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3년 차, 이제 정말 시작이다 (2)
편집 3년 차의 사표
그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난 3년 6개월 만에 첫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내 자신에 대한 점검이나 미래에 대한 확실한 계획을 세우지 않은 상태였다. 얼마나 무모하면서 용감무쌍했는지. 지금은 그 3년 6개월이란 시간이 내 출판 인생의 본격적인 시작을 위한 예열 기간이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시간은 닥치는 대로 일을 배우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었지, 내가 무언가를 잘 해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땐 뭔가 있어 보이는 책을 만들고 싶은 욕구와 3년 차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난 그간 쌓고 인정받은 실력으로 내가 원하는 곳 어디에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했고,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은 문제없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표를 내는 순간까지 자신만만했던 나는 사표를 냄과 동시에 열정과 패기만 가득한 신입의 딱지를 떼어낸 것에 대해 자축했다. 하지만 누구나 예상하듯, 현실은 냉정했다. 신입 딱지를 떼어낸 대신 일로만 평가받아야 하는 ‘3년 차’ 딱지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면접을 보는 곳마다 나의 열정과 패기보다는 3년 동안 내가 펴낸 책과 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평가에 비중을 두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나를 증명하는 것들만 나의 실력으로 인정되었다.
난 결국 분야를 바꾸지 못하고 다시 비슷한 책을 만드는 큰 출판사의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곳에서 다시 3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 준비를 한 뒤에야 비로소 내가 만들고 싶었던 단행본 출판사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편집 3년 차는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니라 출발점에 선 시점이란 사실을.
자료제공 : 투데이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