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장애(障碍)와 재주

하진형

사진=하진형


30대 중반 한창의 나이에 집단민원 관련 업무를 맡아 나름 사명감으로 열심히 뛰어다니던 시절, 작은 규모의 서민아파트 건축이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공사가 중지되는 일이 있었다. 아쉽게도 공사를 반대하는 쪽의 주장은 기초 생활보호를 받는 장애인들이 살게 될 작은 아파트가 지어지면 자신들이 사는 아파트의 가격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당시 평수가 큰 00아파트는 나름 돈이 많은 이들이 살고 있었다.

 

지식이 얕고 부족한 나의 생각에도 다 같은 사람인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공사 중지상태가 길어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담당자인 나에게도 질책이 이어지던 어느 날, 양측의 대화 중에 고성이 오갔고 피해 주민 대표는 담당 공무원도 한마디 하라는 눈빛을 보내었다. 나는 특별히 할 말은 없지만 이번 일을 보면서 나에게도 보이지 않는 장애가 많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선지 며칠이 지나자 합의가 되어 공사는 재개되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소위 말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국민 안전 강사가 되어 요양원 어르신, 복지관의 다문화 가족과 장애인들과 눈을 맞추고 얘기를 나눈다. ‘서툰 강사이지만 이순신 장군 공부를 하면서 스터디 때에 익힌 발표 실력(?)으로 근근이 버텨 나가고 있다. 그렇게 버텨 나가게 해주는 원동력은 같이 웃고 안타까워해 주시는 그분들 덕분이다. 같이하는 즐거움은 크나큰 기쁨이다.

 

얼마 전엔 00복지관에 장애인 성폭력 예방 교육을 갔었는데 마치고 오면서 교육을 한 강사가 그들로부터 더욱 많이 배우고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보다 그 집중도가 훨씬 높았다는 사실이다. ‘강의안을 준비하여 복지관에 도착하자 담당자가 중증 장애인이어서 주의력이 조금 부족하니 쉽게 풀어서 강의해 주십사 하는 부탁이 있었다. 어차피 전문용어를 써가며 어렵게 할 것도 아니라서 눈을 맞추고 그들과 신나게 토론(?)했다.

 

장애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집중도와 참여도는 그 어떤 대상보다 높았고, 발음이 조금 어눌한 것 빼고는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맞아요, 보호자에게 물어보고 해야 해요로 호응하며 박수로 반응했다. 맑은 영혼들과의 신나는 소통의 시간을 경험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고마웠다. 적어도 그 시간 우리들은 원팀이었다. 비장애인인 나에게 반성의 시간을 주기도 했다. 강의를 마칠 때 동석했던 직원이 지금껏 이런 집중은 없었다고 말해 주었다. 오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왔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열정이 있었고 나의 내면적(內面的) 부족을 채워 주었다. 그들은 외형적으로 나와 조금 다를 뿐이었고 떠나올 때의 진심어린 환송에는 맑은 영혼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그들과의 소통은 어설픈 동정이 아닌 공감이었다. 비가 내릴 때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닌 비를 같이 맞아주는 그것이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극히 일부인 장애와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장애가 있을 뿐이었다. 장애는 후천적 장애가 75퍼센트를 넘는다고 한다. 우리도 장애에게서 멀지 않다는 것이다.

 

장애인이면서도 미국의 유일한 4선 대통령인 루즈벨트가 있었던 것은 장애를 초월한 아내의 남편에 대한 격려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고대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국적과 출신성분을 가리지 않는 인물의 등용이 큰 역할을 하였으며 세종대왕도 장영실 같은 관기(官妓) 자식의 등용으로 불후의 과학자를 탄생시켰다. 곧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것이 아닌 본질의 문제인 것이다.

 

명심보감에 하늘은 아무런 행운도 없는 자를 태어나게 하지 않으며, 땅은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를 길러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그들의 강점을 알아내지 못하고 조금 불편한 외형을 보고 섣불리 판단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시련은 있다. 그들은 지금 시련을 극복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울 찬바람을 맞은 난()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 시련은 행운이고 삶을 더욱 깊게 해준다.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이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도 그렇고 최근에 베스트셀러인 해리포터 시리즈를 펴낸 영국의 J.K.롤링을 보아도 그렇다.

 

불편한 장애로 어눌하게 말하는 그들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강의자료를 챙겨 복도로 나올 때 인사를 나누다가 젖은 바닥을 맨발로 걷고 있는 장애인을 보고 반사적으로 뛰어가 안아주던 비장애인 팀장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다. 강의하러 가는 장소가 거리는 조금 멀었지만 우리의 이웃 덕분에 오늘도 큰 것을 얻었다. 이런 행운에 거리가 좀 먼 것이 대수인가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07.15 11:18 수정 2022.07.1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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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