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 가까워져 오면 각 도시는 퍼레이드와 불꽃놀이 준비에 열을 올린다. 독립기념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도시가 바로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이다. 239년 전 독립선언문이 낭독되고 자유의 종이 울려 미국 13개 주에 퍼진 독립운동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 종소리를 듣고 거리에 나와 독립선언문 낭독하는 소리를 경청했고, 열광했다고 역사가들은 전한다. 젊은 남자들은 자랑스럽게 독립군으로 자원입대했고 여성들은 각종 전쟁 용품 제작에 무료 봉사하며 한마음이 되었다.
지금도 미국 독립기념일이 되면 세계의 매스컴은 필라델피아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수도였던 이 도시의 역사를 돌아보며 기라성같은 독립투사 인물들을 재조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모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저녁때 델라웨어 강가에서 행해지는 불꽃놀이다. 밤하늘에 펼쳐지는 불꽃의 향연은 미국인들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해서 화려하고 시끄럽고 요란스럽다. 가장 미국적인 대중 잔치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인 또 하나의 축제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필라델피아에서 북서쪽으로 약 2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밸리 포지(Valley Forge)라는 국립공원이 있는데 이곳 제일 높은 언덕에 교회가 하나 우뚝 서 있다. 이 교회 앞 넓은 풀밭이 바로 그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다
7월 4일(독립기념일) 정오가 가까워지면 단정한 캐쥬얼 복장의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교회 앞 넓은 풀밭에 자리를 잡는다. 피크닉 보자기를 들고 와서는 각각의 음식 바구니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아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든다. 그 옆 그룹들에게 방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모두가 즐거운 가족 파티 같은 분위기를 즐긴다.
12시 정오가 되어오면 주위가 정숙해지며 어른들은 뛰노는 아이들을 불러 자리에 앉힌다. 이윽고 미국국가가 공원 전체로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어디서 나는 소릴까? 교회 첨탑 꼭대기가 진원지이다. 종 음악(Bell Music)인데 국가 연주를 시작으로 ‘독립기념 음악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鐘音樂은 독립기념일을 시작으로 여름 7, 8월 동안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30분에 정기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밸리 포지(Valley Forge)는 국립공원이라고는 하나 울창한 숲에 아름드리나무가 하늘을 향해 치솟거나, 기암괴석, 그림 같은 호수가 있는 그런 관광공원이 아니다. 야트막한 구릉이 꿈속처럼 펼쳐지고 그 위로 푸른 잔디가 덮여있어 눈이 시원한 평화스러운 지역이다. 저 멀리 울창한 숲이 병풍 같아 아늑함을 더한다.
푸른 잔디로 뒤덮인 언덕들에는 머리 가리마 같은 관광도로들이 우리를 여기저기 인도한다. 통나무집들이 비 온 뒤 버섯들처럼 옹기종기 서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곳은 옛 대포들이, 더 가면 독립군 장군들의 동상들이 우리를 맞는다. 이 유적들 하나하나가 저마다 역사를 품고 있어 귀있는 자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1776년 독립선언이 선포되자 영국정부는 독립군을 초전에 박살을 내려 정예 부대를 미 대륙에 파견했다. 세계 최강의 영국군에 비해 민간인 지원병으로 급조된 독립군은 훈련, 병참 등 군대로서의 외형조차 제대로 갖출 여유가 없었다. 죠지 워싱턴이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이런 군인들이 영국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바위에 달걀 던지기 격이었다.
노련한 전술, 세련된 진영에 화려한 복장을 갖춘 영국 정규군, 이에 비해 독립군은 말 그대로 민간복장의 까마귀떼였다. 애국심만으로 싸움에 이길 수는 없지 않은가. 싸우기만 하면 패하는 독립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식량과 무기의 공급마저 원활하지 못했다. 브랜디와인 전투에서는 결정적으로 크게 패했다.
승전한 영국군은 수도 필라델피아로 진군했고 독립군 의회(정부)는 미리 도주해 수도를 비워 주었다. 워싱턴 장군은 살아남은 군대를 이끌고 밸리 포지로 들어와 일단 군대를 점검했다. 전사자가 많았고 도망자 또한 적지 않았다. 부대별로 점호해 보니, 30명의 병졸밖에 없는 연대, 장교 한 사람뿐인 대대마저도 있었다. 군복이 없어 입영할 때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말 그대로의 사병(私兵)들이었다. 어떤 젊은이는 신고 있던 신발이 닳아서 군복을 뜯어 그 헝겊으로 발을 싸기도 했다.
