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군계일학(群鷄一鶴)

고석근

 

세상 모두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아보는 자체가 추함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 노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거리를 우산을 쓰고 걷는다. 강의 가는 길, 평소에 자전거를 타고 오가던 익숙한 길을 걸어가면,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듯하다. 독일에서 미술 공부를 하는 큰 아이가 베니스 비엔날레에 갔다고 문자가 왔다. 지금 큰 아이는 베니스의 거리를 걷고 있을까?

 

큰 아이는 다섯 살 때 그림으로 상을 받았다. 수백 명의 유아들이 참가하는 미술 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시상식 날 큰 아이는 너무나 당당한 표정이었다. 세상을 다 얻은 얼굴이었다. 큰 트로피와 부상을 듬뿍 받았다.

 

심사위원 한 분이 큰 아이 그림에 대해 심사평을 했다. ‘다섯 살 아이가 아이들의 움직이는 모습을 그렸다는 게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다. 그날 이후 큰 아이는 그림을 그려 종종 상을 받았다. 큰 아이는 앞으로 만화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러다 미대를 나와 독일로 유학을 가면서 설치 미술에 관심을 갖는 듯했다. 지도 교수가 설치미술 작가인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고 했다. 큰 아이는 지금 베니스의 거리를 걸으며 황금사자상을 받는 꿈을 꿀까? 예전에는 뛰어난 인간이 되기가 쉬웠다.

작은 마을에서 조금만 뭐하나 잘하면 신동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화 시대, 지구촌 시대다. 뛰어난 인간이 되려면, 지구라는 커다란 마을에서 뛰어나야 하는 시대다. 한 국가에서 뛰어나서는 세계에서 뛰어난 인물에게 쉽게 묻히고 만다.

 

군계일학, 닭의 무리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이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 매우 뛰어난 한 사람을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 사회 속에서 존재감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사회가 세계만큼 커진 세상에서 몇 사람이나 존재감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골테라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세 살까지 살았던 십여 가구의 작은 마을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자주 내게 말씀하셨다. “너 참 똑똑했어. 항상 나이 더 많은 아이들하고 어울려 놀았어.”

 

내가 어른이 되어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할 때 겁을 먹지 않은 건, 그때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어릴 적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는 도전 의식이 강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큰 도시에서 자랐다면?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노자가 말한 소국과민(小國寡民), 나라가 작고 인구가 적은 세상을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사회라고 생각한다. 노자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가까운 이웃마을과도 교류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브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고 노래했다. 세계화 시대에서는 이런 맑디맑은 눈을 잃어버릴 것이다. 앙코르와트를 본 사람이 다보탑, 석가탑에서 신묘함을 볼 수 있을까?

 

어릴 적 시골 마을에서 자라며, 마을 앞의 언덕에만 가도 경외감을 느꼈다. 도도히 흐르는 시냇물은 나를 압도했다. 이제 웬만한 것을 봐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노자는 말했다.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을 잃게 한다.”

 

삼라만상 다 아름다움의 광휘를 내뿜는데, 어떤 특정한 것만 아름답다고 하니, 다른 것들은 추하게 되어 버린다. 우리 주변엔 추한 것들뿐이다. 사람도 못난 사람들뿐이다. 사람이 적게 사는 작은 나라에서는 다들 아름답고 다들 잘났을 텐데.

 

인간 세상에 군계일학이 왜 필요한가! 왜 한 사람을 학으로 숭배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닭으로 만들어버리는가?

 

보름 장날 막버스

차창 밖 꽂히는 기러기떼,

기러기뗄 보아라

아 어느 강마을

잔광(殘光) 부신 그 곳에

떨어지는가.

 

- 박용래, <막버스> 부분

 

 

어릴 적 흔히 보던, ‘막버스’ ‘차창 밖 꽂히는 기러기떼’ ‘잔광(殘光) 부신 그 곳

 

이 세상에 그 곳보다 아름다운 곳이 어디에 있는가?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2.09.08 11:48 수정 2022.09.0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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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