로 적혀 있는 편지 봉투가 있는데 그 씨임이 분명했다. 봉투 안에는 접혀있는 쪽지가 들어 있고 그 쪽지를 펴니 작은 플라스틱 봉투가 테이프에 붙여져 있다. 그 플라스틱 봉투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보니 플라스틱 봉투 벽에 무슨 먼지나 흙 부스러기가 있는 것이 보인다. 좀 실망이 되었다. 혹 실수로 빈 봉투를 보낸 것은 아닐까? 노트를 펴니 “먼지 같이 보여도 먼지가 아닙니다. 조심해서 다루어 주세요.’ 하고 밑줄 친 문장이 눈에 띈다. 그 다음에는 그 씨를 심는 구체적인 방법이 적혀 있다.
사실 씨로 모종을 내어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 하는 일에 하필 이렇게 작은 씨여서 마음도 손도 떨린다. 심각하게 면장갑을 끼고 시작했다가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노트에 붙혀져 있는 작은 플라스틱 봉투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씨를 꺼내려 하는데 씨가 플라스틱 벽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봉투 입구를 조금 동그랗게 하여 공기를 넣어주고 살짝 흔들어 주니까 일부가 내 왼쪽 손바닥에 안전하게 내려와 앉았다. 다시 같은 방법으로 공기를 조금 더 넣어 준 후에 벽에 붙어있는 나머지도 안전하게 다 담을 수 있었다.
이제 해야 할 것은 이 녀석들을 하나씩 떼어서 묘판에 심어주는 일이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럽게 만져보니 모툴모툴 아주 미미하게 무언가 만져지긴 한다. 노트에 적힌 지시사항은 ‘심으려 하지 말고 흙위에 그냥 놓으라’고 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가능한 한 하나씩 조심스럽게 띠어서 듬성듬성 놓았다. 어떤 것은 흙덩이 속으로 들어갔는지 놓긴 놓았는데 어디로 갔는지 금세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10개의 씨를 뿌려놓고 부드러운 흙을 조금 그 위에 뿌려주었다. 가볍게 맨손으로 흙 위를 토닥거리며 ‘잘 자라거라’ 마음속으로 말해주니까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노란 몽둥이 꽃’ 벌써 내 마음속에는 ‘치통꽃’이 아닌 ‘몽둥이꽃’으로 자리매김해 버렸다.
생명이란 참으로 신비하다! 하찮은 먼지도 대지에 정착하면 움트고 자라서 몸체를 만들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니! 하긴, 나도, 신비하지 않은가. 어떻게 내가, 내가 의식하는 “나”라는 존재가 억겁의 시간 속에서 이 시간, 이 지구의 한 모퉁이에서 꽃씨를 심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단 말인가? 나도 먼지였지 않았던가? 별먼지, 별이 만들어 준 원소로 구성된 나의 몸, 그 몸에 담겨진 나의 생각들. 빅뱅이 터지면서 우주와 시간이 시작되면서 광대한 우주 공간에 흩뿌려졌던 먼지들, 억겁의 세월 동안 먼지들은 모여서 별이 되고, 별들은 모여서 은하들이 되고, 수많은 은하의 별들의 강 한 자락에 위치한 우리의 별, 태양. 태양 주변의 먼지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지구. 어느 날 지구에 선물같이 운석들이 쏟아져 우주의 선물, 물이라는 것을 가져다주어서, 지구의 바다를 만들어 내고 그 바다에서는 별이 만든 원소들로 이루어진 생명들이 탄생했고, 또다시 억겁의 세월이 지나, 나 같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동물이 되어 있게 되었다니! 그리고 그 생각하는 동물인 나는 우주의 근원과 지구의 근원, 자신의 근원이 궁금하고, 나는 어디서 왔고, 나는 누구인지를 알고 싶고, 앞으로 올 억겁의 시간 속의 나는 어떻게 될지, 등을 상상해 보는 이 생각 놀이는 얼마나 재미있는가? 나는 어느 별에서 다시 생명을 얻어 생각할 능력을 갖추게 될까? 나의 생각 놀이는 치통꽃 꽃씨로부터 시작하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간다.
우리는 먼지를 하찮게 여긴다. 공기 속에서 잘 보이지도 않고 우리의 호흡기관으로 들어갔다 나갔다 하긴 하지만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기록은 인류 역사의 여명, 3천 7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 최초의 언어 갑골문자에서부터 나타난다. 거북의 배딱지에 ‘매(霾, 흙비)라는 단어가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당나라(618-907)에 와서 ’남사‘라는 책에 “천우황사(天雨黃沙)라는 표현이 있는데 ‘하늘에서 내리는 노란 모래비’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 먼지는 흙비에서 노란 모래로 표현되었고 한국에서의 처음 기록으로 서기 174년 삼국사기에서 ‘우토(雨土)’로 ‘흙비’로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연무(연기 안개)라는 표현도 있었는데 이것은 연소가 미완성된 검댕을 가리키는 것으로 숙종 28년(1702년) 큰 산불이 난 후의 기록에 있다. “조금 저문 후에 연무의 기운이 갑자기 북서쪽에서 몰려오면서 천지가 어두워지더니 재가 마치 눈처럼 흩어져 내려 한 치(3센치미터) 남짓이나 쌓였는데 주워보니 모두 나무껍질이 타고 남은 것이었다”라고 되어 있다.