당시에는 겨울이 오면 일단 휴전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상례였다. 독립군은 여기 밸리 포지에서 겨울을 나기로 했다. 독립군 의회(정부)는 요크시(市)로 피난을 가, 정착했다. 그들은 거기서 계속 워싱턴 장군에게 압력을 가했다. 그렇게 소극적으로 칩거해 있지만 말고 빨리 나가 전투해서 승전의 소식을 전하라고 재촉이었다. 마침내 워싱턴을 사령관으로 적극적으로 추천한 죤 아담스 마저도 그를 비판하기에 이르자 워싱턴 장군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했다.
“눈과 어둠으로 뒤 덮힌 황량한 산 중턱을 지키면서 눈을 덮고 자는 것보다는 편안한 실내에서 난로불을 쬐이며 잔소리하는 것이 쉬운 일이지요.”
이에 격분한 대륙회의는 연전연패의 고집쟁이 워싱턴 장군을 해임할 것을 심각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야심의 사나이 호래이쇼 게이츠 장군이 대안이었다. 그러나 싸움 중에는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는 전법에 따라 이 토의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수도를 점령한 영국군은 언제 밸리 포지로 진격해 올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다. 그러면 끝장이다.
퇴각할 여력조차도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0마일 밖의 영국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예 무시한 듯하다.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궤멸하리라고 예상, 봄까지 기다린 것인지도 몰랐다. 대륙회의는 워싱턴 장군에게 더 이상 군수품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제부터 무서운 적은 영국군이 아니고 동(冬)장군이다. 겨울이 깊어지자 매일 동사자가 나오고 밤이 지나면 손발에 어름 박힌 병사가 줄을 이었다.
마취제가 떨어져 힘센 장정들이 환자의 사지를 누르고 톱으로 동상 걸린 팔다리 절단 수술한다. 환자의 고통 소리는 쌩쌩부는 바람에 섞여 멀리멀리 공중에 날아가 버린다. 소독약이 없어 자르고 난 상처에 위스키를 부어 살균을 해야 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캄캄 어둠뿐이었고 빛은 보이지 않았다. 벽이 사면에서 가로막으면 하늘을 쳐다보라고 하던가. 신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워싱턴 장군의 마지막 기댈 곳은 하늘, 거기 계신 하나님밖에 없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그는 혼자 산등성이에 올라가서 기도했다.
“하나님, 이제 저는 끝입니다. 이 겨울, 더 이상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이런 기도가 며칠이고 계속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밤이었다. “진군하라!” “예?” 주위는 조용했다. 다시 기도로 물었지만 나무들만이 바람에 울고 있었다. 그는 잘못들은 환청이라고 생각하고 하산했다. 그다음 날 다시 산에 올라 기도를 시작했다. 또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진군하라!”, “어? 또 그 소리” 다시 하산했다. 셋째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또 같은 장소에서 기도하며 세 번째의 같은 응답을 받자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고 하산 즉시 전 부대
총동원령을 내렸다.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막 잠자리에 들던 군사들은 한밤중 나팔소리에 적군이 기습했나 놀란 가슴을 안고 뛰쳐나와 정렬했다. 군사들 앞에 선 워싱턴 장군은 진군 명령을 내렸다.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말 타고 앞장섰다. 델라웨어강(江) 건너 트렌튼시(市)에 주둔해 있는 영국군 부대를 향해 간다는 것은 측근 장성들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날이다. 펜실바니아와 뉴져지의 사이로 겨울 기압골이 통과하면서 북동풍이 싸락눈을 몰아 왔고 밤이 깊어가며 온도가 떨어져도 행진은 계속되었다. 춥고 배고픈 군사들은 묵묵히 선두를 따라 걷기만 했다. 불행중 다행, 바람이 군인들의 뒤에서 밀어주어서 행진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델라웨어 강변에 도착하고 보니 강은 덩어리 얼음으로 꽉 차 있었다.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 도강작전을 폈다. 그러나 바람과 빠른 물살에 밀려 셋 중 둘은 실패, 워싱턴 장군이 이끄는 부대만이 목숨을 건 사투 끝에 강 건너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지체하면 다 죽는다. 도강(渡江)에 성공한 1/3의 병력은 계속 진군했다.
