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칼럼] 시에는 사악함이 없다

 




시에는 사악함이 없다

 

문과충이라는 말은 이제 쉽게 접하는 단어가 되었다. 처음에는 문과생들이 높은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한 자조적인 의미였지만 이제는 인문학으로는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든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저녁이 있는 삶은 이과출신들의 몫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문과충이라는 단어는 학문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런 시대이다 보니 시를 접하는 기회도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시인들은 여전히 시를 생산해 내고 있지만 굶어죽기 좋을 만큼 팔리지 않는다. 한 줄의 시를 외우면서 행복해 하던 소녀의 모습은 지나간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다. 감성이 인간을 무방비상태로 만들고 탐욕스럽게 만든다는 이상한 논리가 현대인들을 세뇌시키고 있다.

 

이과가 하드웨어이라면 문과는 소프트웨어다. 하드웨어가 없으면 소프트웨어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하드웨어가 없으면 그 또한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인간이라는 하드웨어에 정신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잘 개발해 넣어야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인문학을 부정하는 것은 반인간을 지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농경시대 최고의 목표는 벼슬길이다. 그 벼슬길로 가는 지름길은 인문학이었다. 인문학 말고 다른 학문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경 자체가 인문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의 주춧돌은 과학이다. 과학이 국가의 존립을 결정짓는 시대다. 그러니 문과충이니 이과충이니 하면서 개념과 관념의 차이처럼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지식보다 지혜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넘쳐나는 정보가 지식이라면 그 정보를 진정성 있게 자신만의 콘텐츠로 체득한 것이 지혜다. 지혜의 중심에 시가 있다. 시에는 사악함이 없다. 공자도 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다. 사악함이 없는 시는 당신의 고단한 퇴근길을 위로해 준다.

 

한 줄의 시는 아침에 마신 맑은 차 한 잔과 같다. 요즘 대세인 먹방처럼 허기진 내장을 채우는 삼겹살, 치킨, 피자 같은 기름진 음식 뒤에 마시는 맑은 차 한 잔과 같은 것이 시다. 시는 가라앉은 흙탕물 위로 맑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먹구름 뒤에 숨은 파란 하늘과 같고 죽일 듯이 싸우고 난 뒤의 화해하는 마음과 같다.

 

천억 재산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고백한 이도 있다. 백만 광년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는 이도 있고 시가 나를 찾아왔어 라고 독백한 이도 있다. 우리를 위로해 주는 건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다. 누군가가 쓴 한 줄의 시가 당신의 인생을 위로해 준다. 시에는 사악함이 없기 때문이다.

 


전승선 기자
작성 2019.02.03 04:18 수정 2019.02.0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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