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밥 짓기와 글짓기

신연강

사진=신연강


밥 짓기와 글짓기는 여러 면에서 닮았다. 두 가지 모두 시간과 관심과 체중이 실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밥 짓기와 글짓기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삶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푹푹 찌는 여름, 생각지도 않게 장작불로 지은 밥을 먹게 되었다. 한 동호회의 야외 행사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대면 제한, 그리고 개인 방역 수칙 준수 등을 이행해야 했던 엄중한 시기를 지나 지인들을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게다가 장작불로 요리한 매운탕과 밥을 먹게 되었으니, 생각지 않은 호사를 누린 셈이다.

 

가마솥에 담겨 오랜 시간 뜸 들인 밥을 먹으니, 밥에 관한 내 형편없는 식감과 뒤늦은 관심이 교차했다. 사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더운밥, 데운 밥을 잘 구분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먹거리에 대한 감각은 거의 빵점이나 다름없었다. 고교 시절은 대입 준비로 정신없었다 치더라도,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대학생 시절에도 새로 지어낸 밥과 데운 밥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정도면 모자라도 뭔가 모자란다고 할 것이다. 나 자신이 그런 식감을 인지하면서도 개선할 수 없었던 점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의아할 뿐이다.

 

어쨌거나 밥이란 삶을 지탱해주는 기본적 요소로서, 영육으로 이루어진 인간존재의 반을 책임지는 자양분 아닌가. 모임에 간 날, 장작불 근처만 가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는데, 부뚜막에 달라붙어 밥 짓느라 고생한 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더욱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거나 딴생각을 하며 긴장을 늦춘다면 애써 지은 밥이 시커멓게 탈 판이다


그러니 밥은 시간을 먹으며, 조리하는 사람의 땀과 정성으로 맛을 내는 완성품임이 틀림없다. 내로라하는 맛집에서 지어 내놓는 보슬보슬한 밥을 수저로 뜰 때마다, 그 식당의 주방장이나 조리사의 체중이 실려있음을 보게 된다. 한 사람의 일생의 공력, 즉 밥을 지어온 오랜 시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느끼게 된다.

 

완성체에 체중이 실린다는 점에서 글짓기도 마찬가지다. 밥 짓기에 시간과 경험과 비결이 담겨있듯이, 글짓기를 통해 글 쓰는 사람의 총체를 보게 된다. 필자의 사고력, 창의성, 논리력 등을 포괄한 필력을 보게 되는 것이다. 글 또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밥 짓기와 다르지 않다. 비록 어떤 글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부터 순식간에 글로 형상화하지만, 몇 날 며칠 보고 또 보면 밥을 뜸 들이듯 풍미 있는 글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니 시간과 관심을 먹고 자란다는 점에서 밥과 글은 형제처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밥을 많이 먹고,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여름 장작불이 푸슬푸슬 피워올리는 연기가 글에 배어든다. 무쇠솥을 시뻘겋게 달구어 생쌀을 푹푹 찌어낸 열기가 생경한 내 생각을 온전히 익혀서 글로 형상화한다. 침샘을 자극하는 구수한 냄새를 조금 더 참아내는 밥 뜸의 시간이 글 솥 위에 멈칫거린다. 경지에 오른 조리장이 지어낸 보슬보슬한 밥, 그런 밥 같은 글을 언제쯤 지어낼 수 있을까.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

신연강 imilton@naver.com

 


작성 2022.07.08 10:47 수정 2022.07.0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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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