한 편 트렌튼에는 영국 헤시안 장군 휘하 약 1,500명의 군인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독일에서 뽑아온 용병들이었다. 마침 이날 부대에 배가 한 척 도착했다. 본국에서 귀한 손님들이 ‘군인 위로사절단’으로 격려차 방문한 것이다. 이 겨울밤에 무엇을 해서 손님들을 대접할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묘안이 떠 오르지 않는다. 마침내 사령관은 당시 유행하던 포커 게임에 손님들을 초대하여 긴 밤을 지나고자 했다. 게임실에 들어가기 전 부관에게 오늘 밤은 절대로 게임을 중단하지 말도록 엄명을 내렸다. 눈보라치는 이 밤에 싸움이 벌어질 일은 없겠고 그 이외에 무슨 변고가 있겠는가.
깊은 밤, 한 민간인이 헐레벌떡 영국진영에 도착했다. 사령관에게 아주 급한 보고를 드려야 한다고 말하자 보초는 즉시 부관에게 인도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꼭 사령관께만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할 수 없이 부관은 게임방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 사령관 귀에 대고 누가 꼭 뵙겠다고 속삭였다. 사령관은 한 마디로, “나가!” 부관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돌아오자 그 사람은 절망적인 얼굴로 한참 생각하더니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한다. 무언가를 긁적여 써서는 봉투를 봉하고 부관에게 내밀며 사령관에게 꼭 전해드려야 한다고 다짐했다. 간절한 그 표정에 부관은 다시 게임방에 들어가 봉투를 상관에게 전하며 지금 꼭 읽으셔야 한다고 속삭였다.
마침 크게 돈을 잃고 있던 사령관은 “알았어” 하며 그 봉투를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침에 한 잠자고 나서 보아야지. 그 밤, 발소리 죽이며 영국군 진영에 도착한 독립군은 외곽 검문소에 위병이 한 명도 없는 것을 발견했다. 영국군은 방심하고 있다. 독립군의 기습작전은 완전 성공이었다. 그날 밤 영국군 1,500명 중 22명이 전사했고 83명이 부상, 손들고 항복한 숫자가 896명이나 되었다. 나머지는 도주했다. 아군은 전사자 하나 없이 부상 6명뿐이다.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이제부터 배 불리 먹을 수 있고 따뜻한 신발과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포로 부상병들을 아군처럼 치료해 주고 최선의 대우를 하도록 워싱턴 장군은 명을 내렸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트렌튼 전투'이다. 독립 전쟁 전체로 볼 때 굉장한 전과라고는 볼 수 없지만 이제까지 연전연패의 독립군에게는 심기일전의 계기가 되었다. 대륙회의에서도 워싱턴 장군에 대한 위상이 복귀되었고 국민들의 신망 또한 회복되었다. 그러나 워싱턴 장군을 가장 기쁘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유럽의 군인훈련 전문가가 제 발로 찾아와 이 오합지졸들을 훈련시켜 군대다운 군대로 만들어 주겠다고 제의한 것이다. 유럽 프로이센 출신 역전의 장군 슈토이벤 남작이 바로 그 사람이다.
세계에서 가장 초췌한 모습으로 밸리 포지에 기어들어 온 독립군은 슈토이벤 남작의 헌신적 노력으로 정예군으로 매일매일 변모해갔다. 1778년 6월 보무도 당당하게 밸리 포지를 떠날 때는 아무도 그 옛날의 남루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후 사라토가 전투에서 대승하자, 머뭇머뭇거리며 전황을 살피던 프랑스, 스페인에 확신을 주어 참전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저울추는 이제 확실히 미국과 연합군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필라델피아가 미국 탄생의 모태였다면 밸리 포지는 미국 군대가 태어난 장소라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1953년 미국 성공회는 워싱턴 장군이 간절히 기도하던 그 장소에 교회당을 헌당했다. 이름하여 ‘워싱턴 기념 교회’(Washington Memorial Chapel)다.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간 성곽의 꼭대기에는 50개의 종(鐘)이 달려있는데 각 종이 음계(音階)에 맞추어 제작, 곡을 연주하도록 되어있다. 각개의 종은 미국 50개 주에서 한 개씩 헌납했다고 한다.
교회를 한 바퀴 돌아본다. 한 여인이 등잔 하나를 공손히 높이 들어 하나님께 바치는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동상의 제목은 “한 나라의 탄생 (The birth of a Nation)”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워싱턴 장군의 기도하는 모습의 동상이 있어야 할 그곳에 연약한 여인이 금방 꺼질 것 같은 등장을 높이 들어 바치는 상을 올려놓은 그 깊은 상징적 의도가 느껴진다. (워싱턴 장군이 기도하는 상은 교회 내 강대상 앞에 모셔져 있다.)
[정홍택]
서울대학교 졸업
KOCHAM(Korea Chamber of Commerce in U.S.A.) 회장
MoreBank 초대 이사장
Philadelphia 한인문인협회 창설 및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