근세의 산업이 발달하면서 먼지가 일으키는 현상을 헤이즈(haze) 혹은 스모그(smog)라는 말을 쓰는데 헤이즈는 석탄 연소로 인한 현상을 말하고 스모그는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현상을 말한다. ‘챠이나 스모그’ 혹은 ‘베이징 스모그’는 중국의 공장들 위 석탄 연소와 자동차 배기가스가 인한 먼지로 인한 복합적인 공해현상이다.
이렇듯 먼지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많지만 과학용어로는 하나이다. ‘공기중에 떠다니는 입자성 물질’로 정의되는 파티큐레이트 매터(particulate matter)이다. 먼지를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겠다. 자연발생적 먼지와 인간의 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먼지. 자연발생적인 것은 흙비, 황사, 연무, 검댕이로 표현되는 것들로 입자들이 커서 공기 중에 많아야 한 5일 정도 머문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인위적인 화학 먼지는 입자가 대체로 미세하고 유해하며 공기와 같이 먼 지역까지 이동하며 공기 중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먼지가 공기 중에 머무는 시간은 먼지의 무게나 크기와 관련이 있다. 먼지의 크기를 표시할때 PM(particulate matter)으로 표시한다. PM은 마이크로미터(㎛)로 표기하는데 1 마이크미터는 1000분의 1미리미터이다. 우리 머리카락의 지름이 50-70마이크미터이고 해변의 고운 모래의 평균지름이 90마이크로미터이다. 황사는 3-10마이크미터이다. 10마이크미터 이하(10PM)를 미세먼지로 분류하고 2.5 마이크로미터 이하 (2.5PM)일 경우 초미세먼지로 분류한다. 이렇게 분류하는 이유는 먼지 입자 크기가 인체에 주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는 인체 속에 들어와 호흡기에 머물러서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지만 초미세먼지는 혈액으로 직접 침투되어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몸속의 다른 물질과 화학 결합하여 더 강한 유독성을 일으킬수도 있고, 그 자체의 독성 때문에 면역체계를 약화시켜 염증이나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장기간의 축척은 암을 유발해서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에서는 최근 1군발암물질로 등록을 했다.
자연현상에서 먼지는 우리에게 혜택을 준다. 황사(흙먼지)는 알카리성으로 산성토양에 내려 앉으면 토양을 중화시킨다. 기후학자 조천호 박사에 의하면 지구 전체로 보면 엔드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라 토양이 부서져 흙먼지가 생겨나면 이 작디작은 먼지가 바다와 육지의 생태계를 풍요롭게 하고 생명의 질서를 다시 탄생시킨다고 한다.
기후변화에서 먼지의 역할은 양면성이 있다. 조천호 박사는 그의 저서 ‘푸른 하늘 빨간 지구’에서 “먼지는 대기권 질량의 0.0000001-0.00001%를 차지하는데 그 종류에 따라 기후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발전소와 공장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황이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황산염의 먼지가 만들어지는데 이는 우주에서 오는 태양을 반사하여 빛의 차단 효과를 일으킨다. 실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온실가스는 증가했지만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 유럽, 일본이 급격하게 산업화하면서 황산염을 대량 발생시켜 온실가스의 온난화 효과를 상쇄시켰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무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먼지의 중요한 역할은 구름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먼지는 주변의 수분을 응집하여 구름을 만든다. 구름은 언제나 지구의 절반가량을 덮어서 햇빛을 반사하기에 지구를 식히는 역할을 해준다. 먼지가 없다면 구름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구름은 공기중의 수증기를 비나 눈으로 만들어 지구에 물을 공급한다. 비와 눈은 지구의 강과 바다로 흐르면서 모든 생명활동의 근원이 된다. 먼지는 생명활동의 근본이 되는 지구물순환시스템의 중요한 한 역할을 맡고 있다.
다시 꼬리를 무는 생각은 시애틀 추장의 시 같은 편지이다. 1854년 땅을 팔라고 강요하는 미국 정부의 피어스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총칼 앞에 땅을 팔아야만 하는 스쿼미시 부족의 시애틀 추장이 자신의 모국어로 보낸 편지라기 보다는 간절한 부탁이다. 그의 부탁이 완전히 무시되고 오히려 그가 염려했던 ‘사람의 냄새’로 진동하는 땅을 만들면서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더욱 마음이 아픈 편지이다.
“공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공기는 모든 목숨 있는 것들에게 정신을 나눠준다.
우리 할아버지에게 첫 숨을 쉬게 해 준 바람은
할아버지의 마지막 한숨을 거둬갔다.
바람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생명의 정신을 불어넣어 준다.
그러니
우리가 땅을 팔거든, 이 땅을 신선하게
세속에서 분리시켜 두어야 한다.
사람들이 찾아가서 꽂향기로 달콤해진 바람을
음미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라.”
나도 이 땅을 떠나면, 먼지로 돌아가 우주의 바람 속에서 어디로 흩날릴 지도. 이 '노란몽둥이꽃'이 이 땅에서 봄마다 나고 또 나서 향긋한 바람으로 불어주었으면 좋겠다. 꽃 향기로 달콤한 바람이 내 후손들의 콧속으로 들어가서 생명의 정신을 불어넣어 주면 '시애틀 추장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었으면 좋겠다‘하면서 먼지같이 작은 치통꽃씨가 담긴 보드라운 흙을 다시 한번 가볍게 토닥거려주었다.
[김은영]
숙명여자대학교 졸업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석사
오크라호마주립대학 박사과정
시납스인터내셔날 CEO
미국환경청 국가환경정책/기술 자문위원
Email: kimeuny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