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 현장이 여성화되어가는 추세이다. 어린이의 여성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홀어미니 밑에서 가르침을 받는 격이니 남성스러움을 배울 수 있는 모델링이 없어져 버린 셈이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맨스필드는 남자다움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자다움의 근간은 고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절에 통용된 개념인 '두모스(thumos)'입니다. 그건 남자의 영혼에 있는 용맹함을 의미합니다. 남자다움엔 세 단계가 있어요. 가장 낮은 단계는 저항입니다. "노(No!)"라고 말하는 겁니다. 특히 누군가 당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그것이 부당한 것일 때 가차 없이 "노"라고 하는 거죠. 여성은 현실적이라서 뭔가 나에게 이득이 되면 받아들이기 쉽죠.
그다음 단계는 어떤 상황에 부닥쳐 무언가 행동이 필요할 때, 그런데 주위의 누구도 행동하지 않을 때, 당신이 의자를 박차고 행동에 나서는 것입니다. 뭔가를 반드시 내가 이뤄야 한다는 아름다움, 그게 남자다움이죠. 중요한 위치에서 위험을 지고 실패할 각오를 하겠다는 겁니다.
최상위 단계는 매우 철학적 남자다움입니다. 그건 많은 사람의 이야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반론을 펴는 일입니다. 여기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스 말로 '용기'를 나타내는 '안드레이아(andreia)'는 '남자다움'과 의미가 같아요. 그 용기는 두려움을 통제하는 미덕입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서는 게 남자입니다. 남자다운 남자는 신념이 있고, 독립성을 유지하며, 자신의 임무에 대해 명확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남자다운 남자는 보험회사가 하는 것처럼 위험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실제 거대한 일에서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 덕분에 나머지 사람들이 큰 혜택을 입습니다.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이 인간의 자유를 대표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교단의 여성화는 어린이들에게 의지력과 용기를 배울 수 있는 남자다움의 모델링이 없어짐으로써 성인이 되었을 때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남자다움과 여성스러움을 골고루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교단의 여성화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교단의 여성화는 여성의 섬세한 정서를 배울 수는 있겠지만, 불확실한 미래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어린이들의 정서를 여성 한쪽의 성향만으로 부닥치는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여자 어린이가 여성스러움을 배우는 것은 당연하나 남자 어린이가 여성스러움만 익혀서 “호로자식”이란 말을 들을까 봐 걱정된다. 홀의 자식이라 아비 없는 홀어미만을 의미한다는 것으로 남녀평등에 어긋난 그릇된 해석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의 관습으로 보아 아비는 엄하고 어미는 자애롭다는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한석봉의 모친은 자식의 가르침에 있어서 칼처럼 엄하였다. 한석봉에게 호로자식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예절과 강인한 남성다움을 가르쳤다. 오늘날 호로자식이란 아비 없는 홀어미의 자식이라는 뜻보다 예절의 배움이 없이 막 돼먹은 자를 일컫는 말이라고 보겠다.
오늘날 교단은 따끔한 호통이나 체벌이 사라지고 가정에서도 여권신장과 함께 엄한 아버지의 교육이 부재한 아이들은 버릇없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학교에서는 그야말로 수수방관만하고 있어야 하는 꼴이니 어린이들이 버릇이 없어 제멋대로다. 정말 호로자식들이 너무나도 많은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들을 따끔하게 가르칠 무서운 남자 선생님이 있어야 한다.
버릇없는 아이들을 집에서도 제멋대로 학교에서도 제멋대로 두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호로자식이라는 말을 덜 듣지 않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교단의 여성화를 막는 길이 아니겠는가.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