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줄탁동시(啐琢同時)

하진형

사진=하진형


줄탁동시(啐琢同時)는 참으로 아름답고 깊은 말이다. 병아리가 알에서 태어나기 위해서는 때를 맞추어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는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일이 순조롭게 완성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이라는 가치는 안팎이 적절히 어우러져 고유의 귀한 모습으로 탄생한다. 탄생은 곧 창조이기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루려면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힘을 모으는 것이 훨씬 낫다. 그것이 줄탁동시다. 그런데 줄탁동시가 동물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식물도 줄탁동시를 한다. 감나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것인데 제대로 된 상품을 길러내기 위하여 거름도 주고 감나무 꽃도 솎아내어 개수를 조절하기도 하지만 나무 스스로도 조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지에 많이 열리면 감이 커가면서 무게가 늘어나고 그것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지가 부러져 내리기도 하는데, 감이 많이 달리면 가지가 부러지지 않기 위해 열매가 크게 자라지 않는다. 참으로 기특하고 신비롭다. 그러다가 사람이 받침대를 받쳐주면 열매를 키우기도 한다. 스스로 조절하며 조심조심 커가는 것이다. 사람과 식물의 줄탁동시다.

 

그런가 하면 호박넝쿨도 줄탁동시를 한다. 제초작업을 하면서 줄기가 다치지 않게 한 곳으로 치워 놓으면 어느 순간 작은 알맹이를 떨구고 일정 시간이 자난 후에 더욱 큰 호박을 잉태시켜 키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세상 모든 것들은 자연에 기대어 커가면서 보이지 않는 세상의 섭리에 순응하며 생을 보낸다. 결국은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이 다 있는 것을 사람들만 모른다. 아니 나만 제대로 모른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삶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줄탁동시다. 사회적 동물인 까닭에 혼자 독불장군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잘 나서 자신 혼자도 잘 살 수 있다고 큰소리치지만 그야말로 택도 없는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서로 밀고 당겨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부르던 노래가 생각난다.

 

식물들의 줄탁동시를 보면서 나는 호박구덩이를 판다. 널찍하고 깊게 파서 소금기 없는 음식쓰레기며 상한 과일 등을 묻고 흙으로 덮어주기를 반복하며 호박 구덩이를 늘린다. 그리고 내년 봄에 호박씨를 뿌릴 것이다. 산 아래 작은 집의 줄탁동시다.

예쁘게 피어난 꽃을 보거나, 아름다운 새소리를 듣거나 좋은 일이 생길 때에는 이웃들과 나누고 싶고 같이하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있으려니 맑고 청아하여 신비스럽기 까지 한 새소리가 하늘로 퍼져 나간다. 새소리에 색깔이 있다면 가을을 기다리는 노란 구절초의 색깔 일수도 있고 봄을 기다리는 보라색 제비꽃을 닮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식물의 줄탁동시를 보면서 그것이 동물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한 나는 얼마나 무지했던가? 뒤늦게라도 깨닫고 먼저 손을 내미니 화낼 일도 없도 상대가 고맙다. 그러니 세상만사가 편하다. 그렇다. 나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세상천지가 매 순간 줄탁동시를 하며 흘러가고 있다. 동물과 식물은 물론 무생물과도 한다. 아무리 거대하고 튼튼한 성곽일지라도 큰 바위덩어리로만 지어진 것은 없다. 틈틈이 작은 돌이 받쳐 주어여 튼튼하고 오래간다. 그것이 곧 자연의 이치다.

 

나의 줄탁동시 몫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상대에게 기대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지하의 어머니에게 단 한 가지라도 줄탁동시를 했을까. 선산(先山)을 지키는 키 작은 굽은 소나무를 생각한다. 삶의 여정에서 누구나 큰 고개 작은 고개를 넘는데 그 고비마다 나도 모르는 이웃들의 도움이 얼마나 많았고, 나는 또 그 많은 고마움을 무지하게 지나쳤을까.

 

 


[하진형]

수필가

칼럼니스트

교육부, 행정안전부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3회 코스미안상 금상

이메일 bluepol77@naver.com


작성 2022.09.02 12:11 수정 2022.09.0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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