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들어서서 키오스크 앞으로 가 음식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면 서빙 로봇이 음식을 가져다주는 오늘날. 분명히 사람이 차린 식당에 들어가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는데도 당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없는 현실이다. 갓 만든 음식이 내 눈앞에 놓여있지만, 눈 한 번 깜빡이면 다시 눈앞에는 온기를 잃어버린 뜨거운 음식만이 남아있다.
오늘날 눈부신 기술의 발전은 식당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십중팔구 식당 입구에는 종업원 대신에 키오스크(무인단말기)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식당은 하나둘씩 사람 대신에 서빙 로봇을 들여놓기 시작한다. 업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계들이다. 기계가 주문을 받고 결제까지 하니 주문을 잘못 받거나 계산이 잘못될 일은 없다. 그릇에 담긴 뜨거운 음식을 기계가 손님이 계신 테이블까지 직접 옮겨주니 음식을 쏟거나 다칠 일도 없다. 무엇보다도 요즘 같은 경기에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으니 최고다.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식당의 편리성뿐만 아니라 정확성과 안전, 가성비까지 챙겨주었다. 그런데 나날이 늘어나는 키오스크와 서빙 로봇을 보면 왜 마음 한구석이 공허해질까.
본래 식당은 서비스업이다. ‘생활의 편의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무형의 노무를 제공하는 산업’이라는 것이다. 물론 음식은 엄연히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그 음식이 한 사람에게까지 전달되는 일련의 과정은 서비스다. 어떤 음식을 먹을지 주문받는 것부터 완성된 음식을 전달하는 것, 식사 중간에 추가로 필요한 게 있는지 묻고 챙겨주는 것, 그리고 식사가 끝난 후 계산하는 것까지. 형태가 있는 일은 아니지만, 식당에서 맛 못지않게 정말 중요한 요소들이다. 멀리 갈 것 없이 2010년대만 되돌아봐도 키오스크와 서빙 로봇이 없는 식당이 대부분이었다.
사람이 주문을 받고, 사람이 음식을 가져다주며, 사람이 계산하는 것이 지극히 보통 식당의 풍경이었다. 그때는 음식의 맛도 맛이지만 전반적인 식사 과정에서 제공되는 ‘사람의 서비스’가 어떤가도 매우 중요했다. 제아무리 맛있어도 주문이나 결제 실수가 있으면 다시 안 가게 되고, 태도가 불친절하면 혀끝에 닿는 맛보다 머리끝까지 뻗는 열불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런 아쉬운 서비스를 돌이켜보면 오히려 지금의 키오스크와 서빙 로봇이 좋긴 하다. 적어도 기계로부터 아쉬운 서비스를 받을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요즘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서빙 로봇이 가져다준 음식에서는 왜 온기를 느낄 수 없고 포만감을 느낄 수 없을까. 우선, 키오스크는 철저히 입력된 정보 값으로만 작동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가령, 토마토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이 피자가 너무 먹고 싶어서 피자가게에 갔는데 오직 키오스크로만 주문을 받는 가게라면 음식을 섣불리 고를 수가 없다.
물론 요즘 키오스크는 음식 이미지를 눌러보면 알레르기 성분표시가 나오는 곳도 있지만, 종업원이 있었다면 “제가 토마토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런데, 혹시 토마토 안 들어가는 피자가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면 그만이다. 그런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없는 키오스크 앞에서는 하염없이 메뉴 하나하나 눌러보며 성분표시를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다.
키오스크의 편리성을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손님의 편리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종업원과 대화하며 음식을 주문하고 결제하면 손님은 음식에 대한 세부적인 요구를 직접 할 수도 있고 현금, 카드, 기프티콘, 수단이 무엇이라도 종업원과 즉각 소통하며 결제할 수 있다. 물론 키오스크로도 음식에 대한 세부사항을 입력하며 주문할 수 있다. 문제는 ‘키오스크로 입력할 수 없는 정보’는 주방에까지 전달할 수 없다. 만약 어떤 어르신이 뚝배기에 담겨나오는 국물 음식을 주문하려는데 너무 뜨거운 음식은 먹을 수 없어서 조금만 덜 뜨겁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 부탁하려고 해도 키오스크에 ‘음식 뜨겁기 조절’이 없다면 무조건 펄펄 끓는 음식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그 음식은 아무리 금방 나온 뜨거운 음식이라 한들 먹는 사람을 위한 온기는 차갑게 식어버린 음식이 된다.
오늘날에도 키오스크, 서빙 로봇을 들이지 않고 전부 사람들이 일하는 식당이 있다. 손님이 붐빌 때는 주문을 헷갈려서 다시 한번 묻기도 하고, 심지어는 주문을 받아놓고도 깜빡해서 음식이 제때 안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아쉬운 서비스를 몇 번 경험하고도 그 ‘사람 냄새’가 뭐라고 종업원이 일하는 식당을 찾아다닐까. 사실 그 만족감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다. “어서 오세요!”, “우리 식당은 이 음식이 잘 나가요.”,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이 음식은 저 밑반찬이랑 같이 드시면 맛있어요,”,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오스크와 서빙 로봇 따위는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사람의 온기 담긴 말과 미소. 아쉬운 서비스를 받을 때가 있음에도 종업원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식당을 더 찾게 된 이유는 이따금 인상에 남을만한 서비스를 받을 수가 있어서다. 비록 음식이 엄청나게 맛있지 않아도 종업원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으며 가게를 나서면 배도 부르고 더불어 마음도 부르게 된다.
얼마 전, 해야 할 일이 남아 야근하고 밤 8시가 다 될 무렵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읍내에 있는 시장 순댓국밥집에 터덜터덜 걸어갔다. 식당 문 앞에는 9시까지 영업한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막상 자리를 잡고 앉으려니 일하시는 할머님이 요즘은 8시에 마감을 한단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가게를 나서려는데 밖에 계시던 나이 지긋한 사장님께서 넌지시 물었다.
“뭐 먹고 가려고? 국밥에 막걸리? 아직 다른 손님들도 먹고 있으니까 내가 빨리 차려줄게, 삼촌도 후딱 먹고 가.”
원래였다면 이미 마감하고 뒷정리를 할 시간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작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반 주전자만 시킨 청년의 주문을 흔쾌히 받아주셨다. 얼마 안 지나 입천장까지 델 정도로 뜨거운 순대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 반 주전자가 내 앞에 놓였다. 그때 나 홀로 벽을 친구삼아 후후 불며 한술 뜨던 순대국밥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음식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고, 한여름에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밤이었다. 만약 그때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고 서빙 로봇이 음식을 가져다주는 번화가의 식당에 갔다면 어땠을까. 키오스크는 말없이 ‘영업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라는 문구 하나만 화면에 덩그러니 띄워놓고 나를 뒷걸음질 치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식당 곳곳에 자리 잡은 키오스크와 서빙 로봇을 마냥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며 온정을 나누던 종업원의 자리에 말 한마디 없이 매정한 기계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전국 곳곳에 즐비한 프랜차이즈 매장 안,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서빙 로봇이 가져다준 ‘온기를 잃어버린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내 눈앞에 있는 음식 한 접시는 정말 맛있고 내 배를 채울 수 있을지언정 굶주린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조승우]
군인
제35회 한밭전국백일장 고등부 산문 금상
제24회 대덕백일장 운문 은상
제3회 코스미안상 은상
이메일 aaaa254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