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중월(如水中月), 달은 물속을 밝게 비치고 있다. 그런데 달이 수면을 뚫고 들어간 흔적이 없다. 또한, 여공곡향(如空谷響), 달마산에 올라 “야~~~호” 하고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그렇다고 그 메아리가 소리 지른 사람을 의식해서 대꾸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달마산의 골짜기 물은 굽은 곳은 굽은 대로 평탄한 곳은 그저 말없이 쉬어가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곳 진리의 산 달마의 도솔암에 와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도솔암 암자 앞에 서 있는 ‘나’라고 하는 일정한 像이 없다는 것을 깨우쳐 보자. 그냥 이대로 사는 지금 나의 환경과 생활이 禪의 세계인 것이다. 저 건너 완도, 진도, 해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식혀주지만 바람은 모양이 없지 않은가 모양이 없으니 붙잡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바람’ 자체는 바람으로 존재하지 않는가. 모든 것이 ‘공(空)’임을 깨우치면서 달마산에서 하산하는 기분, 그 기분 또한 째지지 않은가?.
도솔은 깨달음의 경지에 든 부처님이나 보살이 사는 세계이다. 번뇌를 잊고 사는, 생사를 초월한 곳이 바로 도솔천이다. 도솔암은 많은 곳에 있다. 이곳 해남 땅끝에 위치한 미황사의 도솔암은 작은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멋진 기암괴석들의 바위너설이 펼쳐져 있고 정상에 서서 앞을 보면 해남이고 돌아보면 완도이고 돌려 보면 진도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이렇게 좋은 경치와 산새 좋은 곳을 배경 삼아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가 도솔암을 지었다. 그리고 수행 정진하던 곳이다. 옛적부터 적멸을 이루지 못한 백성들이 깊은 산속이나 하늘과 맞닿은 곳에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아마도 도솔암을 세웠을 것이다. 물론 이곳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기암괴석의 바위너설이 펼쳐진 달마산 정상은 구름이 낄 때면 구름 속에 떠다니는 느낌이 드는데 선경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은가. 그렇듯 구름 위를 걷고 떠다니는 느낌 또한 내가 그렇게 마음먹기 때문이 아닌가.
바위 틈새에 쌓아 올린 석축으로 인해 평평한 지면이 된 그곳에 자리한 곳이 바로 도솔암이다. 마치 요새와도 같다. 그리고 암자 아래에는 아무리 가뭄 들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 바로 용담이라는 옹달샘이다. 이러한 곳에서 미황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도를 닦고 저 멀리 눈에 들어오는 진도와 완도, 그리고 해남의 풍경을 눈에 담았을 것이다.
‘달마산 도솔암’ 사실 많은 암자를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이곳 ‘도솔암’은 유난히 기억에 남아있다. 몇 번을 다녀온 이유도 있고, 또한, 3년 전인가? 여름휴가 때 그곳을 찾아갔는데 우연히 모 방송국에서 이곳 도솔암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암자 경내에 있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인터뷰 요청을 해 온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왔었고 또한 일천하나마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닌 철학적 측면에서의 나름 겉핥기를 했기에 10여 분의 인터뷰를 했다. - 티브이에 나오는 시간은 단 몇 초였지만 -
달마산 도솔암 가는 길은 이곳저곳이 있지만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코스는 산 정상까지 차로 가서 그곳에 주차하고 산을 가로질러 약 20분 걸어가면 그 유명한 암자 ‘도솔암’에 도착한다. 그 오솔길이 참 정겹고 순박한 시골 인심처럼 포근하고 아늑하다. 구름이라도 끼는 날을 만나게 되면 한운야학(閑雲野鶴)하는 학처럼 아무런 구속 없이 유유자적하며 선경의 길을 아무런 구속 없이 걷는 느낌이 든다. 걷는 것이 아니라 걷는 것 자체를 잊고, 또한, 의식할 수도 없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바쁘고, 지친 일상을 탈출해 보자. 누구든 살아가면서 숱한 고난과 역경을 겪고 맞이하며 살아가지만, 욕망하는 것을 휘어잡으려고 하고 명예를 낚아채려고 하지 말고. 이곳 ‘도솔암’에 한번 올라보자. 그래서 ‘제법무아(諸法無我)’, 달마산 도솔암에 서 있는, 변치 않는 ’나‘가 없다는 깨우침 한톨 가슴에 담아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지금의 나는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님을 느껴보자.
시간 나는 대로 책을 보고 이곳저곳 답사도 한다, 꽤 오래전 일이다. 어느 날 책을 읽었다. 가끔 경험한 일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하!’ 체험을 몇 번이나 했다. 고형곤 교수의 <선의 세계>)이다. 깊숙이 꽂혀 있는 책을 다시금 꺼내 보고 있다. 그렇다. 마음에 와닿고 감동을 주는 책을 읽다가 어느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무릎을 손으로 한 번 치고 나서 곧이어 그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아~하!’ 하는 습관이 있다. 그분의 緖論에 나온 마지막 부분을 옮기며 펜을 접는다.
“ 옛날 괴테가 임종을 앞두고 “카텐을 걷어치워라, 저 하늘 좀 보자!” 했고, 칸트는 청해온 포도주 한 방울을 목에 적신 후 “Es ist gut! 라고 최후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Es ist gut”을 이젠 그만 먹겠다는 말로 해석하는 것은 푸주깐의 뚱뚱보 상인의 문법 이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아! 인생이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가 그가 최후의 숨을 거둘 때 마지막 남긴 절규였다.”
달마산 도솔암/홍영수
도솔암에 와서는
묵언의 수행자가 아니면
한 걸음도 나아 갈 수 없다.
암자를 둘러싼 바위는 말이 없다.
말이 없으니
고요가 귀를 씻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바위 틈새를 메운 돌멩이에 귀 기울여본다
울력했던 보살들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
한 칸의 절간, 스님의 염불 소리
처마 끝 풍경風磬이 주워 모아 소리 꽃을 피운다.
처마와 닿을 듯한 늠연한 고목 한 그루
낡삭은 절집을 안고
소리 없이 툭 던지는 이파리 하나
의상대사의 화두가 되어
불전 앞에 털썩 주저앉는다.
말 없는 달마산의 바위너설에서
오묘한 진리 한 자락 휘감지 못했지만
암자를 에워싼 바위 결에 흐르는
노승의 목탁 소리에
몽매한 귀가 번쩍 뜨이며
맥맥한 속내를 확 트이게 한다.
침묵이 숨죽이며 침묵 하는 도솔암
미망의 중생에게 내리친 무언의 죽비 소리에
죄업 한 알 한 알 꺼내 놓고
보리심으로 도솔천을 그려본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문학작품 공모전 금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
이메일 jisra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