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건국한 지 2년 만에 민족 최대 참극인 6.25 전쟁을 겪어야 했다. 이로 인해 일제 통치하에 헐벗었던 국민은 폐허 속에 남겨진 좌절까지 떠안게 되었다. 1955년도 기준,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82달러로 세계 106위의 최빈국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이 60위에 머물렀던 것을 감안하면, 대한민국 땅은 쓸 만한 것 하나 없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우리나라는 이후로도 십여 년 이상 해외의 원조 없이는 나라살림을 꾸려 갈 수 없었고, 쌀이나 밀가루를 원조받고도 국민들은 끼니를 굶어야 했었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인구가 90%에 육박하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70년 전과는 전혀 다른 국가로 성장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다. 이 같은 결과를 얻은 것은 노후 세대의 희생과 열정이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고 온 몸을 바쳐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개개인의 관점으로 보면 열심히 노력해서 가난을 이겨내고자 했고 자녀를 공부시켜 고생하지 않는 미래를 열어주고자 한 것이지만, 이를 단순하게 개인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의 노고는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기적의 원동력이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선박, 자동차, 생활가전, 통신장비, 철강, 원유가공, 원자력, 건설 등은 한국의 경제력을 견인하는 동시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자원과 기술이 없어 농산품을 가공해 팔던 과거와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로 나가보면 우리나라의 기업을 일본 국적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증거다. 지금까지는 경제가 나라를 이끌었다면, 이제는 문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문화는 경제와 달리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천성적인 예술의 기질이 자유시장경제와 만나 싹을 틔우는 것이다. 서방의 현대문화가 전 지구인에게 스며들였던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자유라는 것은 인간의 삶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유는 정신의 풍요를 상징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의 청년들과 기성세대가 창조해 나가는 문화의 세계화 추세도 튼튼한 경제력과 자유로운 사고의 발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언제 공산권의 문화가 세상에 참신한 영향력을 끼친 적이 있었던가? 단 한반도 없었다. 문화의 형성은 오직 자유로운 사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최근 들어 우리의 문화는 지구촌의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는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대중음악은 전세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하여 한류를 형성하는 주류가 되었다. 심지어 한국어 가사를 이해하려고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미주, 유럽, 중동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내년부터 한국어가 제2의 공용어가 되어 공립학교에서도 한국어 수업을 받게 된다. 한국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나라가 남북한뿐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어의 위상이 이토록 높아질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또한 한글은 명품회사의 제품에 세련된 디자인으로 활용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아디다스가 태극무늬와 한글을 입힌 신발을 출시하여 나이키를 제치고 세계 1위로 부상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로벌기업인 스타벅스는 매년 8.15 광복절을 기념하면서 한국전통 문양의 텀블러를 출시한다. 텀블러는 외국에서도 인기가 높인데 살 방법이 없으니 일부러 한국을 방문하기도 한다. 영화는 또 어떤가?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연상과 감독상을 받아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한국 드라마는 지구촌 안방에서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한국은 지난 아픈 과거를 털어내고 미래의 브랜드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주에는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한국 가요제가 열렸다. 공연에 관람한 미국인이 한국어 가사를 그대로 따라 하는 떼창 현상에 대해 ‘한국 문화의 힘은 어디까지인가’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제는 이런 식의 언론 보도가 워낙 많아 특이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현대의 한국문화는 세계시장의 중심으로 파고들어 가는 중이다.
이러한 저변에는 우리 스스로 간직하고 있었던 예술적 기질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조는 독창적인 자신의 고유함을 최고로 여길 만큼 문화적인 자긍심이 높았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모방과 복제를 좋아하지 않았다. 예술 장르에서 예를 들어 보자. 판화는 동일한 그림을 복제하는 미술의 한 분야다. 아시아권에서 판화가 발달한 중국, 일본은 대량 생산의 산업이 발달했지만 우리나라에서 판화는 복제품이라 하여 찾는 이가 적었으며, 못 그려도 원작을 찾았기 때문에 판화는 크게 성행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도공들 역시 조선시대에 고려청자를 만들어내는 거짓된 일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스승의 창법이나 화법, 기술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조차 좋게 보지 않을 만큼 독창성을 중요시 여긴다. 남의 것을 베껴내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독창성을 추구하는 우리 민족의 특징이다.
앞으로 펼쳐질 문화의 시대에 한국의 힘이 드러날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예술 분야를 넘어서는 저력이 태동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내부는 강하다. 오히려 우리는 자신의 강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뛰어난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보고 느끼고 즐길 줄 아는 감수성은 그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데 그 수준이 아주 높다. 현재를 포함하여 미래는 개인의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다. 지난 세기 동안 산업 실전에서 쌓아 올린 업적에 더해 지금의 세대는 문화의 실전에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조건이 풍부하다. 우선, 장구한 역사를 가졌다는 장점이 있다. 고조선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적 스토리만으로도 한국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역사 이야기는 한 국가의 범주뿐만 아니라 이웃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풍부한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단군부터 삼국시대의 주요 인물, 고려, 조선조에 이르는 동안의 역사적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도 흥미로운 사실이 넘쳐나고 있다.
과거의 시대에 발명한 것들 역시 소중한 자산이다. 대표적인 한글을 비롯하여 거북선, 자격루, 첨성대, 고려청자 등 우리 선조의 문화 자산은 현대에 맞는 콘셉트로 재조명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 외에 무형자산으로 시선을 돌려 보면, 전국에서 펼쳐지는 축제만 해도 천 개가 넘는다. 그중에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콘텐츠만 가린다 해도 백여 개는 족히 될 것이다. 앞으로 지역 축제가 새로운 문화의 길을 여는 때가 올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다. 분단은 아픔의 역사지만 세계 유일의 이념적 대립 상황을 간직한 나라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환경, 인간, 이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또한 우리가 개척해 나갈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음식 역시 상당한 매력을 가진 분야다. TV드라마로 제작되었던 <대장금>은 이미 전 지구 곳곳에 방영되었던 기록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이유는 한식이 건강 식단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점점 건강에 대한 관심은 증폭될 것이다. 기존의 선진국일수록 이에 대한 관심은 더할 것이다.
몇 해 전에 외국인을 남한산성에 있는 한식촌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주로 나물 반찬이 많았는데 그들은 이 반찬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렇게 다양한 풀을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 후에 외국인 손님이 방한하면 늘 남한산성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이 외국인에게는 특별함이었다.
세계로 나가 보면 우리나라의 모습이 얼마나 멋지게 발전했는지 알게 된다. 내부에서는 바깥이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청년들은 세계의 무대로 나가 다른 세계를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문화가 어느 방면에서 뛰어난지 탐구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콘텐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들의 창의성은 선배 세대들의 열매로 나타나고 있다. 스스로 더 분명한 자긍심을 가질만하다. 개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기 딱 좋은 시대가 지금이며 미래이다. 우리는 위기에 강하고 실전에 능하다. 미래를 향한 대한민국의 힘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기성세대는 청년 세대가 더욱 불을 붙힐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 우리의 재능이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큼 발휘될 것인지 기대된다.
[천석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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