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 행복만을 향해 달려가라. 하지만 너무 많이 달리지는 말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행복은 내 뒤에서 달려간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나는 30대 후반에 시를 공부했다. 신문에서 우연히 ㅎ 출판사에서 여는 문학 강좌를 보게 되어 가게 되었다. 평소에 우러러보던 ㄱ 시인이 지도하셨다. 중학교 때 시를 써본 후 아예 시 한 편 읽지 않다가 시를 쓰니 도무지 되지 않았다.
수십 편의 시를 쓴 후, 자연스레 시 쓰기를 포기하게 되었다. ‘역시 시는 젊을 때 쓰는 거구나!’ 수필로 전향하여, 그 해에 ㄹ 문학단체에서 문학상을 받았다. 강의 시간에 한 수강생이 말했다.
“선생님, 며칠 전에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선생님 글을 낭송하더라고요.”
‘헉! 내 글이?’
집에 와서 EBS 홈페이지에 들어가 찾아보니, 모 탤런트가 내 수필 ‘설거지’를 낭송한 게 나왔다. 탤런트의 육성을 들으며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은 엄청난 마력을 내뿜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회적 인정은 존재의 증명이 된다. 나는 계속 수필을 쓰게 되었다.
나는 나의 수필의 양식을 찾아가게 되었다. 지금은 ‘인문 에세이’를 쓴다. 인문학적 글쓰기다. 글을 쓰며, ‘나의 길’을 찾아가는 즐거움, 비할 데가 없다. 그런데 남들이 전혀 나의 글쓰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 글쓰기를 멈추게 될 것이다. 물론 내 안에서 계속 글을 쓰라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오면,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은 천재일 것이다. 당대에 알아주지 않다가 먼 후대에 알아주는 사람.
TV 드라마 ‘오늘의 웹툰’에는 천재를 시기하여 그의 작품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는 노트북을 망가뜨리는 10년째 만화를 그리는 작가 지망생이 나온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을 보면, 누구나 무서운 시기심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길을 가는 즐거움이 너무나 크기에, 그 생각에서 쉽게 풀려 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작가 지망생은 ‘자신만의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 오로지 등단, 상을 받을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다.
시인 랭보의 시를 읽어 보면, 그의 천재성에 압도되어 버린다. ‘아, 한 인간이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구나!’ 그를 한평생 시기했다던 평범한 시인 베를렌느,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가슴에 이 베를렌느가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그 작가 지망생은 결국 낙향한다. 그가 떠나던 날, 천재가 그에게 말한다. “형 만화 감동적이었어요. AI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주제도 좋았어요.” 작가 지망생은 말한다. “내 만화의 주제를 너만 알아 봤어.” 그런데 왜 작가 지망생은 끝내 낙향했을까?
나는 시집 하나 달랑 내고는 시를 더 이상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 인터넷 공간을 여행하다가 내 시를 좋은 시로 뽑은 블로그를 발견할 때가 있다. 어떨 땐 내 시들과 유명한 영화들을 결부지어 멋진 한 편의 비평 글을 쓴 것도 보았다.
극히 일부지만 자신의 미흡한 창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작가 지망생은 자신을 알아주는 극소수의 사람들의 인정으로 만화의 길을 계속 갈 수는 없었을까?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양식을 만들어가는 것.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 아주 작은 지지를 받더라도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지 않는가? 노자는 말했다. “현명함을 높이 사지 않으면 백성들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 不尙賢 使民不爭. 불상현 사민부쟁.”
우리 사회는 어떤 특정한 재능을 너무나 높이 사준다. 유명 만화가의 작품은 한 해의 매출이 수백억이라고 한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지 않는가? 큰 산의 높이만큼 깊은 골짜기로 떨어져 하루하루 연명하는 이름 없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글을 쓰며 나만의 글을 쓰는 재미가 엄청나다는 것을 안다. 계속 글을 쓰게 하는 힘이다. 누구나 천재를 부러워하지만, 천재의 삶의 실상을 보면, 누구나 각자의 삶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천재들은 천재들의 몫이 있지 않는가? 그들은 역사의 한 획을 긋는다. 하지만 보통 작가인 우리도 자신만의 몫이 있지 않는가? 보통 작가인 나는 천재처럼 삶이 처참하지 않다. 보통 사람으로서의 즐거움을 다 누린다.
어느 삶이 더 멋진가? 크게 보면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천재들이 열어젖힌 세계의 언어를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요즘 내는 책의 제목에 다 ‘시시詩視한’이 들어간다. ‘시로 보는 천재의 세계’를 나는 보통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나의 길도 소중하지 않는가? 그 길을 가며 나는 무한한 희열을 느낀다. 보통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천수의 즐거움도 함께 누리며.
옷도 입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알몸으로 부대끼며 사는
그래도 행복한 세상 있을까
- 배준석, <감자를 캐며> 부분
시인은 ‘감자를 캐며’ 노래한다. ‘알몸으로 부대끼며 사는/ 그래도 행복한 세상 있을까’
아득히 먼 원시인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다. 다시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치열하게 각자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